중2병에 대하여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내리 3년 하면서 깨달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중2병의 실체입니다. '중2병'을 중학교 2학년 시절, 잠시 정신이 나가 있는 시기를 일컫는 말로 단정짓기에는 조금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3년째 중학교 2학년생들을 대하면서 감히 정의내려 본 중2병은 이렇습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때로는 사회나 기성 세대에 반항하는 태도로 자신의 허세를 드러내 보이거나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병'
작년 우리반은 그래도 다른 반들에 비하면 크게 말썽부리는 아이들이 없는 일명 '순한 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부모 상담을 하면 부모님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소리가 이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전에는 안그랬는데 요즘에는 왜 이렇게 화를 잘 내는지 모르겠어요." 혹은 "요즘에는 말을 잘 안하려고 하고 방으로 들어가서 문 닫아놓고 있을 때가 많아서 답답해요."
부모님들의 하소연에서 '중2병'의 실체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2병에도 단계가 있습니다. 이해하기 쉽게 중2병을 3단계로 나누어 보았습니다.
매운맛 1단계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앞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같이 자신이 정서적으로 더 안정감을 갖고 있으며, '믿는 구석'인 사람들 앞에서 그 실체가 곧잘 드러납니다. 1단계는 학교에서는 별 문제가 없지만 집안에서 부모님의 속을 조금 상하게 하는 정도의 가벼운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매운맛 2단계
감정의 기복이나 불만을 교사나 친구들에게 살짝씩 드러내 보이는 유형입니다. 기분이 상했을 때 조금 거칠게 말을 하는 정도로 나타납니다. 몇 번 주의를 주면서 꾸준히 지도하는 등 행동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유도한다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매운맛 3단계
우연한 기회에 감정이 폭발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사건화되어 생활 지도 위원회, 학교 폭력, 교권 위원회 등에 접수가 되어 지도나 처벌을 받게 되는 경우입니다. 감정의 기복이 심한 상태에서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누군가가 자신의 기분을 건들었을 때 불처럼 화가 폭발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줍니다. 폭발한 감정은 욕설이나 비아냥 같은 등 거친 말, 더 나아가서는 신체적 폭력으로 나타납니다.
처음부터 매운맛 3단계인 친구들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매운맛 3단계가 될 수 있지요. 정말 우연하고 작은 계기가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교사가 할 일은 이 우연하고 작은 계기가 사건화되기 전에 사전에 교육도 하고 상담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정 앞에서 인간이란 너무나 나약한 존재입니다. 사건을 일으킨 아이들과 나중에 이야기해 보면 본인들 스스로도 그러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른도 쉽지 않은 것이 감정 조절인데 호르몬의 지배를 강력하게 받는 청소년기라면 더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늘 이야기합니다.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이야기를 해! 당사자에게 못하겠으면 선생님한테 미리 말을 해! 사전에 아무리 너희에게 피해가 되는 일이 있었더라도 때리면, 때린 순간 이후로는 때린 사람만 더 손해야. 때린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거야. 그러니 일단은 참고, 나중에 누구한테든 미리미리 이야기를 해야 해!!
중2병이 감정의 기복과 폭발의 형태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성인이라면 사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욕망 사이에서 방황하는 일이 많지 않고, 주로 규범을 따릅니다. 또한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자신의 욕망을 접기도 하지요.
하지만 중학생들은 사회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규범에 대해 아직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혹은 알고 있다고 할지라도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지켜야 할 규범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업 시간에 친구한테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수업 시간에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안 되고 수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규범(혹은 다른 친구들과 선생님에 대한 배려) 사이에서 망설임 없이 수업 시간에 친구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개인의 욕망이 점점 중요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자기 마음대로만 하면서 살 수는 없는 사회입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상처받지 않고 잘 살아나가려면 어느 정도는 자신의 욕망을 접을 줄 알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병'은 왔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 앓고 나면 성장하게 되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금 중학교 3학년 친구들은 작년에 모든 선생님들이 기피했던 학년입니다. 그 정도로 말썽을 많이 피웠던 친구들이었지요. 그러나 현재는 3학년이 가장 말 잘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성실한 아이들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재 3학년 선생님들로부터 아이들 소식을 들을 때, 또 지나가다 3학년 아이들을 마주쳤을 때, '언제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자랐나?' 싶은 생각이 들어 대견해집니다.
지금의 말썽쟁이 2학년 아이들도 곧 그렇게 되리라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잔소리도 하고 상담도 하며 생활 지도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