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코's 단편소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진 속 장소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오늘도 습관처럼 밤에 걸으러 나갔다.
흐리고 구름이 산 아래로 많이 내려온 날이었다.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 아래에 있는 저수지 주변을 걸었다. 산 아래에 있는 둥근 저수지 주변으로 산책길이 잘 정비된 걸 알게 된 후 그는 매일 밤 저수지 길을 산책하러 왔다. 오늘 밤도 몇 년 동안 이어진 날들 중 하나였다.
저수지 끝자락에 도착한 그는 산 쪽의 저수지를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구름이 더 많았다. 오늘은 구름 속을 걷겠네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날씨를 생각하며 골라놓은 음악이 잘 맞아 기분이 좋았다. 걸으며 구름과 점점 가까워졌다. 걷는 동안 저수지 주변 길 아래쪽에서 낚시하는 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낚시 금지구역이다. 그런데도 저분들은 거의 매일 낚시하러 오신다. 그는 낚시꾼들이 구름이라도 낚는 건가라 생각하며 가볍게 웃고 다시 걸었다.
걷는 동안 하늘에선 구름이 내려오고 아래에서는 안개가 피어올라 서로 만났다. 이 둘이 뒤섞여 말 그대로 짙은 구름 속을 걷는 것 같았다. 그래도 어느 정도 앞이 보이고, 산책로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불빛이 달려있어 그는 주변이 어디쯤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저수지를 반쯤 돌은 순간이었다. 어디서 작게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저수지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구름 속에 멀리 사람 실루엣이 어렴풋이 보였다. 긴 막대도 본 것 같아 낚시꾼이라 생각했다. 물고기를 잡아 건진 소리 같았다. 그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길을 걸었다. 그러다 문득 발걸음을 멈췄다. 아까 그 자리에 사람이 서있을 수 있나? 가뭄이 길어 물이 빠진 날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근에 가뭄이라 할 정도는 아니었고, 며칠 동안 비가 내리다 그쳐 흐린 날씨였다. 그 말은 저 위치에도 물이 차있으리라. 장화라도 신고 물에 들어간 걸까 생각했다. 하지만 뒤로 돌아가 다시 확인해 보기는 무서웠다. 그 순간 어디서 작게 풍덩 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낚시꾼인 듯한 사람이 또 서있었다. 여전히 흐릿하게 보였지만 아까 본 낚시꾼과 체형이 다른게 확연히 보였다. 더 뚱뚱했다. 이 주변이 낚시꾼들의 명당인 걸까? 이번 낚시꾼도 서있는 위치가 조금 이상했지만 물가 쪽에 가까이 있었다. 장화를 신으면 서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는 무시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금 걷다가 다시 멈췄다. 뭔가 이상했다. 낚시꾼들이 있었다면 소리가 나기 전에 길을 걷다 미리 봤을 텐데, 풍덩 소리에 뒤를 돌아 봤을 때만 낚시꾼이 있었던 것이다. 식은땀이 났다. 어두운 밤이고 날씨도 이러니 괜히 무서운 상상이 떠오른 것이리라. 그는 마음을 다시 잡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위해 한 발자국을 떼었다.
...풍덩
작은 물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는 다시 몸을 멈췄다. 다시 식은땀이 났다. 뒤돌아보기가 무서웠다. 호기심과 공포가 그의 마음속에 휘몰아쳤다.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방금 봤었던 뚱뚱한 낚시꾼 형상이 서있었다. 여전히 형체가 불분명해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 사람 형체가 가만히 서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조금 걸어서 아까보다 더 멀어졌을 텐데 그 낚시꾼은 이전보다 조금 더 가까이 있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놀라고 무서워 덜덜 떨며 낚시꾼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뚱뚱한 낚시꾼 뒤로 흐릿하게 다른 형상이 있는 걸 알아차렸다. 아까 처음 들렸던 물소리와 함께 봤던 낚시꾼이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저수지 쪽으로 또 다른 형체가 보였다. 그 형체는 물에 누워있었다. 거리가 멀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람 같았다. 가물치 같은 큰 물고기라기엔 팔 다리가 붙어있었다. 분명 사람이었다. 그리고 다시 보니 낚싯대라 생각했던 것들이 그 세 형체에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뚱뚱한 사람의 낚싯대는 다른 낚시꾼에게, 그 낚시꾼의 낚싯대는 물 위에 누워있는 사람 형체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형체들은 모두 가만히 서있었다. 가득 차 있는 구름 때문에 그를 바라보는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다. 그는 생각했다. 만약 저 세 형체가 사람이 아니라면? 만약 물속에서 나온 물귀신이라면? 그 작은 물소리가 그들이 물속에서 나오는 소리였다면? 그는 공포감으로 몸이 굳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산속에서 고라니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는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굳어있던 몸이 다시 움직였다. 그는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는 조금 달리다가 다시 뒤를 돌아봤다. 저수지가 둥근 모양이라 어느 정도 달려도 여전히 그 지점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세 형체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세 형체 모두 풍덩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는 놀라 발을 헛디뎌 넘어졌다. 하지만 그 세 형체들이 따라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얼른 다시 일어나 뛰었다.
다행히 저수지 반대편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는 저수지를 바라봤다. 여전히 구름과 안개가 섞여 건너편이 보이지 않았다. 그 형체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아까 넘어지며 무릎과 팔꿈치에 생긴 상처가 이제야 아파왔다. 뒤편 저수지 아래 풀숲 길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꿈을 꾸다 현실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는 곧 다시 일어나 풀숲길을 따라 저수지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갔다.
잠깐. 풀벌레 소리가 들린다고? 그는 귀를 만져봤다. 이어폰 하나가 빠져있었다. 아까 넘어지면서 한쪽이 빠진 모양이다. 하지만 다시 저수지로 돌아가 찾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 길에서 떨어뜨렸다면 이어폰이 저수지에 빠졌을 게 분명했다. 그는 아쉬운 맘을 가지고 집으로 걸어갔다.
... 그러고 보면 이상했다. 그는 이어폰을 끼고 노이즈 캔슬링을 키고 음악을 들으며 걷고 있었다.
그런데 노이즈 캔슬링을 켠 이어폰으로 어떻게 먼 곳의 작은 풍덩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