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구름

루코's 단편소설

by 루도비코 Ludovi Ko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사진 속 장소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녀는 오랜만에 고향 집으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갔다. 추석에는 교통편을 구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일찍 고향에 갔다가 추석 연휴 전에 올라가려고 했다. 다행히 직장 상사가 며칠 동안 원격 근무를 할 수 있게 허락해 주었다.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중에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비는 기차 창문을 강하게 두드렸다. 일기예보는 오늘 비가 안 내린다고 했는데 이렇게 많은 쏟아지는 비에 그녀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곧 비가 그쳐 그녀는 안도했다. 기차가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내렸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기차에서 내려 집으로 가기 위해 역 뒤편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는 동안 그녀는 무심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에는 동그랗게 퍼진 파도 모양의 구름이 있었다. 특이하게 생긴 구름이라 생각하며 그녀는 계속 길을 걸었다. 한참 걸어가는데 앞에 행인 한두 명이 폰으로 하늘을 찍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까 보았던 파도 같은 구름이 아까보다 더 커지고 퍼져있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하늘을 좀 더 바라보았다. 이전에는 못 알아차렸지만 지금 보니 그 구름은 파도 같은 움직임을 가지고 있었다. 밀물과 썰물처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아까는 구름 같은 기체 모습이 있었는데 지금은 물 같은 액체 느낌이 살짝 났다. 마치 지구에 유리벽이 둘러싸여 있고 그 위에 수증기가 부어지는 느낌이었다. 주변에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한두 명씩 늘어났다. 이상한 현상에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하늘에서 눈을 떼고 무거운 짐을 들고 빠르게 집으로 갔다.

그녀는 집에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뉴스를 봤다. 뉴스에서도 이 이상한 구름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었다. 한국 어디쯤에서 시작된 파도 구름은 몇 시간이 지난 지금 다른 나라까지 퍼지고 있었다. 그녀는 저녁을 다 먹은 후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집 뒤에 산이 있지만 그녀의 집은 10층이라 산 너머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밤이라 이상한 구름이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구름들 뒤에 가려졌던 달이 조금 모습을 보였다. 그 달빛은 살짝 푸르게 보였다. 그러나 그 달도 곧 구름 속으로 자취를 감춰 어두운 밤이 되었다. 바람이 살짝 불었다. 평소보다 조금 서늘한 느낌에 그녀는 몸을 떨고 창문을 닫았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깬 그녀는 침대에서 폰으로 뉴스를 틀었다. 이상한 파도 구름은 곧 지구를 다 덮을 것 같았다.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 쪽 하늘에서 사방에서 오는 파도 구름이 곧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하지만 거기는 지금 밤이라 파도 구름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자세히 볼 수 없을 거라 했다. 그다음으로 인공위성이 촬영한 영상들도 있었다. 그 영상 속 지구의 모습에서 갑자기 유리막 같은 것이 반짝이며 살짝 보였다. 언제 생긴 건지 알 수 없고 갑자기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한국 쪽 우주에서 둥근 구름 덩이 같은 것이 서서히 생기더니 퍼져가는 것을 보았다. 마치 드라이아이스에서 퍼지는 연기 같았다. 전 세계 과학자들도 이 현상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무에서 유가 갑자기 나온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외계인이 왔다, UFO를 봤다, 신이 심판을 내릴 것이다 등 온갖 음모론들이 퍼져갔다. 혼란스러웠다. 침대에서 나오기 전 최신 뉴스를 보니 수증기 같았던 구름이 점점 액화되고 있다고 했다. 어떤 유리막이 지구를 감싸고 있고 그 위로 수증기가 쌓이며 액체로 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영상으로 보니 하늘 위로 군데군데 커다란 물방울이 맺힌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하늘을 보니 영상에서 봤던 것처럼 커다란 물방울이 여기저기 퍼져있었다. 그 위로는 두꺼운 파도 구름이 여전히 밀물 썰물처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구름 때문에 햇빛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마침내 지구 전체가 정체 모를 파도 구름으로 덮였다.


둘째 날 아침, 그녀의 방안이 살짝 푸르스름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았다. 밖은 이전보다 살짝 푸른빛이 감돌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이틀 전에 파도 구름이었던 것이 지금은 얕은 물처럼 보였다. 이제는 구름이 아니라 물처럼 되어 버린 것이 천천히 파도치는 것처럼 보였다. 마치 하늘 위에 수조가 떠있고 그걸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 같았다. 뉴스에서 보여주는 세계는 어제보다 훨씬 더 혼란스러웠다. 파도 구름이 생기는 속도가 더 빨라진 듯 벌써 지구 전체가 파도 구름이 만들어낸 액체로 덮여있었다. 그리고 그 액체 밖에 있는 인공위성은 응답이 없었다. 그 액체에 덮여 고장난 인공위성도 있었다. 많은 GPS 장치들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았다. 휴대폰이나 내비게이션이 점점 먹통이 되어갔다. 지구 내에서 광케이블로 연결되지 않은 곳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었다. 앵커는 파도 구름이었던 것이 이제는 액체로 변했고 점점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과학자들은 여전히 원인을 알 수 없었고, 음모론자들과 사이비 종교 교주들은 종말이 오고 있다며 소란을 피웠다. 그녀는 뉴스를 보고 있자니 더 혼란스러워 TV를 껐다. 유튜브에서도 관련 영상은 더 이상 보지 않았다.

하늘 위에 가득 찬 액체 때문에 태양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날 노을은 핑크색으로 빛났다. 그녀는 탁한 느낌의 핑크색으로 물든 방 안에서 회사 작업을 계속했다. 곧 날이 어두워지며 그녀는 하늘 위의 파도를 잊고 일에 집중했다.


셋째 날 아침, 그녀는 추워 몸을 살짝 떨며 일어났다. 창밖에서 새벽 같은 청록빛이 들어왔다. 그녀는 너무 일찍 깬건가 하며 폰을 켰는데 시간은 벌써 아침 9시가 넘었다. 아침 9시인데 빛이 이렇게 푸르다고? 그녀는 창밖을 내다보았다. 하늘에는 파도 구름은 없고 액체만 있었다. 액체는 파도치듯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액체의 양이 꽤 되는 듯 조금씩 천천히 움직였다. 마치 수조 속에서 수면 밖을 내다보는 물고기가 된 것 같았다. 아니, 천장에 있는 수조를 아래에서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햇빛이 그 액체를 투과해 들어오느라 색이 푸르게 변한 듯했다. 그러면서 날씨도 급격하게 추워진 듯하다. 파도 구름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와 추워진 시간이 맞아떨어졌다. 거실에서 들리는 뉴스에는 이상한 액체로 인해 자외선이 거의 없어져 선크림을 바르지 않아도 될 정도라고 했다. 그리고 태양열이 액체를 투과해 지구로 오기 힘들어져 온도가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빙하기 수준으로 온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녀는 방에서 나와 부엌에서 아침을 먹으며 창밖을 보았다. 이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아침으로 시리얼을 먹던 그녀가 마지막 숟가락을 뜨려고 할 때였다.

‘퍽’

밖에서 커다랗고 둔탁한 소리가 났다. 주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였다. 그 소리가 들리고 조금 있다 놀란 개들이 짖어댔다.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놀란 눈으로 서로 쳐다보다 창문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 위에 흰 선이 생겼다. 비행기구름 같은 것이 아니라 선명한 선이었다. 그리고 아까 전의 둔탁한 소리보다 작은 소리로 투둑 투둑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하늘에서 소리가 나고 있었다. 설마 하늘에 있는 막에 금이 가는 건가? 갑자기 등골이 오싹했다. 저 막이 깨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저 위에 액체가 엄청나게 있을 텐데 그게 다 쏟아져 내린다면? 갑자기 공포가 몰려왔다. 그 순간 저 멀리서 다른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쪽을 바라보니 하늘 저 멀리 흰 선이 살짝 올라온 것이 보였다. 저 부분도 금이 간 것 같았다. 투둑 투둑 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나 TV 뉴스에도 이 현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얼마 안 돼서 또 큰 소리가 들렸다. 이번엔 다른 흰 선이 아까 봤던 두 선과 이어졌다. 하늘의 막이 점점 금이 가는 게 틀림없었다. 이젠 하늘에서 나는 큰 소리에도 개들은 짖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씩 낑낑대는 소리가 들렸다. 개들도 지금 이 현상이 심상치 않다는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하늘은 청록색에서 점점 푸른색으로 변해갔다. 액체의 양이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늘고 있는 것이다. 창밖에서 큰 소리가 점점 자주 들리기 시작했다. 어두운 거실에서 그녀의 가족은 서로 붙어있었다. 그들은 추위 때문인지 공포 때문인지 덜덜 떨고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오늘 큰일이 일어날 것이라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고민하다가 다시 TV를 켰다. 뉴스를 보니 전 세계에서 비슷한 현상이 생긴 것 같았다. 뉴스 관계자들은 모두 공포에 질린 얼굴로 내용을 전하고 있었다. 어떤 뉴스 앵커는 생방송 중에 자리를 뜨고 나갔다. 세계는 공포로 가득 찼다. 과학자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찾지 못했다. 곧 세계가 멸망하고 메시아가 내려온다고 외치던 종교인들은 공포로 조용해졌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동물들도 조용했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이외에는 세상이 멈춘 듯 고요했다.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가 익숙해질 쯤, 이제 다른 소리가 함께 들리기 시작했다. 창밖을 바라보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큰 소리가 났다. 펑 하는 소리가 몸으로 느껴진 것과 함께 뭔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가족은 서로에게 달려들어 끌어안았다. 그녀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굉음과 함께 물이 쏟아지는 것이 보였다. 엄청난 물로 산의 나무와 흙이 쓸려 갔다.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창문은 수많은 사람들이 창밖에서 치는 듯 굉음을 내며 흔들렸다.

쏟아지는 물을 보며 그녀는 전 세계의 홍수와 관련된 전설이 생각났다. 혹시 이 현상이 고대에도 있었고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이 적은 기록이 전설이라 불리며 존재하고 있던 게 아닐까.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창문이 깨지며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녀는 가족들을 꼭 끌어안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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