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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보경 Nov 23. 2022

타투

2021년 5월 17일

타투를 했다. 왼쪽 팔꿈치에서 손목으로 이어지는 팔 안쪽에. 발팔 티를 입으면 시선이 정면으로 꽂히는 그 부위에다 6.5 x 6.5 cm 정도의 크기로 도장을 쾅 박아버렸다. 


타투에 대한 욕망은 어렸을 때부터 있었다. 아마도 중고등학생 때쯤부터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 직접적인 계기가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타투를 한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자유롭고 매력적으로 보일수가 없었다. 시간이 흐르고 이제 서른 살이 되었는데도 그런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을 함부로 다루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 어린시절 받아온 억압에 따른 결과일테다. 나의 부모님은 자식들을 심하게 과보호 하는 분들이셨다. 각종 금기들로 나를 그네들의 곁에 붙들어 두려고 했다. 부모님은 나를 소유하려 했고 나 역시 부모님에게 소유되고 싶어했다. 나는 동화에 나오는 새장 속 파랑새였다. 바깥세상을 한없이 동경하지만 새장 문을 열어주면 날갯죽지에 힘이 없어 날아갈 힘도 의지도 없었던 볼품 없는 새였다. 시간이 흐르며 나를 통제하고 억압하던 주체는 남자친구가 되기도 했고 지도교수가 되기도 했다.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었다. 여전히 내 몸을 칭칭 감고 있는 쇠사슬이 포근하고 안락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쇠사슬이 무겁게 나를 옥죄어 올 때면 나는 나를 미워하고는 했다. 나를 지배하는 권력자를 미워할 수 없어서 나를 미워했다. 동시에 그들이 금했던 나의 자유를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고자 하는 욕구가 내 안에서 용암처럼 들끓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상처가 난 곳을 계속 잡아 눌러 염증이 부풀어 오르듯, 내 마음의 상처 역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내 몸을 마구 난도질하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다행히 철학 공동체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에 환기도 시켜주고 마데카솔도 발라줄 수 있었다. 그렇게 잔뜩 성이 났던 상처가 가라앉아 이제는 많이 아물었지만 여전히 나를 해치고 싶은 그 욕망의 잔존물들이 무의식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아마 내 삶의 맥락이 만들어 낸 억압에 대한 반작용 같은 것일테다. 


지나고 보니 이런 모든 행위들의 정체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내 몸에 대한 자유를 내가 쥐고 있다는 무언의 선포를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억압과 금기에 대한 저항감이 내가 타투를 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타투를 한 사람을 보면 자유롭고 매력적으로 보였다. 섹시했다. 나 또한 자유롭고 매력적이고 섹시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눈 질끈 감고 타투를 질러버렸다. 내가 타투를 한 이유 전부를 긍정할 수는 없지만 그것이 나의 욕망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타투 시술을 받는 동안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우선 생각보다 아프지 않아서 놀랐다. 타투이스트가 굉장히 차분해서 마치 테라피를 받는 것 같아서 웃음이 났다. 타투 바늘이 피부와 근육, 그리고 혈관의 섬유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투두둑 끊어내는 느낌이었다. 그 갈라진 틈 사이로 색소가 스며 들어가서 들이차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떨림을 동반한 묵직하고 둔탁한 아픔이 싸리하고 잔잔하게 퍼지는 느낌이 좋았다. 화끈하게 느껴지는 열감도 묘하게 좋았다. 똑바로 누운 자세로 한쪽 팔은 타투이스트에게 맡긴채 형광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약에 취한 것처럼 몽롱했다. 


타투를 바라보는데 허탈한 웃음이 났다. 이게 뭐라고 그렇게 두려워 했을까 싶어서. 타투를 한 나는 자유로운 사람인가? 매력적인 사람인가? 섹시한 사람인가? 타투를 하기 전과 후의 나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 기억을 안고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나는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았다. 그런 내가 답답했지만 아직 나는 억압된 욕망을 충분히 누려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후회가 되었나? 당연히 주변 사람들에게 받을 따가운 눈총이 연상되어 두렵다. 부모님이나 직장 사람들이 쏟아낼 비난과 그들의 뜨악한 표정이 아른거려 어깨가 움츠러든다. 그러나 타투를 함으로써 느끼는 기쁨이 더 크기에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타투를 함으로써 나는 내 몸에의 자유를 선포하고 싶었나보다. 동시에 나의 과도한 주체성이 발현된 것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늘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그러한 내 모습이 싫어서 필요 이상으로 주체적인 삶을 추구했었으니까. 내 몸에의 권리를 주장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마음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다른 이유도 있다. 철학자 조르주 바타유는 '에로티즘'을 개념화한다. 바타유는 그의 철학을 통해 인간은 금기의 위반을 욕망한다고 말하며 금기를 넘어섬으로써 경험하는 내적 체험에 관하여 다룬다. 타투는 나에게 에로티즘의 추구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늘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있었다. 부끄럽지만, 타투를 통해 관심을 받고 싶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중 꽤 많은 이들이 타투를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타투는 여전히 사람들의 이목을 끄니 말이다. 


또한 나는 타투를 한 사람들의 반항아스러운 이미지를 동경했다. 나는 언제나 부모님 말씀을 잘 듣는 모범생이었으니까. 적절한 시기에 했어야 했던 싸움을 제 때 치르지 못해 나의 욕망은 중학생 2학년 수준에 머물러있다. 이제 나는 사춘기를 겪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에 이르렀다. 


이 모든 이유들이 경박스럽고 유아스러운 기쁨이기에 부끄럽기 그지없다. 그러나 욕망을 억누른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은 금지된 것을 욕망하니까 말이다.


만약 내가 타투를 직접 해보지 않았더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 것 같다. 나는 뭐든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 충동적인 나의 성향이 싫었던 적도 많았다. 충분히 사려깊게 벼리지 않은 욕망의 불을 끄기에 급급해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쓰라린 상처를 주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이것이 나의 동력이겠지 싶다. 조심히 다뤄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을 단단히 동여매게 된다. 부끄러운 내 민낯을 마주하니 쾌와 불쾌가 공존한다. 타투에 대한 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다.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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