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써왔다. 숫기없는 성격 탓에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때부터 고등학생때까지 나는 소심하고 암울한 아이였다. 내가 회상하는 나의 모습이 왜곡되었을까 미심 쩍어서 사진첩을 꺼내어 본 적이 있다. 찌질함과 어두움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왜소한 아이가 첩첩히 박혀 있었다. 그런 이유로 어려서부터 조각글 끄적이는 것에 익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 읽어주는 이 없이 소비적으로 쓰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기였다.
자라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민거리가 많아지거나 감정적으로 풀리지 않는 일이 있다고 느껴질 때 글을 썼다. 종이 다이어리에 네이버 블로그에 혹은 브런치에. 가까운 사람과 싸우거나 문제가 있을때면 편지를 썼다. 그럴 때 대화를 하면 십중팔구 울어 버리거나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로 중언부언 헛소리를 늘어놓게 되기 때문이다. 남자친구와 싸울 때면 특히 더욱 그랬다. 내가 왜 그런 감정을 느꼈는지,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를 글로 적어보면 감정이 격해지는 상황을 조금은 모면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상대방과 직접 대화하기 전에 먼저 글을 써 보려고 노력했다. 물론 잘 되지 않았고 대부분의 관계에서 온갖 생채기를 주고 받으며 파탄내곤 했지만.
글이 생각을 정리해 준다는 점이 좋았던 것 외에도 글 쓰는 것을 좋아했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글을 잘 쓴다고 칭찬해주는 것이 좋았다. 학창시절 때 백일장 대회에 나가서 꽤 자주 상을 받았다. 나는 수학경시대회 과학경시대회 같은 대회에서 받은 표창장보다 백일장에서 받은 표창장에 훨씬 더 마음이 설레였다. 아직도 기억 나는 장면이 있다. 그날은 백일장 대회 날이라서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국립공원에 다같이 소풍을 갔다. 주어진 시간 내에 자유롭게 글을 써 내면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원고지에 대충 휘갈기고선 도시락을 까먹거나 뛰어 다니며 노느라 바빴는데, 나는 김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원고지랑 씨름을 했다. 시간이 모자라서 초조했고 겨드랑이가 축축히 젖어왔다. 그 때 내 원고지에 새똥이 떨어졌다. 자비 없이 떨어진 허연 새똥에 속이 무척 상했다. 멍청한 비둘기놈. 왜 하필 내 원고지에? 마치 하늘이 "그걸 글이라고 썼냐? 옛다 똥이나 먹어라!!" 하며 찍 싸지른 것만 같았다. 이름 모를 새가 원망스러웠던 마음, 축축한 겨드랑이, 옥의 티 같던 새똥 자국이 샤프 자국과 나란히 적혀 있던 원고지를 떠올리면 어린날의 설레던 마음이 일렁인다.
어릴적 내 장래희망에 빠지지 않았던 직업은 바로 작가였다. 외로울때면 책 속의 세상으로 도망가기도 하던 나였으니까. 그러나 부끄럽게도, 진지하게 작가가 되겠다고 고민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른들이 말하기를 작가는 '굶어죽기 상책인' 직업이었으니까. 그렇게 머리가 커 갈수록 '작가' 라는 직업은 장래희망 리스트에서 점점 뒷걸음질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소리소문 없이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고 나는 전혀 다른 진로를 택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가서도 글이란 걸 쓰긴 했다. 초록-서론-재료 및 방법-결과-고찰-결론이 논리적인 순서로 잘 짜여진 논문이라는 글을. 그런데 재미가 없었다. 이유는 여러가지였을테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주제였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고, 또 다른 이유는 이미 다 짜여진 각본에 내가 쓰는 글은 부속품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박사급 이상의 연구자였더라면 글에 자신의 생각을 독립적이고 자유롭게 담을 수 있었겠지만 나는 석사과정 학생이었기에 그럴 능력이 없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을 다 차치하고서라도, 논리적인 글쓰기라는 것에 신물이 날 정도로 질려버렸다. 고찰 한줄한줄에 인용논문을 갖다 붙혀야하고 그렇게 돌다리 두드려 보며 건너듯 조심스레 도출된 결론도 소설같이 느껴질 때가 많아 허탈했다. 무미건조하고 차가운 글. 내가 쓴 글이었지만 그 안에 나는 없는 것만 같았다.
2015년쯤 브런치 플랫폼을 알게 되었다. 글이 쓰고 싶을 때면 작가의 서랍에 깨작깨작 조각글을 쓰곤 했다. 다른 사람의 글들을 훔쳐보기도 하고 좋은 글이 있으면 따로 스크랩 해두기도 했다. 그러다가 내 글도 다른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뭘 하겠다는 구체적인 생각도 없이 충동적으로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고 운 좋게 한 번에 붙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고백이다. 그 당시에 내가 써 냈던 글은 그야말로 부자연스러움의 결정체였기 때문이다. 못난 내 얼굴을 가리기 위해 화장을 덕지덕지 쳐바르고 잔뜩 향수 뿌린 글. 나는 브런치 운영진이 뭘 좋아할지 알았다. 특이한 소재와 특이한 경험. 그래서 나는 내 전공에 대해 썼다. 축산업과 축산학에 대해서. 산업동물을 착취하는 일을 동물복지와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것처럼 둔갑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옳고 선한 사람인지 적었다. 그 글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삶은 참 아이러니다. 분칠한 가짜 얼굴로 사랑받으려 했던 브런치에서 내 삶의 전환점이 될 사건의 단초를 맞이했다. 어느 날 새벽, 여느때와 다름없이 지친몸을 끌고 귀가하여 침대에 널부런진 채로 SNS와 브런치 글들을 무의미하게 흘려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글에서 걸려 넘어졌다. 부자 부모님을 두었고 좋은 학교 좋은 대학을 나왔는데 스타트업을 하다 실패했다는 사람의 글이었다. 자본주의로 점철된 삶을 살던 그녀가 철학을 배우게 되었고 그 덕분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녀의 글은 다른 사람들의 글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음날이 되어도 그 다음날이 되어도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는 쌀밥처럼. 그래서 그녀의 글들을 모두 읽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그녀의 글들에 공통점이 있었다. 하나같이 철학 스승과 철학 공동체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 철학 스승이 누구고 철학 공동체가 어디길래? 궁금한 마음에 그녀가 구독하고 있는 작가의 페이지를 들어가 보았다. 글이 무척 어려웠다. 평소 철학에 아예 관심이 없던건 아니었다. 대학 시절 폼 잡는다고 철학 수업에 몇 번 기웃거리기도 했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알던 철학과 그 철학 스승이 말하는 철학은 사뭇 달랐다. 아리송하고 어딘지 모르게 불편했다. 찝찝한 마음으로 그의 글을 제쳐두고 내가 처음 좋아했던 그녀의 글로 되돌아왔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내 삶이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해져만 갔다.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내 마음을 적셔갔다. 그 시커먼 잉크 얼룩이 나를 집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 무렵 나는 박사 학위를 따러 유학을 갈 결심을 하고 있었다. 모든 준비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는데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밤마다 그녀의 글을 더 열심히 읽었다. 그녀 역시 유학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는데 그 이후의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그럴 것 같다는 불길한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가 어쩌다가, 그 철학 스승의 브런치에 다시 들어가 보았다. 그 날 글쓰기 수업 공지 글을 마주쳤다.
애초에 나는 글을 잘 쓰게 해주는 수업은 없다고 생각했다. 글을 잘 쓰기 위해 누군가에게 지도를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그 글쓰기 수업은 그런 수업이 아니었다. 철학 스승에 따르면 글쓰기의 본령은 글을 잘 쓰는 것도 책을 내는 것도 아닌, 표현함으로써 얻는 '자기 치유'라고 했다. 불안, 외로움, 두려움, 그리고 자기 미움은 불투명하고 혼란스러운 자신의 내면 때문이며 그것을 대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고 했다. 그 글의 이마에 실린 사진이 가슴에 콕 박혔다.
표현하고 살아라, 인간으로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그 글을 읽고 두려웠다. 내가 들어야 하는 수업인 것 같아서. 그런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쥐고 있는 걸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고 학교가 셧다운 됐다.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일에 매달리던 나였는데, 학교를 가지 않는 첫날 거짓말처럼 논문이고 책이고 꼴도 보기 싫었다. 내가 망가진 것 같았다. 아니 나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 신청 기한 마지막 날에 글쓰기 수업을 신청한다는 이메일을 적었다.
그렇게 철학 공동체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철학 공동체에 속한 일원들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자신이 은폐해왔던 상처와 어두운 모습과 비겁했던 과거를 아프게 직면하는 글들을 썼다. 그 하드코어하다던 글쓰기수업 글부터 해서, 옛날의 나였더라면 절대 찾아보지 않을 불편한 영화들에 대한 후기, 철학 수업 후기 등을 써내며 내 모습을 정직하게 직면하려고 애써왔다. 물론 그 순간 정직했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보면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철학을 통해 배운 것들을 삶으로 살아내려고 아둥바둥하는 과정에서 지난날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꼈다. 그런 고통스러운 과정 속에서 내가 살아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보경아, 올해는 비어있는 네방에 글들을 채우자. 올해 네게 주는 숙제다"
"올해는 보경이의 방에 놀러가고 싶다"
올 1월, 철학 스승이 숙제를 내 주었다. 숙제를 받아들고 심장이 덜컥 내려 앉았다. 철학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헛소리 휘갈겨 놓았던 글들을 브런치에서 모두 지웠다. 그래서 내 방은 텅 비어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그 글들을 그대로 둘 수 없었다. 스승을 통해 좋은 글이란 정직한 글이며, 삶으로 살아내었던 혹은 삶으로 살아낼 글이어야만 한다고 배웠으니까. 통렬하게 아프고 괴롭게 써낸 글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런 글을 분홍빛 분칠한 글이 아니라 벌건 피로 피칠갑을 한 글이었으니까.
그 숙제를 받아들고 너무나 두려웠다. 처음에는 글 쓸꺼리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 공동체에 오기 이전에도 몇번 공개적인 글을 쓰려고 시도했으나 그럴 때마다 글감이 없어 번번히 좌절하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에게 재료가 없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나는 이미 공동체 일원들이 속한 공간에서 내 삶에 대해 이런 저런 글들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곳에 쓰나 브런치에 쓰나 다를 것이 없었다. 내가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자 나보다 브런치 선배이자 내가 발자취를 쫓아 이곳에 오게 되었던 장본인인 '망해버려 기쁜' 그녀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주었다. 그래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언니의 과거 글들을 다시 찾아보았다. 언니도 나 같은 고충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다. 언니의 글을 읽으면서 그리고 철학 수업들을 들으며 깨달았다. 아. 나 세상 사람들한테 내 진짜 민낯을 드러낼 용기가 없구나.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나의 어두운 모습까지도 예쁘게 바라봐 주려고 하지만 바깥 세상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나의 찌질한 모습을 보고 조롱하거나 상대적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나의 불행을 보고 안도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테고, 나의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고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나의 행복을 보고 열등감이 들어 깎아 내리려는 사람도 있을테니까.
그뿐만이 아니다. 나는 불특정 다수의 얼굴보다는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내 모습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훨씬 더 두려웠다. 사람들 앞에 서면 주눅들고 눈치보는게 기본이었던 왕소심 어린 시절에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는 주책맞은 아줌마가 되곤 했다. 처음 보는 사람이랑 덜컥 말을 놓고 온갖 너스레를 떨면서 친해지기도 여러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관계가 더 깊어질수록 위축되고 소심해졌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내 알몸을 드러내 보이는 것은 쉬웠지만 아는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 앞에서 내 알몸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다.
철학을 배우다 보면 나에게 의미있는 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자문하게 된다. 여기서 의미있는 타자란,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사람을 의미한다. 이전의 나에게는 의미있는 타자가 넘쳐났다. 가족, 초등학교 친구, 재수학원 친구, 대학 동창, 대학원 동기, 동호회 언니오빠들... 행여나 그들이 내 글을 읽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식은땀이 났다. 게다가 철학 스승이 나에게 내 준 숙제니 분명 스승이 내 글을 읽을거라는 생각에 손가락이 굳었다. 나에겐 사랑받고 싶은 타자가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러니 글을 쓸 용기가 나지 않을 수밖에. 그러다 언니가 내가 써 두었던 글들 중 몇편을 필사해서 선물해 주었다. 이 글들을 먼저 올려 보라면서. 정말 고마웠다. 이런 마음을 받았는데 저 이상 지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언니가 선물해준 글 한두편을 개제했다.
그 후 몇 개월을 브런치의 내 페이지는 들여다 보지도 않았다. 아니, 차마 내 방에 누군가를 초대할수가 없었다. 어둠이 서린 내 방. 시궁창 냄새가 코를 찌르는 내 방. 쓰레기 더미가 산을 이루고 구더기가 드글거리는 내 방. 내가 생각한 나의 방은 끔찍하고 흉측했다. 그래서 브런치에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올 한해 동안 3년같은 1년을 보냈다. 분에 넘치게 사랑을 받았다. 그 사랑들 덕분에 나는 달라졌다. 나를 믿지 못하던 내가 조금은 나를 믿게 되었다. 예쁘게 보이지 않던 내 방이 예쁜 구석도 모난 구석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니, 알게 되는 중이다. 나의 고통에 매몰될 때에는 너의 고통에 시선을 두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아간다. 사랑 받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불편해야만 할 일이라는 사실을 알아간다. 기쁨은 슬픔과 기쁨의 역동성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꼈다. 변한 것이 없는데 모든 것이 변했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았다.
의미있는 타자를 줄여나갔다. 아니, 저절로 줄여졌다. 나는 이제 소수의 그 의미있는 타자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글을 쓴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몸에 밴 관성이 쉽사리 사라질 리 만무하다.
최근 철학 공동체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그 전시회의 취지는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의 작은 실험에 대해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스승의 뜻을 받들고 싶었다. 공동체 안에서 우리끼리 즐거운 것도 좋았지만 동시에 그 사실이 부끄러웠다. 세상에 떳떳하지 못한 채 숨어서 누리는 기쁨은 진짜 기쁨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는 철학 스승에게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너와 나의 사랑을 넘어서서 공동체적 사랑으로 확장해 가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 당장은 나의 이야기 하기에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지만 (이 글만해도 '나' 라는 단어가 얼마나 많이 등장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깃발은 저 멀리 꽂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부모가, 직장 사람들이, 대학 동창들이, 지도 교수가 볼까봐, 카톡 프로필 하나 바꾸지 못해 벌벌 떠는 내 모습을 마주하고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공동체 사람들의 모습이 예쁘게 그려진 포스터 파일을 받아 들고서, '이 사진을 프로필로 하게 되면 누가 볼까?' '사장이 보고 불온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나에게 불이익을 주진 않을까?' '직장 내 평판이 이상해지지는 않을까?' '엄마 아빠가 보고 걱정하지 않을까?' '대학원 동기들/지도 교수/친구들이 보고 수군거리지는 않을까?'. 불쑥불쑥 올라오는 걱정들을 두더지 잡기 게임처럼 내려치고 내려치면서, 나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나는 무엇을 믿는가?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삶은 무엇인가?
나는 앎으로 배운 철학을 삶으로 살아내고 있는가?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가?
내가 나의 스승과 철학자들의 말을 믿었더라면, 옳다고 생각했더라면, 제대로 된 앎을 배웠더라면, 그들을 사랑했더라면, 고작 카톡 프로필 하나에 멈칫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모든 감정과 헛된 관념들이 허깨비 같았다. 철학자들과 나의 스승은 삶의 최전선에서 온 몸으로 싸우고 있는데 비겁하고 나약한 나는 고작 이런 것들에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나는 부끄럽게 살고 싶지 않다. 부끄러운 것은 너무나 고통스러우니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곧 나의 행동이자, 내가 선택한 것들의 합이다.
이제 나는 내가 살아가기로 한 삶의 길에서 뒤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발터 벤야민의 말처럼, 삶은 일방통행로이다. 물론 무척 두렵고 혼란스럽고 때론 위축된다. 내가 기쁘면 누군가는 반드시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스승의 말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른다. 요즘은 행복하고 평온한 날들이 이어지면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것만 같다. 온갖 삶의 실존적 조건들이 압박해 들어오면 숨을 쉬기 어렵다고 느낄때도 있다. 나의 거짓된 모습 정직하지 못한 모습을 발견하면 치욕스러움에 몸부림친다. 배운대로 살고 있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 죽을 것만 같다. 그러나 나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은 자신을 치유하는 글이다. 그런 글만이 나의 문제에서 거리를 두고 너의 문제에서 거리를 두게 하여 나와 너를 치유해 주기 때문이다. 좋은 글은 정돈된 글이 아니다. 좋은 글은 정돈되지 않았어도 정직하게 나의 모습을 직면하게 해주는 들꽃같은 글이다. 그렇기 때문에 좋은 글을 쓰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다.
좋은 글은, 일기보다는 독자가 '있는' 글, 독자가 '있는' 글 보다는 독자를 '위해' 쓰는 글, 독자를 '위해' 쓰는 글 보다는 독자를 '대신하여' 쓰는 글이다. 세상에 널리고 널린 자기 계발서보다 진심을 담은 연애 편지가 훨씬 좋은 글이다.
좋은 작가란 용기를 내어 때로는 삶보다 앞서 나가는 글을 쓰는 작가다. 아직 그렇게 살고 있지 못하기에 부끄럽지만 용기를 내어 과감하게 나는 그렇게 살겠노라 써 낼 수 있는 작가. 그래서 좋은 글은 삶을 온 몸으로 밀어붙히며 살아 내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다. 삶과 삶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만이 쓸 수 있다.
나는 좋은 글을 쓰는 좋은 작가가 되고 싶다.
이제 진짜 출발선 앞에 섰다.
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