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이제 Feb 20. 2023

결혼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기

결혼의 의미는 제각각이다

작년에 결혼을 했다. 5월에 일찍이 신혼집에 입주를 했고, 식은 10월에 올렸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과 '결혼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예비 신부임에도 뭔가 모를 불편함 같은 게 있었는데, 그건 다름이 아닌 결혼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결혼을 하는 당사자다 보니 당연하게도 결혼을 긍정적으로 묘사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결혼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면 뭐 하러 준비하겠는가!), 혹여나 '결혼 꼭 해야 다'라거나 '결혼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와 같은 생각이 상대방에게 잘못 흘러들어 갈까봐 늘 조심하곤 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결혼이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결혼 제도를 무작정 찬양하지 않는다. 갓 결혼한 신혼임에도 말이다.






앞으로 브런치라는 공간을 통해 조금은 결이 다른 나만의 '결혼이야기'를 연재해보려고 한다. 이러이러한 연애 끝에 결혼에 골인하게 된 자초지종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낭만적인 서사를 기대한다면, 어쩌면 기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결혼이야기' 시리즈의 첫 스타트인 이번 글을 통해 내가 말하려는 건 딱 한 가지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은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가치관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편이다. 누군가의 가치관은 쉽게 정의되는 영역이 아니며, 개개인의 배경과 경험에 따라 미세조정된다. 결혼에 대한 나의 가치관 또한 그렇다. 20대 중반까지 극 비혼주의자였던 내가 서른 즈음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기까지는 수많은 여정이 있었으며, 여기에는 참으로 다양한 스토리 설명이 필요하다. 앞으로 연재할 글에서 더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이번 글에서는 대략적인 배경 설명만 맛보기로 써보려고 한다.




어릴 때의 나는 당당하게 비제도권적 길을 지향할 만큼 계급적 혜택을 충분히 향유하지 못했고, 사상적으로 대단히 도발적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꿈꾸었다.


키치적이지만 나에게도 왕가위와 하루키의 시절이 있었다. 세기말 홍콩처럼, 일본의 펑크세대처럼 젊을 땐 젊음을 낭비하는 것만이 멋이라 생각했다. 가부장제든 일부일처제든, 모노아모리(배타적 연애관계)든 이성애 중심주의든 세상에 주류로 여겨지는 건 모조리 거부해보고 싶었다. 파괴적 애인과 함께 자멸하는 연애를 하거나, 성 정체성을 알아보기 위해 동성에게 플러팅을 한다든지, 바람을 피우든 담배를 피우든지 해서 그 모든 것에 저항해 봐야 직성이 풀렸다. 퇴폐의 끝엔 술과 안주로 인한 지방덩어리, 담배연기로 인한 기관지염 같은 온갖 신체적 염증이 20대 후반의 나를 기다리고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이렇게 묘사하면 내 20대가 너무 혼돈만 그득해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그 와중에도 탈선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내 자아를 반으로 분리했고, 하루 중 제정신이었던 절반의 시간엔 번듯하게 밥 벌어먹고 살기 위해 대학원을 나왔고 학위를 살려 남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취업했다. 비록 나머지 시간엔 술을 먹고 헤롱 대며 정신을 안드로메다로 보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두 세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하듯 살아온 내가 어쨌든 간에 결혼제도의 열렬한 팬이 아니었음은 분명할 것이다. 결혼이란 그 당시 나의 제1 가치인 자유를 방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자아탐구의 기간을 거치다 보면 내가 지향했던 것이 실은 내게 맞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도 오기 마련이다. 피어싱이나 타투했다가, 자기 자신의 콘셉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어느 날부턴가 요란한 액세서리를 더 이상 하지 않고 타투를 지우기도 하는 것처럼, 나 또한 내 인생이라는 도화지에 화려한 스케치를 했다가 어느 시점 이후에는 계속해서 그림체와 톤을 정돈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나는 진정한 '자유'란 결국 '안정'에 기반한다는 것을 20대 중반에 어렴풋이 깨달았던 것 같다.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그 노선에 맞추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말이다.


그렇게 나는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서른 살에 이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