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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이제 Aug 04. 2024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여자

'네가?'


생각보다 이런 반응은 잘 없었다. 아이를 갖고 싶다고, 임신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 모두 빠르게 수긍했다. 나는 서른이 넘은 생물학적 여성이고 결혼을 했으며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있으니까. 내가 결혼은 물론 임신, 출산을 선택하지 않고자 했던 사람이었다는 건 이제 많은 이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사실이다. 스스로의 기억에서조차 말이다.


어린 날의 내가 정석의 삶을 선택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에너지가 넘쳤던 시절이었다. 선택지도 그만큼 무한했다.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모르는 이와 키스할 수 있으며 동시에 여러 명과 데이트를 할 수도 있었다. 좋아하는 게 많았고 수많은 이들에게 매혹을 느꼈다. 배움에 대한 갈망도 깊었다. 사랑과 관능에 여러 번 빠지면 빠질수록 난 더 많은 걸 배울 텐데 뭐 하러 한 사람에게, 단 하나의 삶의 모델에 정착해?


아름답고 지적인 20대 여성에게 안정과 희생이라는 단어는 국정교과서만큼이나 뻔하고 지루했다. 자신감이 흘러넘쳤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손에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가족들이 그러다 결국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면 어떡할 건데! 라고 물어오면, 저는 언제든 제가 원하면 40대든 50대든 제가 원하는 상대와 결혼할 수도 있어요. 걱정 마세요, 라고 능글맞게 답하곤 했다.


그런 내가 정반대의 삶의 모양을 그리게 된 계기도 단순했다. 대학원 유학시절 내 삶에 큰 충격을 안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인간에게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관능과 정열은 한시적이고 지속불가능한 가치라는 사실도. 내 서재의 색채가 바뀌기 시작했다. 불태울 듯 강렬한 생을 살다 간 전혜린, 자기 파괴미를 과시한 프랑수아즈 사강, 생의 한가운데를 응시했던 루이제 린저의 시절은 저물고 있었다. 밤 기차를 놓치고 여인의 긴 생머리를 잃어버린 허연의 시구도 끝나가고 있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들의 톤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관능적인 삶>을 썼던 이서희 작가는 <구체적 사랑>에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어른의 관계를 말했고, 안정적인 애인과의 일상을 SNS에 포스팅했다. <일간 이슬아 수필집>의 이슬아 작가도 소개팅 어플 무한 스와이핑의 시절을 건너 "다른 이와 사랑에 빠질 가능성을 모색하기를 어느 순간 멈추고 서로를 확정"하는 일을 동경하기 시작했고 시인 이훤을 만나 결혼을 했다. 허무와 자멸의 아이콘이었던 허연 시인은 늦은 나이에 아이(민재)를 갖고, 민재를 위한 동시집을 냈다. 민재를 보고 있자면 이제는 그만 슬퍼해야 할 것 같다며 툭툭 털고 살아갔다.


물론 여전히 나는 <여둘톡> 팟캐스트를 좋아하고 결혼과 육아라는 삶을 택하지 않은 여성들의 이야기에도 흥미를 느낀다. 여성들의 연대 같은 테마는 내게 언제 어느 때나 강렬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요컨대 대안적 삶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일상의 bgm처럼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동시에 내가 원하는 것 또한 분명하게 안다. 나는 보다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삶을 원한다.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지키는 삶. 연소시키는 게 아니라 건축하는 삶. 소비하기보다 생산하는 삶. 혼자 신나게 날아다니기보다 여럿이 찬찬하게 걸어가는 삶.


임신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내겐 쉬운 일이었다. (모든 여자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남편은 임신과 출산에 대한 선택은 온전히 아내에게 달려있다고 무려 처음 만난 날부터 강조했다. 원한다면 딩크로 평생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혼 2년 차 어느 날 문득 나는 내 삶에 더 큰 책임을 부여해보고 싶어졌다. 그날 점심에 좋아하는 어른을 만났던 게 계기라면 계기였다. 몇 개월 전 퇴직 후 귀농한 직장 상사였다. 그는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한 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했으나 여러 차례의 난임시술로 아내의 몸이 점점 상해 가는 걸 보면서 포기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무엇에도 이른 시기는 없다며 회사나 환경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걸 추구하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승진과 커리어는 물론이고 임신 출산에 대한 사회적 비용까지. 그러나 진실로 내가 원하는 건 아이를 갖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또 다른 의미에서 자신감이 차올라 있었다.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하고 방황하던 시절을 지나, 새 생명을 들이는 일에도 거리낄 이유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나는 이제 준비가 된 것이다. 그만큼 내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는 증명이었다.


동반자에 대한 확신도 중요하다. 나와 함께 이 모든 일을 겪어낼 수 있는 정도의 성숙도를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믿음은 이미 충분했다. 우리는 '마음의 자급자족'이 가능한 상태에서 임신과 출산을 결심했다. 감정과 행복을 외부에 아웃소싱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야 비로소 생식도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허연 시인은 <책읽아웃> 팟캐스트에서 딸을 만난 뒤에 "많은 것들이 애틋해졌다"라고 말했다. 특히 자라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애틋할 수가 없다며. 자신에게 전적으로 모든 걸 맡긴 한 존재로 인해 일어난 일이라고. 그 말이 너무 좋아서 해당 에피소드를 3번 정도 다시 들었다. 모든 것을 처음 겪을 수 있는 어린 생명이 있다는 것이, 무려 내 몸이 그러한 존재를 길러낼 역량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그러나 임신은 생각만큼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고 20년간 다른 일만 하던 포궁에게 본연의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 서서히 깨워야 했다. 반년 간의 노력에도 자연임신이 되지 않자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고 9개월 만에 성공하여 이제는 임신 6주 차에 접어들었다. 어제는 처음으로 태아의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울컥하는 마음을 겨우 참았다. "나는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여자야!"라고 센 척하면서 말이다. 아직 2mm인 아이가 벌써 심장이 뛴다는 사실이 놀랍고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내 안에 또 다른 생명이 있다니.


나는 이제 두 개의 심장을 품은 여자니까. 마음도 두 배로 넓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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