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퇴치기를 사러 간 날에 생긴 일
평소와는 다른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될까.
그 상황을 보고 얼어붙는 사람, 그냥 지나치는 사람,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머뭇거리다 다가가는 사람. 그 순간이 닥쳐와야만 알게 되는,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이 있다.
오늘, 여권 사진을 찍는 김에 모기퇴치기를 사러 남편과 다이소에 갔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서 지하 주차장에 내려갔다. 주차할 자리를 찾느라 빙빙 돌다가 구석진 자리에 겨우 차를 댔다.
며칠째 비가 내려 바닥은 미끄러웠다. 차에서 내리려던 순간, 앞에 폐지를 가득 실은 박스를 앞뒤로 끌고 가는 노인 두 분이 보였다. 우리는 그분들을 지나 건물 입구 쪽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철퍽!”
어딘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여보!” 하고 찢어질 듯한 비명소리에 내 몸이 저절로 돌아갔다. 할아버지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머리 근처에는 피가 번지고 있었고, 남편을 안은 할머니 얼굴이 흙빛이었다.
순간, 나는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입은 열렸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남편을 먼저 발견한 할머니가 외쳤다.
“아저씨! 119 좀 불러줘요!”
남편은 이미 입구 쪽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그 외침이 들리지 않은 듯했다. 나는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주니 아빠! 119요! 빨리 전화해요!”
남편이 돌아봤다. 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할머니는 하얀 수건으로 할아버지의 머리를 눌러 지혈 중이었고, 나는 다시 외쳤다.
“빨리요, 119!”
남편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다. 주소를 묻는 말에 버벅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재빨리 덧붙였다.
“**동 다이소! 고메 스퀘어 지하 주차장 1층이에요!”
남편은 전화를 끊고 할아버지의 의식을 확인했다. 그러더니 나에게 말했다.
“밖으로 나가. 구급차 오면 방향 알려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1층 출구로 달려갔다. 습기로 젖은 바닥이 미끄러워 조심조심 발을 옮기는데, 머릿속엔 ‘철퍽’ 소리가 계속 맴돌았다. 심장이 멋대로 뛰었다. 밖에서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멈춘 듯했다. 지나가는 차들 사이로 구급차는 보이지 않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한참 후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차가 멈췄고, 구급대원 세 명이 장비를 챙겨 내렸다. 주차장 입구로 더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는 천장이 낮아서였다. 나는 급히 그들을 따라 내려가 방향을 알려 주었다. 가던 길에 한 대원이 물었다.
“환자분과 어떤 사이세요?”
“지나가던 사람이에요.”
내 입에서 나온 말이지만 마치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낯설었다.
대원들은 신속하게 상처를 소독하고, 할머니께 물었다.
“여기서 꿰맬까요, 병원으로 가시겠어요?”
할머니는 병원에서 할아버지를 치료받겠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고 느꼈고 남편의 팔을 가볍게 끌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는 남편에게 휴대폰을 내밀며 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다. 사례라도 하고 싶다고.
나와 남편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고, 할아버지 쾌차를 빌며 그 자리를 뜨려고 하자 할머니와 구급대원들이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도 함께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었다. 안에 들어선 뒤, 남편이 말했다.
“할아버지 의식은 괜찮으셨고, 할머니랑 계속 얘기했어. 조금이라도 안정을 드리고 싶었거든.”
나는 고개를 돌려 남편을 바라봤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바라보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 사람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는 말을 떠올렸다.
그래서였을까. 오늘의 그가 유난히 존경스럽고, 위대해 보였다.
다이소에서 이것저것 물건을 살펴보던 그가 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이것도 사도 돼?”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사고 싶은 거 다 사요.”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길에 한쪽에 놓인 그분들의 작은 트럭이 눈에 들어왔다. 말은 없었지만, 우리 둘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부디, 할아버지께서 무사히 회복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