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슨카운티의 다리(로버트제임스윌러)를 읽다가 든 생각
애매함으로 둘러싸인 이 우주에서, 이런 확실한 감정은 단 한 번만 오는 거요. 몇 번을 다시 살더라도, 다시는 오지 않을 거요.
드라마 속,
비 오는 날 멋진 남자가 여자에게 갑자기 우산을 씌워주는 장면.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친 낯선 남자와의 눈 맞춤으로 시작되는 두근거림.
우리는 살면서 한 번쯤은 그런 순간을
직접 겪었거나,
적어도 한 번쯤 상상해 본 적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이 한 번은 존재했다.
대학 시절, 중앙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하숙집으로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 순간, 소나기가 마치 폭우처럼 쏟아졌다.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어 버렸다. 옷차림은 엉망이었고, 그 모습은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창피했던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발등만 바라보며 걷고 있었다. 하숙집이 가까워질 무렵, 갑자기 머리 위로 우산 하나가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누군가가 말없이 우산을 씌워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얼굴을 들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채, 나는 서둘러 하숙집 골목 안으로 도망치듯 들어가 버렸다.
스무 살의 기억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현실은 늘 그렇게 낭만을 비껴갔던 것 같다.
가끔 남편에게 젊은 날 우리가 주고받았던 설렘을 꺼내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런 걸 기억하냐?”며 웃는다.
“나이 오십이라고 감정이 없나?”라고 받아치면,
“나잇값 좀 해라.”며 면박을 준다.
며칠 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다시 펼쳤다.
아주 오래전 읽었을 때 들었던 애잔한 느낌을 떠올리며
프란체스카의 남편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내 남편이랑 똑같지?”
삶과 타협하면서 적당히 세월의 편안함을 즐기는
중년의 남편 모습이다.
프란체스카에게 나타난 남자가 현실에도 존재할까?
세계 곳곳을 떠돌며
자기 일에 열정을 쏟아붓는 삶을 사는,
고독한 눈빛을 가진 남자.
그런 사람이 갑자기 길을 물어본다면
나도 그녀처럼 한눈에 반할까.
글쎄...
딱 10년 전이었다면 모르겠다.
다정하고 섬세하며,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바라봐 준 사람.
프란체스카에게 로버트와의 나흘은
잊고 지낸 자신을 다시 만나는 시간이자,
여자로서 마지막으로 타오를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따라가다 보면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청춘의 사랑이 심장을 뛰게 하는
불확실한 모험이라면,
중년의 사랑은 함께 한 세월을 견뎌낸
예측 가능한 편안함이랄까.
거실 소파에 누워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을 바라본다.
우리도 이들처럼 불같이 사랑했던 때가 있었던가.
젊음은 지나가고,
서로의 눈빛에 설레던 시절은
이제 기억 저편에 놓였지만,
이렇게 곁에 있다는 것.
노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바라보고 있다는 것.
사랑이란
타올랐다 식어가는 불꽃이 아니라
긴 시간 속 서로의 온기를 품은
묵직한 동행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유통기한을 말하는 건,
그 소멸을 인정하려는 게 아니라
끝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모순이다.
그 사랑은 젊음의 황무지에 조용히 피어나,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향기를 남기고
마침내 잔잔한 추억이라는 꽃으로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