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오늘 국가건강검진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 마음이 싱숭생숭하더니, 급기야 오늘은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타듯 곤두박질쳤다.
예전엔, 건강검진은 내 몸을 꼼꼼히 확인받는 기회라 여겨 오히려 기대감에 부풀기도 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는 병원이라는 공간 자체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난 10년 사이에 내게 일어난 일들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유방암 수술 이후 5년간 이어진 정기검진은 늘 공포였다. 결과가 깨끗하다는 말을 들어도 “다음에는 또 어떨까” 하는 불안이 먼저 앞섰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지 다짐하면서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두려움은 끝내 떨쳐낼 수 없었다.
갑상선 수술을 받았을 때는 내 몸이 더 이상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의 형광등을 바라보던 순간, 나는 철저히 무력한 존재였다.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은 사라지고,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저만치 물러서야 했다.
엄마의 혈액암으로 암 전문 병원을 오가던 시간들. 그곳에서 나는 수액 줄에 매달려 지친 얼굴로 앉아 있는 환자들을 마주했고,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대기실을 오갔다. 응급실에서는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눈앞에서 목격해야 했다. 그리고 결국, 병원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 후로 병원은 내게 단순한 의료 공간이 아니었다. 상실과 공포가 되살아나는 장소가 되어버렸다.
이런저런 기억들이 떠오르자, 병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몸이 축 늘어지고 힘이 빠졌다. 접수를 마치고 점검 내용을 기록하는데, 수녀님께서 다가와 도와주셨다. 누락된 부분이 없는지 하나하나 확인해 주며 따뜻한 미소를 건네셨다. 그 순간, 처음으로 누군가의 도움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무겁기만 했던 병원이라는 공간이 온기로 가득했고, 잠시나마 힘겨웠던 기억을 떨쳐낼 수 있었다.
수면 위내시경을 기다리며 침대에 누워 있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내 차트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유방암과 갑상선암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겠네요.”
그 한마디에 눈물이 차올랐다. 내 삶이 고통의 기록으로 빼곡히 적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선생님의 말씀은 생각지도 못한 위로로 다가왔다. 누군가가 내 지난 시간을 알아봐 주고, 그 고단함을 인정해 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 깊은 곳의 묵직한 통증이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가끔은 생각한다. 나의 뇌를 내가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행복하고 싶어' 하면 행복해지고, '이 정도면 괜찮아' 하면 알아서 감정이 차분해지도록 말이다.
책 속의 글, 명상, 해탈한 이들의 명언은 머리로는 이해된다. 한동안은 나도 그렇게 되는 것처럼 조금 더 단단해진 듯 행동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와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다. 내 안의 상처와 두려움이 너무 깊어서, 언제나 몸이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지금, 참 잘 견디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생이란 어떻게든 끝마쳐야 하는 힘든 과제와 같다.”
어쩌면 내 인생도 고통과 불안이라는 과제를 끝까지 풀어내야 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사이에 스며드는 작은 위안과 빛을 과제의 해답으로 삼고 싶다.
그것이 내가 오늘을 살아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