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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예민한 감각

따뜻함이랍니다!

by 나비


예민한 사람이라고 하면 흔히 날카로운 반응과 신경질적인 행동들,
호불호에 대한 강한 표현, 잦은 짜증 등의 모습을 떠올리기 쉽지만,
성격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예민한 기질을 가진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게도
이와는 정반대의 행동패턴을 보입니다.
이들은 오히려 늘 상대에게 맞춰주고, 갈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노력하며,
남에게 폐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사실 누구보다 따뜻하고 배려심 넘치며,
언제나 타인의 감정과 분위기를 살펴 모두를 편하게 해주려 애쓰는 사람들이죠.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최재훈-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의 부탁은 잘 들어주면서 남에게 부탁하는 건 잘하지 못했다. 부탁한다는 게 마치 그 사람의 시간과 정신, 편안함에 방해를 주는 것 같았다. 또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는 순간 불편한 마음도 들었는데,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함이 불편함으로 나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에서 나오는 분위기를 빠르게 감지하는 예민함때문에 종종 스스로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기도 했다. 상대방은 모르겠지만 혼자서 상상을 하는 것이다. 지금 저 사람은 방금 내가 한 말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 라며 말이다. 그래서 회의를 하거나 협의시간에 조용히 분위기를 살핀다. 언어 선택도 신중을 기하기 때문에 말할 타이밍을 놓치기도 했다.


가끔 협의실에 나와 다른 사람이 함께 있다 보면 어색한 공기가 흐르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어색함이 싫어 그때는 그에 대한 화제를 먼저 꺼낸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사람은 어느새 이야기꾼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한 번은 나에게 이야기를 참 잘하신다는 말을 했는데, 생각해 보면 나는 듣고만 있었다. 그는 자신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는 걸 잊어버린 듯했다. 그러나 그 상황이 어쨌든 내가 주로 듣는 입장이었어도 결국엔 서로 대화를 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예민한 사람은 특히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고 한다. 나의 일화를 하나 말해보려고 한다. 지난 명절 때 나는 사촌동생을 만나 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으로 비싼 스테이크를 먹었고 집에 와 다 게워낸 적이 있었다.

그날 사촌동생이 겪고 있는 집안 스트레스를 듣다 나도 모르게 감정몰입이 되었고 동생을 괴롭히는 다른 동생들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흥분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엄마에게 의존해 살고 있는 언니를 향한 동생들의 무시와 멸시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촌동생이 너무 불쌍했다. 자매지간이라지만 너무 심한 언행에 내가 마치 사촌동생인양 화를 벅벅 내며 스테이크를 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겼던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 그 애와 통화를 했을 땐 동생들과 잘 지낸다고 했고 나는 그날 급체를 했다는 말을 하며 서로 웃었던 기억이 난다. 비싼 스테이크와 급체로 인한 병원비로 얻은 교훈은 절대 남의 감정을 내 것으로 만들지 않아야겠다는 것이다.


예민한 성격은 참 재미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통상적인 정의와
심리학에서 규정하는 학문적 정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죠.
예민한 '행동'의 동기는 전적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반면 감각적으로 예민한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이 느끼는 불편함에도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오로지 내 편의를 위해서만 행동할 수 없습니다.
예민한 행동과 예민한 감각은 반드시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왜 남들보다 쉽게 지칠까/최재훈-


가끔 타인의 무례함-여기서는 예민한 행동-에 상처받기도 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똑 부러지게 상대를 바라보고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거침없이 말하고 싶다......라고.

하지만, 내가 예민한 감각을 지닌 것이지 예민한 행동을 해왔다는 건 아니라는 점은 정말 다행이다. 다른 사람을 향해 뻗어 있는 안테나를 이제는 나에게 돌려놔야겠다. 나의 감각이 결코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누군가를 위한 따뜻한 관심이며 배려라는 걸 알게 됐으니 말이다.


혹시 저처럼 예민한 감각을 가지신 분들이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타인을 위해 애쓰려는 타고난 감각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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