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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우리의 태도와 행동을 형성하는가!

교장갑질신고 해프닝

by 책그림 Feb 13. 2025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를 읽고 난 후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어 적어보려고 한다. 벌써 4년이 지난 이야기가 돼 버렸다. 당시 살던 지역에서 1시간 30분 정도 운전을 하고 출근하는 학교에 발령받은 나는 통근거리에 눌려 관사에 살기 시작했다. 이제 막 6학년이 되는 막내를 데려갔기 때문에 저학년을 맡았다. 딴엔 교장선생님의 큰 배려였다고 했고 이후엔 다시 고학년을 맡아야 한다며 못을 박았다.

      

큰 학교에서만 근무했던 나는 작은 학교 시스템이 너무 낯설었고 특히 교장선생님의 독단적 리더십에 적응할 수 없었다. 뭐 나만 느꼈던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 같았고 기존에 근무했던 선생님들은 이미 포기한 상태였다.      

나만 괜찮다는 심리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직원 협의회 때 교장선생님이 내는 의견에 의의를 제기하는 선생님이 있었고, 그녀는 일 년 내내 교장선생님의 까칠한 눈총을 받았다. 솔직히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심히 지켜만 보고 있었던 나였다.      


어느 날, 교장 선생님은 노크도 없이 교실 문을 확 열고 들어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때부터 불쾌감이 올라왔을 것이고(보통 노크를 한 후 인기척을 보내지 않은가?) 이후 교장 선생님은 2학년 아이들의 발표력에 대한 불만과 이전 담임 선생님의 흉을 보기 시작했다. 결론은 올해 2학년 아이들이 아나운서처럼(자신이 생각하는) 말할 수 있게 잘 가르쳐달라는 말이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아마도 나의 표정에서 교장은 자신이 거부당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사람은 특히 윗사람은 자신이 거부당한다는 것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무조건 자신은 옳으니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굳어버린 이는 특히 그렇다.      


나는 아직 2학년에게 아나운서처럼 말하게 하는 정도까지는 무리다...라고 했고 지금 아이들의 발표 정도를 확실하게 모르고 있으니 차츰 알아가며 개인차를 고려해 가르치고 싶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교장의 표정이 점점 흙빛으로 변해가는 걸 보면서도 끝까지 말이다. 그녀에게 나는 자신을 거역하는 일종의 반대자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이후 나는 그녀와 많이 부딪혔다. 공문이 올 때마다 매번 지시 사항이 내려졌고, 결재를 올리면 내려오라고 해서 공문 내용과 계획에 대한 나의 사전 지식을 물었다. 그리고 왜 틀렸는지를 짚어가며 가르쳤다. 너의 무능함은 이 정도다, 그러니 잘 듣고 다시 해와라. 견딜 수 없었던 건 이전의 잘못(그게 진짜 잘못이었을까?)을 들춰내며 또 이렇게 하면 어떡하냐며 소위 참을 수 없는 단어로 나의 행동을 빗대어 무시했고 나는 모멸감에 부르르 떨었다.     


이게 노골적인 비인격화라는 것인가! 교사인 나를 학생으로 대하고 있는 교장을 쳐다보며 다음부터는 녹음 버튼을 누르고 들어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날 저녁 관사에서 저녁을 먹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교무부장에게 울면서 그동안 참았던 속내를 털어놓았다. 마지막에 나는 교장 갑질 내용을 교육청 신문고에 올릴 것이다...라고 소리쳤다.    

  

다음날, 교장은 나를 불렀다. 아마도 부장이 내 말을 그대로 전한 것 같았다. 벌게진 얼굴로 교장은 나에게 홍차를 권했다. 차를 마시면서 교장과 나는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 조각조각 흩어진 퍼즐을 맞추기는 힘들지만, 그녀는 내가 오해한 거라며 절대 자신이 갑질을 한 건 아니라고 했다. 내가 팔랑귀라는 말을 했던가? 남편은 늘 나를 팔랑귀라며 놀린다. 그때도 아마 그녀의 진심을 받아주고 나의 상황을 말했던 것 같다. 솔직하게 내가 느꼈던 불안과 모멸감을 말이다.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달랐을 것이다. 그 상황이 좋던 나쁘든 자신이 살아온 경험치로 서로를 보았겠지. 결국 그녀와 나는 결이 달랐다. 그걸 서로 인정하는 순간 게임은 끝났다. 인정은 우리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부장의 결단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 전날 나의 폭풍 같은 오열과 적개심으로 불탄 갑질신고(사실 난 겁이 많아 그렇게 못한다. 단지 그날은 알코올이 들어간 상태였기에 거침없이 하고 싶었던 말을 쏟아냈던 것 같다.) 예고에 부장은 상황이 심각하다는 걸 본인 판단하에 교장에게 전달했던 것 같다.     


무엇이 그 시절 나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했을까? 지금이라면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생긴다. 4년 전 나는 낯선 환경과 개인적인 불안한 상황에 극도로 민감해 있었다. 그래서 나 스스로 여유라는 걸 만들지 못했고 그로 인해 타인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있었다고 본다. 이제야 웃으면서 이 글을 쓰게 됐는데, 그건 아마도 나의 태도와 행동을 결정했던 건 내 앞에 있던 상대가 아닌 그 상대를 바라보는 내 시선에 있었음을 이해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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