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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잰 Jul 08. 2023

[루잰 수필] 작지만 열심이다.

느리지만 때론 빠른...

 지난 3월 31일에 시금치 한 단을 샀는데 그 안에서 작은 달팽이 2마리가 나타났다. 잠시 고민하다가 우리 집 작은이(검은 고양이 1마리, 금붕어 2마리, 작은 식물등)들의 패밀리에 끼워 주기로 결심해 버렸다. 그리곤 흙과 먹이를 준비해 통기성 있는 집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곤... 오늘은 7월 8일이다. 3개월하고도 8일을 아주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키웠는데 점점 신기함과 애틋함으로 변화하고 있다. 흙을 갈아주고 상추도 주고 물도 주면서 자꾸만 들여다보게 된다. 

  이 달팽이들(이하 '핑핑')은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한다. 그리고 먹보들이다. 또 식성에 취향이 있다. 아니, 이 작은 것들도 취향이 확고하고 자기 패턴이 있구나라는 것을 핑핑이를 알기 전에는 몰랐었다. 


  내가 때론 나태해지고 감정에 빠져 무기력해질 때 문득 핑핑이가 생각났고 어항 속의 금붕어들 그리고 유기묘였던 검은 고양이 호두가 떠올랐다. 그 아이들은 참 열심이다. 먹을 일에도, 잠을 자는 일에도, 주변을 관찰하는 일에도, 나와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도(특히 호두)...  뭔가 최적의 상태와 환경은 아닐 텐데도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는 우리 작은 아이들이 참으로 기특하게 느껴졌었다.


  작년 4월 말로 임기제공무원으로서의 역할을 마치고 퇴직을 한 후 한참을 상실감에 빠져 지냈었다. 한동안은 그동안 못 갔던 여행도 가고 지인들과의 시간도 가지면서 즐거웠는데 시간이 갈수록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이 느껴졌다. 6년간을 서울시 정책사업을 자치구 현장에서 펼쳐내는 일을 하면서 참 열심이었다. 열정이 있었던 만큼 상실감과 허전함도 더 컸겠지. 그러면서 종종 무기력함에 빠지고 소파와 하나 되는 소아일체 현상이 참으로 잦았다. 연구소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연구소가 나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했었는데... 이 작은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심기일전하게 된다. 내가 이 녀석들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이 녀석들이 나를 돌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작은 녀석들도 이리 열심히 사는데...

  나도 열심히 살자...


집청소를 위해 잠시 뚜껑으로 이동한 '핑핑'
탈출을 시도하는 '핑'
집청소 마치고 밥도 새것으로 바꿔주니 좋아하는 '핑핑'
꿀잠 후 완전히 잠이 깬 '핑핑'
달팽이도 때론 빠르다.'
공부하는 호두
휴식 중인 호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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