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살았으면 좋겠다

by 루카

나의 주된 정신질환은 제2형 양극성 장애이다. 이름이 그럴싸해서 외우기 어려운데 쉽게 말하면 약간의 조증이 있는 조울증이라는 말이다. 우울의 성격은 심하지만 조증은 그렇게 극단적이지 않다는 정도에 위안을 삼을 수 있을까.


이것 말고도 의사 선생님은 내 병은 하나로 정의되는 질병이 아니라고 하셨다. 슬쩍 지나가는 말로는 조현, 강박, ADHD, 불안... 뭐 붙이자면 그런 정도라고 하셨지만 그 조차도 확실히 대답해주시진 않았다.


원래 병원에서 병명은 잘 알려주는 부분이 아니기도 하고 나의 성격상 그걸 알아도 병에 도움이 되지는 않으며 선생님의 판단으로는 현재 상황에 맞춰서 약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다. 결론은 병명을 명확히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이 우울증이어서, 그리고 조울증으로 결론 난 것까지만 알고 있다.


여기까지 오는데 병원을 두 번이나 옮겼다. 병원들이 치료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다른 곳도 같은 진단을 내리는지 궁금한 심리에서 옮겼고 다 비슷한 진단을 하고 계시니 내 병은 복합적인 게 맞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전문의가 아니라서 의사의 말을 믿어야 한다.


과잉 진료에 대해서도 생각해봤지만 대체로 정신과에서는 조금씩 약을 올려가지 처음부터 세게 약을 쓰지는 않는다. 세 군데 다 그렇게 진행되었다.


결국 나는 그냥 정신질환자여서 약을 먹고 있는 건 맞지만 그 이상으로 명확하게 내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때 그때 상태에 따라서 때로는 죽고 싶고 때로는 자해를 하고 때로는 무기력하고 말이 많아졌다가 혹은 사소한 것에 불안에 떨기도 하고 손을 씻기를 좋아하고 등등등이다. 분석하자면 끝없이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는 내 성격에서 과연 정상인 것은 무엇일까? 내 안에 정상의 범주가 있기는 한 걸까.


약을 먹으면 조금 안정적으로 변하고 그런 위험한 생각들이 사라지고 오지 않던 잠을 잘 수 있게 되는 정도가 약의 효과 같다. 약에 대해서 샅샅이 공부하던 시절도 있었다. 의사가 먹이는 약이 뭔지, 내 병이 뭔지 궁금해서 모두 찾아보고 기록했다. 하지만 결국 몇 년에 걸쳐 약을 먹으면서 그렇게까지 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약은 의사 선생님이 처방하시는 대로 먹고 문제가 있거나 불편하면 다음에 가서 증상을 얘기하고 약을 조절한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가던 병원을 이제는 이주에 한 번 간다는 정도가 나아졌다는 척도랄까.


이 병이 언제 다 괜찮아지는지는 모른다.


내가 나을 의지가 있으면 낫는 것이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나을 의지는 늘 있었다. 그리고 병에 늘 졌다. 이기는 듯하다가도 나를 넘어 지나가는 병이 지긋지긋하고 싫다. 내가 아파서 가장 싫은 건 결국 나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특히 주변에 말도 못 하고 병원에 다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정신질환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나쁘기 때문에. 나는 오히려 그런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라도 사람들에게 내 질환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만, 그건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내가 아픈 것을 공개해서 좋은 것은 나처럼 아프지만 병원에 갈 엄두를 못 내는 사람을 독려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는 정도이다. 내가 병을 치유해주거나 상담을 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내가 위로받기 위함도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아프다고 하면 측은하게 바라보기는 하지만 내 의도는 다르다. 나는 내가 아파서 연락을 받지 못할 때 이유를 알려주고 양해를 구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은 상담을 해오는 이유는 역시 내가 내 병을 공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아픈 사람이 제일 잘 아는 법이니까. 그러나 정신질환은 종류가 많다. 그러니 좀 이상하다 싶으면 그냥 병원에 가기를 권한다. 병원에서 전문의가 판단할 몫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론 병원에 가라는 말 정도는 해줄 수 있다.


결국 나는 내 병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의사도 알려주지 않는 걸 내가 무슨 수로 알아낼까. 물론 꾸준히 정보를 얻으려고 하고는 있지만 말이다. 나에 대해 관심이 많은 나는 내 병이 뭔지 알아서 치료하는 방법도 찾아보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아마 포기하지 않고 한두 번 의사 선생님께 병에 대해서 물을 것이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역시 말해주지 않으시겠지만.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복합적이라는 얘기도 어디서 주워 들어서 내가 심각하게 아프거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약을 먹으면서 살아서 그렇지 잘 살아가고 있다. 조금 나아지는 것도 같다. 그럼 된 거 아닐까.


예전에는 못하던 것을 한다. 남들이 하는 산책, 독서, 청소, 빨래, 설거지. 이런 것들을 못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그랬다. 다른 사람은 어떤 증상으로 질환이 나타날지는 모른다. 정신질환만큼 까다로운 것이 없다. 팔이 아프고 다리가 아파도 이유가 다 다르듯 뇌가 아픈 것도 이유가 다르다.


결론적으로 나는 병명을 모르면서 이 모르는 병을 안고 조금은 이겨가면서 살고 있다.


그러니까 나와 같이 앓고 있는 사람들도 한 걸음이라도 괜찮으니 어제보다, 아니 어제만큼이라도 살았으면 좋겠다. 그냥 나는 당신이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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