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걷는 일

by 루카

아침에 일어나서 무거운 몸을 겨우 씻긴다. 그리고 하는 일은 밖으로 나가는 일이다. 때로는 점심을 먹고 나간다. 나간다는 일을 하기까지 엄청 무겁고 힘든 시간, 괴로운 시간을 지난다. 마치 운동 가기 전에 나가기 싫음보다 조금 더 하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남들은 좋아 보이는 산책을 한 바퀴 쓰윽하고 해를 받다가 돌아온다. 치유에 도움이 된다는 말에 하고 있는 일이지만 사실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흔히 뇌질환에는 햇빛을 받는 게 좋으며 가벼운 산책을 하라고 어디서든 권하니 나도 좋겠지 뭐, 하며 의미 없이 걷는다.


그래도 전에 비하면 감사한 일이다.


우울증이 심각할 때는 나가는 일은커녕 화장실 가는 것도 버거웠다. 이해가 안 되면 당신은 정상인이다. 너무 지쳐서 화장실조차 가기 힘든 상태가 하루 종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고 있으면 밖에 나가서 해를 보라는 말은 화가 나는 말이다. 일단 나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는데 해가 있는데 까지 나가라니.


그런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는 귀찮고 힘들기는 하지만 버겁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정도의 기운이 생겼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그만큼 우울증이 가벼워졌다는 말이기도 하니까. 호전이란 단어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좋아지고 있다는 말. 나는 지금 좋아지고 있는 중이다.


고작 산책이다. 정말, 누군가에게는 너무 쉬운 일. 바빠서 못하긴 하지만 시간을 내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을 겨우겨우 한다는 건 상대적으로 나를 낙오자로 만든다. 그것도 못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나만 바라봤을 때 고작 걷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나는 이제 밖을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그것도 20분 이상. 누워서 움직이지 못하던 때랑 비교하면 기적이다. 정신만 살아있는 식물인간이 이제는 걷는다. 그건 기적 아니고는 말로 설명하기 힘들다.


조울증은 이렇게 나에게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고 가벼운 일조차 어렵고 힘들고 고된 일로 만들었다. 덕분에 피해를 보는 건 산책조차 못하는 어린 딸이었다. 딸아이 때문에 겨우 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나마 나의 구원은 딸이었다. 남편은 바빠서 나의 거동을 생각할 수도, 아니, 이렇게 사지 멀쩡한 사람의 거동을 신경 써야 한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건 비난할 일은 아니다. 나도 나의 거동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낯설었으니까.


머리로는 밖으로 나가서 햇빛을 쐬고 산책하면 좋다는 걸 알면서도 자리에 누워서 무기력하게 해가 뜨고 지는 걸 보는 나는 너무 괴로웠다. 내가 너무 하찮았고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었고 죄 많은 인간이었다. 게으름은 죄라고 하는데, 나는 중죄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보면 이건 게으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뇌질환이 생기면 뇌가 몸을 쓰지 못하게 하기도 하고 행동에 오류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는 말을 더듬었고 어떨 때는 너무 크게 떠들었으며 어느 날은 사람의 눈을 맞추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물론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약간씩은 겪는 일이다. 근데 병자인 나의 증상은 과도했고 나의 스스로도 평범했던 날들에서는 많이 멀어진 것들이었다.


우울증 환자에게 나가서 걷기를 권하는 많은 사람들, 입으로 말하기도 벅차게 많은 사람이 있다. 의사 선생님부터 주변 지인, 혹은 스쳐 지나듯 아는 사람들까지 전부. 근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고작 밖에 나가서 걷는 일이라고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노인이었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다. 내가 나이가 많은 노인이었다면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정정하다는 말을 듣지 않을까 하면서 스스로의 비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우울증 환자들은 누구보다 자책을 많이 한다. 남들이 굳이 해주지 않아도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쁘다고 여긴다. 내가 게으르고 뒤쳐진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고작 걷는 일도 이렇게 힘겨우니 그렇게 보일 법도 하다. 그래도 나는 하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고작 걷는 일이 아니라 드디어 대단하게도 걸을 수 있다고 본인을 칭찬하고 사랑해주면 좋겠다.


누군가 남들이 일하는 볕 좋은 시간에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걷고 있다고 팔자 좋다는 생각은 버리자. 그 사람은 겨우 나와서 힘겹게 병과 싸우는 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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