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창 앞에 서면 산이 보인다. 겨우내 말라가던 가지들이 어느새 잎과 꽃을 피워내고는 푸릇푸릇하다. 나무는 그저 겨울을 견디고 잎을 싹 틔우고 푸릇해졌다 단풍이 들고 또다시 잎을 떨구는 일만으로도 일 년을, 아니 오래도록 살아간다.
인간의 삶은 어떤가.
나는 아침을 먹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청소를 하고 씻고 글을 쓴다. 그렇게 하루를 채우고 나면 또 다음 날의 루틴이 시작된다. 루틴으로 보내는 하루하루.
예전에는 살아가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정의를 위해 싸우는.
그런데 40살 가까이 되도록 살아보니 정의를 위해 특별히 악과 맞서서 싸우는 일보다는 루틴에 의해 일어나고 먹고 자는 삶이 더 자주 반복되고 이어진다. 특별함이 무언지 몰라도 매일 만화나 영화처럼 사건사고가 일어나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그것과 아주 먼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삶의 의미를 찾다가 우울해진다. 당연히 의미가 없으니까 우울해지는 건데, 내가 의미가 없다고 하기엔 존재만으로도 의미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또 한다.
당신은 존재만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아무리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래도 나의 존재가 고작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니 믿을 수 없다. 나무는 의젓하게 자신의 루틴으로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는데 인간의 욕심이란 원래 만족이 없어서 살아가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인정받고 싶고 어딘가 더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가고 싶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저런 노래가 유행인가 보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상적인 내 모습은 너무 커다란데 거기에 다다를 수 없는 나는 너무 초라하다.
그런 생각과 함께 내가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을 같이 하게 되는 것도 하나의 위로이다. 내가 별 거 아니어야 이 삶을 인정할 수 있다. 내가 지구를 구하지 않고 살아도 되는 이유를 부여한다. 나는 지구를 구할 힘이 없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하다.
오늘도 창 밖의 나무를 보며 나무처럼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리에 꿋꿋이 같은 것을 반복해도 지루해하지 않고 의젓하게 사는 삶.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물론 잘난 사람은 차고 넘쳐서 이름을 남기기도 하지만.
나는 평범한 나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