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할 일이 있으면 아침에 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전에는 낮이나 밤에 하는 것이 좋았는데 이제는 아침에 얼른 하고 점심과 저녁은 쉬고 싶어 진다.
오늘도 진료가 12시에 잡혔다. 너무 가기 싫다. 차라리 오전 9시에 가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게다가 오늘은 아마도 또 증약을 하게 될 예정이라서.
나는 가끔 병원을 가고 가끔 미용실을 예약한다. 예약을 하는 일은 대체로 오전. 약속도 오전에 잡는 편이다. 할 일이 있으면 미루지를 못한다. 친구는 이것도 강박증이라는데, 뭐, 강박증이어도 상관없다. 내가 그게 편하니까.
오늘 12시의 진료는 어제부터 가기가 싫었다. 증약 예정인 건 차치하고 그냥 그런 날이 있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싫어지는 날. 병원에 가는 일은 일주일 전부터 잡혀 있어서 그러려니 하고 있었는데 어제부터 무척 가기 싫어졌다. 숙제 같은 병원 방문.
숙제도 막상 하려고 하면 하기 싫어지는 청개구리 정신이 있다. 아마 오늘의 병원 예약도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되었나 보다. 보통은 청소도 빨래도 설거지도 그냥 하던 것들이 하기 싫어지는 날이면 나는 일단 다음에 하고 싶을 때나 아무렇지 않게 해낼 수 있을 때로 미뤄버린다. 물론 미루고 미루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가 오기도 한다. 그러면 적당히 해놓고 일을 또 남긴다. 괴이하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일을 많이 할 기력이 없으니까. 하지만 병원은 미룰 수가 없다.
하기 싫은 일만 잔뜩 있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요즘 나에게 재미있는 일도 있다. 브런치에 글쓰기이다. 혼자 주절거리고 있지만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즐겁다. 같이 공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위로를 받고 혹은 도움을 받기도 하는 이 공간에서의 글쓰기가 행복의 하나이다. 이걸 미루고 싶은 생각은 아직까지 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일은 미루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글쓰기가 좋다. 글을 쓰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이 정화되는 그 느낌이 좋다. 물론 글을 쓰고 나면 비워낸 공간이 휑해져서 다시 그 빈칸을 정리하기 위해 쉬기도 해야 하지만 말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
아, 그래서 오늘 병원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묻는다면 가긴 가야 한다. 먹어야 하는 약이 다 떨어졌다. 약을 안 먹고 견뎌보는 건 어떠냐는 소리를 가끔 듣는다. 내가 암에 걸려서 항암치료로 약을 먹는대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과한 약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의 의사 선생님이 과한 진료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나의 상태는 증약을 하고 조금 좋아졌지만 위태위태하다. 마치 꽉 찬 독 같다. 물을 한 방울만 더 떨어트리면 흘러내릴 거 같은 상태. 그래서 그 한 방울이 들어와도 독이 넘치지 않도록 그릇을 좀 크게 키우는 약이 필요하다. 오늘 내가 의사 선생님과 해야 하는 작업은 그것이다.
그릇을 키우는 것.
남들보다 작은 그릇을 가지고 있는 나는 그것이 넘치지 않도록 언제나 종종거린다. 넘치면 나에게 해로우니까. 마음의 병은 약으로 어느 정도 잡아줄 수 있다고 한다. 근데 완전히 치료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의사 선생님도 나더러 남들과 좀 다르다고 하셨는데 기질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까? 방법을 더 모색해야겠다.
하기 싫은 일은 많지만 그래도 오늘 하루를 이어간다. 병원도 다녀올 것이고 약도 타 올 것이다. 아직은 약을 끊을 만큼의 호전이 된 것은 아니므로. 그래도 언젠가 끊을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나와 같이 정신질환을, 혹은 다른 질환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두에게 오늘 하루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