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동네 산을 산책했다. 산책하는 동안 다람쥐를 4마리나 봤다. 한꺼번에 본 것은 아니고 한 마리씩.
"다람쥐다. 너무 귀엽다."
하지만 다람쥐는 야속하게도 가까이 다가가면 뽀르르 도망을 갔다. 사진이라도 찍을 여유라도 주길 바란 것이 욕심이라는 듯이 뽈뽈 사라졌다. 또 다른 한 마리는 풀을 뜯어서 오물거리며 주위를 경계했다. 다람쥐는 도토리와 밤만 먹는 줄 알았더니 그건 아니었나 보다.
다람쥐는 작고 귀여웠다. 손바닥에도 올릴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엄마 다람쥐 잡아서 키우면 안 돼?"
역시나 귀여운 걸 보면 키우고 싶은 생각부터 하는 딸이 말했다.
"야생 다람쥐는 잡아서 키우면 죽어."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결국 살던 대로 적응해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셈이 되었다. 사실 야생 다람쥐를 잡아서 기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못한다. 의외로 적응해서 잘 살 수도 있고 스트레스로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다람쥐를 잡는 일련의 과정부터 시작해서 키우는 것이 귀찮아서 그렇게 말해버렸다. 너무 쉽게 단정해서 말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지만 뭐 어떠랴. 어차피 다람쥐 잡아서 키울 생각이 없는 것을.
"왜 키워주는데 죽어?"
"다람쥐는 혼자 넓은 산을 다니면서 살다가 작은 우리에 가두면 그래. 답답해서 못 살 거야."
결국은 추측성 대답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아시는 게 있다면 정보를 주시길 바란다. 어쨌든 다람쥐 헤프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얼마나 너른 들을 달리며 살았다고 답답한 것을 못 견디게 되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자유로이 어딘가 다니면서 살지 않았다. 집이 제일 좋은 집순이었는데 요즘은 왜 이렇게 집에만 있는 게 답답한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제는 나가고 싶은 나처럼 다람쥐도 집에서 편히 주는 먹이를 먹으면서 쉬고 싶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지레짐작으로 내가 집에만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나조차도 내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집에만 있다 보니 점점 답답과 우울이 쌓여간다. 밖에 다녀온 날은 좀 피곤하기는 해도 괜찮다. 요즘에야 그걸 좀 알겠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해 본다. 근데 그럴 때 집순이 기질에 묶여서 집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즐거울 걸 알면서도 집에 있기를 원한다. 이런 양가감정이 들 때는 솔직히 곤란하다.
사람이 적응된 생활을 한 번에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나도 집에만 있던 생활을 바꾸려고 하니까 좀 힘이 든다. 밖에 나갔다 오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떨 때는 내가 왜 나와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일단은 나와서 해를 좀 보고 돌아가면 기분은 좋다. 마치 운동을 가기 싫은 때와 비슷하다. 헬스장까지 가는 게 힘든 것과 같다. 전에도 이렇게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건 지금도 유효하다. 예전에는 걷는 것조차 못해서 밖에 나가는 것은 지옥이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역시 걸으러 나오는 길이 참 힘들다. 그래도 걷고 나면 답답함이 한결 나아지니 그것으로 만족해본다.
나도 어딘가에 가둬서 사육이 된다면 어떨지 생각해봤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던 내가 그렇게 된다면 스트레스 받아서 일찍 죽을지 아니면 거기에 적응해서 아이 편하다 하고 살지 말이다. 다람쥐의 입장이 되어 봤지만 나는 다람쥐가 아니라서 결국 그것의 마음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쨌든 사람은 자신이 사는 모양대로 사는 것이 제일인 거 같다. 다람쥐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