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에 써 놓은 글을 게시하고 있다. 그것이 '상처 줬던 희망에게'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도 아플 때였지만 그래도 조금 나아졌을 때였다. 하루하루가 싸움의 연속인 나와 화해하는 법을 막 터득한 때였다.
여전히 나는 나와 화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잘 모른다. 그냥 있는 대로 놔두려고 많이 하는데 내 생김이 그냥 놔두기에는 심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열등감, 어쩌면 그보다 더한 무엇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든 것들을 언제 어떻게 더 내려놓아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오늘도 병원에 가는 날이다. 2주 전보다는 지금이 낫고 일주일 전보다도 지금이 낫다. 그런데도 자꾸 불만이 생기는 것은 이 상태가 얼마나 더 갈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조금 나아졌나 싶으면 또 심해졌다가 아니면 다른 방향에서 문제가 터졌다가 또 나아졌다가를 반복한다. 남들이 한다는 긍정의 한 줄 같은 것이라도 필사를 해봐야 하나?
거기에 오늘 오전에는 비가 온다고 한다. 병원 가는 일과 비가 오는 콜라보. 내가 싫어하는 것들의 조합이다. 이런 날 기분이 좋으면 이상한 것이다. 그래도 더 나빠지지 않으려고 다른 생각을 하거나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는 있다. 근데 마음이 마음대로 되면 이상한 거지.
병원은 그렇다 치고 비 오는 날을 즐길 방법은 없는 걸까? 정말 없나...?
비 오는 날이 좋아지는 방법에 대해 혹시 아는 것이 있으면 공유해주시면 좋겠다.
그렇다고 전부 싫은 건 아니다. 나도 한 가지쯤은 비 오는 날과 관련해서 좋아하는 것이 있다. 비가 많이 내릴 때 실내에서 듣는 빗소리이다. 내가 비를 맞거나 습도와 맞서는 것은 힘들지만 빗소리는 좋다. 가만히 듣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빗소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자주 마주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은 싫어해도 빗소리는 좋아하는 사람. 실내에서 듣거나 보는 비는 운치 있어서 좋아하는 사람. 나도 거기에 속한다.
병원에 가는 일은 싫지만 준비는 해야 하므로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냥 6시에 눈이 떠진 것뿐이지만. 어쨌든 그때 일어나서 일단 씻었다. 정신이 더 들면 씻는 게 귀찮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씻어놓고 머리를 말리면서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런 걸 보고 있으면 내가 봐도 나는 유난스럽다. 까다롭고 예민하다.
이런 것도 자기 확언이 되어서 나에게 다시 부메랑처럼 돌아오겠지만 내가 그렇게 생겨 먹은 걸 부인할 수도 없다. 나는 민감하다. 그래서 쓸 데 없는 곳에 에너지를 많이 쏟는다. 남들은 신경 안 쓰고 하는 일도 나는 신경 써가며 에너지 낭비를 한다. 그렇다고 내 안에 에너지가 많은 것도 아니면서.
나는 에너지가 적은 사람이다. 가성비로 따지면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먹는 것에 비해서 활동이 매우 적고 하는 일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 이런 말을 할 때면 떠오르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제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매일 일 많이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고 말한다고.
내가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남들과는 좀 달라서 또 나는 가성비 낮은 사람으로 나를 후려치고 말았다. 이런 일들의 연속이다. 그나마 옆에서 부지런하다고 해줘서 내가 부지런한가 보다 생각하는 거지. 어릴 때부터 게으르단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나의 기본값이 게으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보니 더더욱 가만히 있는 나를 견디지 못해서 움직이고 결과적으로 지금은 부지런한 사람 소리를 듣는다. 물론 나는 인지하지 못하지만.
오늘만 해도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글을 한 편 올리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를 깨워서 학교를 보내는 일련의 과정들을 해 놓고 다시 또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누가 나에게 뭐했냐고 물으면 "그냥 있었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나에게는 모든 일들이 '그냥'이 된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냥 하는 거야."
"다들 그래. 그냥 그래."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내가 하는 일을 별 거 아닌 일, 혹은 그냥 하는 일로 후려치며 지냈더니 뭘 많이 해도 아무것도 안 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아까 말한 친구가 옆에서 계속 말을 해줘서 지금은 조금씩 고쳐가고 있다. 누가 나 뭐 하고 있었냐고 물으면 "그냥 있었어."라고 말한 후에 다시, "빨래하고 개고 설거지하고 책 읽고 등등등."이라고 정정한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그제야 나도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산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한다.
내가 게으르다는 생각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기본값이었는데 사실 나는 그리 게으른 편이 아니었다는 걸 요즘 다시 생각하고 있다. 그것만으로 자존감은 약간이나마 회복한다. 우울증 회복에 있어서 자존감은 매우 중요하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칭찬해야 되는 것이 우울증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게 잘 안된다. 하나씩 배우는 중이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바쁘게 지냈다. 잘했다, 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