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드셔야겠네요

by 루카

“정신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만약에 좀 이상하거나 아픈 거 같다면 상담받으러 가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길을 가는 사람 아무나 잡고 물어봐라, 특히 연세가 좀 있어 보이는 사람이면 더 좋다. 대답은 너무 뻔하다. 그리고 특히 한국에서 모두들 과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기도 한 정신건강에 대한 맹신. 아니, 내가 미쳤을 리 없다는 편견적인 부정.


그나마 아프면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도 막상 병원에 가야겠다고 스스로 결정하고도 짜증이 났다. 내가 왜 정신과까지 가야 하는지, 거기 가면 낙인찍히는 건데 해야 하는지, 가긴 가야 하는데 정도가 어떤지를 예측도 할 수 없어서 무섭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감기는 심한지 어떤지 대충은 가늠을 하고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아오는데 정신 질환은 알려진 바도 관심도 없었으니 이게 아픈 게 맞는지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겠는 것이다.


‘강제 입원시키는 거 아냐?’


드라마에서만 정신과를 접하고 주변에서 가는 경우가 없으니 망상만 늘었다. 그러고 보니, 요즘 아무리 책이나 방송에서 정신과에 다니는 사람이 많이 나온다고 해도 가까운 지인 중에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 쉬쉬하고 몰래 다니는 걸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남에게 알리기조차 꺼려지는 것이 이 병이다. 하지만 정신과에 가는 것을 미루기는 더 안 될 것 같은 상념들에 사로 잡혀 있는 것을 스스로 잘 알았으니 그냥 들러나 보자는 심정으로 가게 되었다.


오히려 병원을 감으로 인해서, 내 정신이 어떻게 되어버릴 것 같았고, 제정신이 아니라는 낙인이 찍히는 것 같았지만 주변에도 병원에 간다고 꿋꿋하게 알렸다.


“힘들어서 한 번 상담이라도 해보게.”


그렇게 무서운 마음을 가리고 가볍게 포장했다. 하지만 머리는 복잡했던 이유가 정신과에 다니면 보험 가입도 안 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했기 때문이다. 다른 질병은 보장해주는 보험이 왜 정신과 질환은 가입도 거절하는지 모르겠다. 사고의 확률이 높아서 이익이 안 나기 때문인가? 근데 막상 알고 보니 약을 먹고 치유를 하는 동안만 가입이 불가하고 몇 년 후에는 가능하다는 제도들이 있었다. 나는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가입한 보험도 있었고 그거 아니어도 지금은 보험보다 내가 아픈 게 우선이었다. 도움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보험료 때문에 아픈 걸 참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나도 그랬지만 이러한 주변의 시선과 실질적인 제약들이 발목 잡음으로 더욱 정신과와 멀어지게 만든다. 감기에 걸려서 내과에 가지만 우울하다고 정신과에 가보기라도 하자는 생각은 아예 안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다. 병원 중에 진입장벽이 가장 높은 곳은 단연 정신과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정신과에 가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디기 힘들 만큼 내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다가는 병원에 가서 이상한 낙인이 찍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서 찍혀 나가게 생긴 것이다.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 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지 않은가.


들은 바에 의하면 그래도 나처럼 자신의 이상함을 인정하고 정신과에 가는 것은 그나마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이미 남들에게 이상한 행동과 말, 생각들로 상처를 주고 힘들게 만들어서 가족들의 호소나 권유, 혹은 약간의 강제에 의해 병원으로 가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했다. 과장이기는 해도 드라마에서도 정신과에는 거의, 끌려가지 않는가. 그것이 어쩌면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정신과의 인식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왜 그렇게 병원에 가기 싫은 것일까? 위에서도 말할 것처럼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럽고, 나는 미치지 않았다는 신념에 사로 잡혀서, 혹은 정신적인 문제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니 더 그럴 것이다. 차라리 피를 철철 흘리거나 뼈가 부러지면 사람들은 정신과 진료를 더 쉽게 생각했을 텐데.


물론 나도 처음에 ‘내 정신이 이상해, 정신과로 가자.’가 먼저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신경과로 갔었다. 3주나 계속되는 어지럼증이 멈추지 않아서 생활이 불편했다. 계속 술에 취해 있는 기분이라고 표현을 해야 할까? 시야가 계속 어른어른 거리는 것이 불편해서 알아보다가 신경과로 간 것이다. 어지러워서 붕 떠있는 이상한 기분이라며 검사를 받았다. 그곳은 입소문이 나서 꽤 진료를 잘 본다는 곳이었는데 유능하다는 의사는 걸으라고 했다가 누우라고 했다가 눈을 감으라고 했다가 이것저것 행동을 시키더니 갸웃거렸다.


“문제없는데,.... 혹시 좀 우울하거나 그러세요?”

“네?”


엉뚱하고 당연한 질문에 놀랐다. 신경과에서 내 우울을 왜 묻는지 의아했고 한 편으로는 스트레스 안 받고 안 우울한 사람이 있기는 한가, 하는 마음이었다. 세상에 매일 매초 행복한 사람이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의사를 바라보았다.


“이상이 없어요? 저는 지금도 어지러운데.”


멀쩡하다는 진단이 억울해서 다시 물었다. 하지만 의사는 나가서 간호사가 주는 설문지를 작성하라고 말했다. 진료실에서 쫓겨나자마다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종이 몇 장을 주었다.


“최근 2주간,...”


되게 간단한 질문들이라 바로바로 체크를 했다. 설문지에도 바로 답하라고 되어 있기도 했고, 그리 어렵게 생각할 문제들은 없어 보였다. 속으로는 이 까맣고 하얀 종이로 뭘 하려는 건가 싶었다. 그리고 그 나무의 일부인 설문지를 제출하고 5분 뒤에 다시 의사와 마주했다.


“최대한 빨리 정신과로 가세요.”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그 간단한 질문으로 나온 점수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내가 심각한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선생님한테 물은 기억이 난다.


“어느 정신과로 가야 하나요?”


좀 충격이기도 했지만 나름대로는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다음 질문은 이거였다.


“그렇게 많이 심한가요?”

“가보셔서 다시 진찰해봐야겠지만 현재 많이 위험해 보이니 당장이라도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말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 사이에 의사 선생님은 자신이 환자들에게서 들었던 병원 두어군 데를 말해주었다. 사실 찾아보면 정신과는 많다. 내가 눈여겨본 일이 없었을 뿐. 그런데 어쩐지 다른 병원은 몰라도 정신과는 신중해야 될 것 같았다. 원래의 나는 병원에 대해 특별히 알아보고 가지 않는다. 병원이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에 그냥 가까운 곳으로 간다. 멀리 가기는 귀찮으니까. 그것도 아니면 그냥 깔끔해 보이는 곳으로 가는데 정신과는 그럴 수가 없었다.


‘괜히 약만 많이 처방하는 그런 곳이면 어떡해.’


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제대로 치료 안 하고 정신과 약을 잔뜩 먹고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괴담이 생각났다. 나도 멍하게 잠만 자는 바보가 되는 건 아닌지, 육아와 살림을 해야 되는데 잘못 먹은 약이 생활도 못하게 할 것 같은 공포. 이렇게 다른 진료는 어디든 가서 볼 수 있는 무관심의 아이콘인 나도 아무 정신과로 들어갈 용기는 없었다.


신경과를 나오자마자 핸드폰을 켜고 지인과 인터넷을 이용해서 천안에 있는 좋다는 정신과 목록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급하게 가라고 의사가 말하니까 내일 당장 가기는 해야겠는데 여유 있게 찾을 시간은 부족했다. 그나마 나의 인맥 중에는 괜찮은 곳을 안다는 사람이 있었다.


인터넷보다는 인근 지인의 말이 더 믿음직한 법이다. 그래서 안면을 좀 트고 관계를 맺으며 사는 것이 중요한 모양이다. 나는 인터넷의 수많은 평보다는 그 언니의 한 마디를 듣고 바로 다음 날 가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거리도 그리 멀지 않았다.


역시나 병원에서는 바로 몇 가지 설문지를 하고 상담을 했다. 어제 봤던 거랑 비슷한 내용의 설문지를 이번에도 크게 고민하지 않고 하고는 기다리다가 진료실로 들어갔다. 남자 선생님이셔서 어떨까 했는데, 딱딱하고 고압적일지 모른다는 예상과 달리 좋은 분이셨다. 몇 마디 하지 않고 일단 보호자와 같이 오라며 바로 약을 일주일치 처방하셨다.


착잡했다.


그때의 심정은 그랬다. 아프다고 확실히 알고 나면, 받아들이고 치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프다는 선고를 받고 나니 내가 정말 이상한 건가, 그렇게 약한 건가, 우울증이 뭔데 나한테 왔나 하는 생각에 답답해졌다. 울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에 아주아주 깊은 우물이 생긴 기분이었다.


솔직히 처음부터 약 먹으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신경과에서 들은 말이 있기는 하지만 설마라는 마음을 끝까지 놓지 못했다. 핸드폰이나 뒤적거리면서 순서를 기다리고, 하라는 설문지를 다 마치고도 이 정도면 괜찮으세요, 라거나 약을 줘도 일주일 먹으면 끝나는 줄 알았다. 보통 신체적인 병은 삼사일 약 먹으면 괜찮아지니까.


“일단 일주일 드시고 또 오세요.”

“.... 네.”


대답은 순종적이었다. 선생님이 고압적인 것도, 병실의 분위기가 나를 누르지도 않았는데 그냥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해야 했다. 그것은 일종의 무기력이었는데,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었던 병에 대한 인정이었다. “제가요?” 하고 놀랄 수 있는 것은, 그것을 생각지 못했을 때 나오는 반응이고, 나는 약을 계속 먹을 것을 예상은 했으니 많이 놀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한 번에 받은 약이 7일분이라는 것과 빠른 처방에 놀랐을 뿐이다. 검사를 좀 더 하고 서서히 약을 먹게 되는 건 줄 알았는데 다른 내과나 이비인후과 등 병원들과 다르지 않아서 놀랐다.


진료실 문을 나서면서도 약을 7일나 처방받았다는 사실과 그 7일 이후에도 또 와야 한다는 사실에 좀 벙벙한 표정이었다. 나만 그렇게 넋 나간 표정으로 있었던 것이다. 친절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의 미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다른 과 병원이었다면 웃으면서 “감사합니다.” 한 마디는 얹었을 텐데 그럴 여유도 없었다.


‘내가 정신과 약을 7일이나, 아니 완치까지 계속...’


그 생각이 머리를 지배하는 바람에 멍해졌던 것 같다. 물론 주변에 이제 변명할 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그동안 내가 집안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한 것은 아파서였다고. 육아를 하는 게 힘들어도 내색은 안 했지만 이것 보라고, 이렇게 아프다고. 그런 말들을 내 임의적인 판단이 아니라 전문가를 통한 의견을 증거로 내세울 수 있다는 점은 조금 기쁘기도 했다. 병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괜히 근심 걱정하기보다는 차라리 정확히 아프다는 말을 들으니 나을 방법을 찾게 된 점도 한결 마음을 가볍게 했다.


물론 병원 건물을 나오기까지는 그 정도로 가벼운 건 아니었지만 병원을 나오자마자 나는 검색을 시작했다. 현대 사회에서 믿을 수 없으면서도 의지하게 되는 것이 인터넷의 정보력이다. 약은 꾸준히 먹어야 하고 어쩌고 하는 말들을 마치 교리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들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남편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나 약 먹어야 된데. 계속 치료받아야 한 대.”


그렇게 말하는 순간이 얼마나 통쾌한지. 남편의 뒤통수를 가격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나에게 왜 노력하지 않고 집을 이렇게, 육아를 그렇게 하냐는 눈치를 주던 남편에게 속으로 말했다.


‘거봐, 아파서 그렇다잖아. 내가 이렇게 아프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야. 그러니까 좀 잘하지 그랬어.’


그런 장난 반 진심 반의 말은 상처를 받을 거 같아서 전하지 못하고 숨겼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그렇게 나쁜 걸까 싶기도 하다. 실제 남편이 나에게 주는 상처의 말을 삭힌 것도 많은데 착해가지고 그 한 마디를 못하는 나도 바보였다. 아니, 착해서가 아니라 겁이 많고 싸우기 싫어서 피하고 싶은 나의 연약함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날부터 아침, 저녁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다. 꾸준히 약을 먹는다는 것은 마치 매일 세수를 하는 것처럼 여기지 않으면 챙기는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법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눈뜨자마자, 잠들기 전에 약 먹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다만, 시댁이나 친정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할 때는 누가 볼까 눈치가 보였다.


‘무슨 약이냐고, 어디 아프냐고 하면 뭐라고 하지?’


그런 걱정이 들어서 최대한 숨어서 먹었다. 친정에서야 아프다는 걸 알면 속상할 테고 시댁에서 알면 어쩐지 흠 잡히는 기분이 들어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골골대는 사람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으며 하물며 시댁인데 알려서 좋을 거 같이 않았다. 그래서 6개월을 약을 먹으면서도 내가 우울증으로 약을 먹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남편뿐이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