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by 루카

나는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내향인. 남들이 보기에는 외향적으로 보이고 낯가림도 없어 보이지만 사람을 만나는데 에너지를 많이 쏟아야 해서 사람과 있으면 신경이 곤두선다. 여타 책이나 티브이에서도, 사람을 만나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에너지를 잃어서 집에 혼자 있으면서 에너지 충전을 해야 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내가 후자의 인간이다. 혼자 있는 시간이 있어야 다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


바꿔보려고도 했는데 그것은 마치 타고나는 체질 같아서 바뀌지도 않는다. 아주 극단적으로 내향적이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꽤 예민하다. 아니,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나의 예민함을 알 정도이다. 그런데 그걸 잘 숨겨서 극소수가 아니고서는 알지 못한다. 그 극소수란 한 집에 사는 가족과 눈치도 빠르고, 오래도록 나를 만나고 있는 친구들이다.


예민한 만큼 상대의 기분이나 분위기를 빨리 파악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나는 상대의 감정에 잘 동요한다. 소심하다는 말이다. 모두들 기뻐하는 자리에서는 상관없이 나도 기쁘면 되는데 한 명이라도 불편한 기색을 하면 나는 그 한 명의 눈치를 보느라 진을 쏙 뺀다. 심지어 그 진 빠짐이 싫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모두 내 잘못이라며 설설 기어 지고 들어간다. 이렇게 보면 바보가 따로 없다. 이런 바보 같음이 언뜻 보기에는 착하고, 얘기 잘 들어주고 그러는 거 같지만 그게 다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만나고 오면 지쳐서 혼자 있는 시간, 혹은 누가 있더라도 투명인간이 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므로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사람도 충전기를 들고 다니며 휴대폰처럼 충전하면 좋으련만 내 충전기는 집 붙박이여서 집에서 혼자 있어야만 충전이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다. 엄청 불편하다.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아서 어느 정도는 받아들이긴 했다. 단지 이미 에너지가 소진되어 집에 가고 싶어도 어느 타이밍에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 아직 문제이다.


나와 다른 사람도 보기는 했다. 위에서 말한 사람을 만나면서 에너지를 얻는 사람. 집에만 있으면 병나는 사람. 처음에 그런 사람을 보고 정말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내 주변에는 찾기 힘든 유형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진짜 존재하고 있었다. 하긴 그러니까 어디서든 그 두 성향을 놓고 대비해서 이야기하는 것이겠지만.


나는 그런 외향인과 다르다. 혼자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그것도 아니면 혼자 글을 쓰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옆에서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그런 시간이, 유독 길게 필요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모임이 많다. 부르는 곳이 많은 편이기도 하지만 지쳐서 미루던 약속들이 한꺼번에 몰려와 가야만 하는 일이 줄줄이 생기기도 한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이 모임 저 모임에 기웃거리며 사람을 많이 만나고는 있지만 그럴수록 지쳐가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심지어는 모임 자리에서 말수가 줄고 멍하게 있을 때도 있다.


이런 나에게 익숙해지고 친해진 사람들은 내가 다음에 보자고 말하는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다음에 보자며 쉽게 나를 놓아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멍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을 낭비하는 나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나와 있으면 그렇지 않고 에너지 넘칠 때 함께 하는 것보다 재미도 없다는 이유도 포함이다.


이렇게 아무도 없거나 나를 모르는 사람들만 있는 곳에 있는 시간이 중요하다. 천성이 예민하니 환경에 영향이 크다. 이런 내가 나도 싫다. 시간 분배해서 쉬는 시간 쪼개는 것도 스트레스이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나니, 이런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쓸 수도 없고 적기도 하다. 늘 부족하여 허덕이게 된다.


“엄마 나 뭐 하는데 봐줘.”


조용히 책을 읽고 있으면 아이는 꼭 와서 내게 말을 건다. 그리고 혼자서 뭘 하다가도 엎지르고 어지르고 쏟고를 반복해서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것은 내가 원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원치 않음에도 움직이는 것이어서 에너지가 더 많이 든다. 나처럼 예민하고 활동 에너지가 적은 사람에게는 그런 소소한 것들이 힘겹게 부딪쳐 온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나에게는 애초에 부담은 아닌지 생각하고 아이를 낳지는 않았다. 그것은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판단이 어렵기도 했고 사회 관습에 의해 당연한 일이어서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다들 결혼하고 애 낳고 사니까 나도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나의 성실하지 못한 판단이었다. 조금 더 날카롭게 다각도로 생각해봤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럴 거면 애를 낳지 말아야지, 결혼을 하지 말아야지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결국 그 성실하지 못한 판단으로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마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에서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다들 올라가니까 기둥을 오르는 애벌레 같은 행동이었다. 그런데 그 책에서처럼, 대다수는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에게만 손가락질 하기는 관두었으면 좋겠다. 잘못한 거 아는데 욕먹기는 싫으니까.


나처럼 개인적인 사람은 그냥 혼자 사는 것이 가장 적당한 것 같다.


요즘은 혼자 사는 가구에 대한 생각들이 많아져 가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혼자라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서로 간섭하기는 오죽 좋아해서 모이면 공부와 결혼과 육아 오지랖을 넓게도 펼치신다.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도 이런 세뇌와 걱정에 의해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리고 그렇게 사회를 위한 생각만으로 내린 결정에 대한 고통은 충분히 받고도 남는 중이다. 사회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내가 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니체가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성숙시킬 뿐이다.’


이 말에라도 기대어 벌어진 현실을 헤쳐 나가 보려고 한다. 그래도 억울하다. 착실하게 공부하고 취업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인 사람에게 그거 다 했으면 이제 결혼해서 집안일하고 애 낳으라는 미션을 주면, 뭘 기준으로 판단할까? 그냥 인생 선배님들의 말을 따르는 거지.


그렇게 선배님들의 말을 따른 결과 내 시간을 모조리 반납하고, 가정에 헌신하게 되었다,라고 간단히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는 것이 화가 날 정도로 나를 갈아 넣는 시간들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힘들게 보내는 나에게 무언가 보상이 필요한 순간이 왔다. 역시 절박하면 길을 만들어서 가게 되어 잇는 것이다. 나는 힘든 시간에 주저앉아 아프다가 결국 집을 떠나기로 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이지만 강릉에 혼자서 떠났다. 마침 남편이 아이를 봐준다고 해서 1박을 홀로 기차에 올랐다. 얼마나 좋던지.


혼자인 그 시간이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 좋았다. 그렇다고 내가 좋아서 빨빨거리며 여행지를 구경하고 다녔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그냥 숙소에 틀어박혀서 바다만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그렇게. ... 물론 먹은 게 체해서 아파서 누운 것도 있지만. 마음대로 자다 일어나고 다시 자고 책 읽고 놀고. 그 시간이 얼마나 치유의 시간이었는지 모른다.


그 별 것 아닌 하루는 내 삶의 활력으로 돌아왔다. 매일이 그런 무료한 삶이라면 매너리즘으로 이어질지 모르지만 정말 오랜만에 가지는 휴식은 활력이 되었다. 혼자의 시간이 활력이 된다는 건 나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적극 추천하고 싶다. 물론 내가 추천하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찾고 있겠지만.


외향인은 모를 것이다. 사람은 어차피 각자를 이해하지 못한다. 각자의 섬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비슷한 섬처럼 보이지만 내용이 달라서, 결국은 다 다른 섬. 그러니 그들에게, 어느 누구에게 나를 이해받지 못해도 괜찮다. 우리의 교차점은 섬이라는 것뿐이다. 우리는 인간이라는 것 외에는 같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나의 혼자만의 시간을,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나는 그런 인간인 것이다.


이런 시간을 내 패턴에 맞게 자주 갖는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 경제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여유롭지 못한 것이 어린아이의 엄마다. 특히 나처럼 주변에 도움을 받기 어려우면 더더욱 자리를 비우고 혼자 나간다는 건, 배부른 소리다. 다른 집은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그렇다.


그래도 이렇게 나갔다 와서 여유가 생겼다고 신랑 생각도 났다. 일하는 신랑한테 미안해지면서 궁금해졌다.

‘남편은 도대체 뭐가 자신의 힐링일까?’


매일 보는 뉴스나 야구를 보며 누군가를 향한 불만을 터트리는 것으로 해소하는 것일까? 사실 잘 모르겠다. 물어본 적도 없고 행동이나 말하는 것들로 유추해도 모르겠다. 신랑에 대해서도 아이에 대해서도 나는 언제나 확신하지 않는다. 확신할 수도 없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섬이니까.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은 우주이며, 끝없이 변하니까 그저 안다고 착각하는 것뿐이지 진짜 아는 건 아니다. 그러니 질문을 더 구체적으로 해봐야겠다.


“당신에게 지금의 힐링은 뭐야?”


그리고 나도 쉬었으니 너도 쉬고 와, 하는 관용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싶어 졌다. 이것이 다 혼자 보낸 시간의 긍정적 효과이다. 그러므로 조만간 나는 또 홀로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그래야 남편도 좀 생각하고 딸에 대한 여유도 생기지.


핑계라고 말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내 섬은, 내 우주는 그 모양으로 생겨 먹어서 여유를 찾으려면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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