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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May 09. 2021

염색도 못하나요?

"염색을 할 거면 말을 했어야지."


내가 염색을 하고 남편에게 처음 들은 이야기이다. 나는 기분이 나쁘고 더 할 말도 없었다. 아예 꽉 막힌 사람과 무슨 대화가 통할까 싶어서였다. 내가 말하는 꽉 막힘이란 단순히 염색을 싫어하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그 사람의 태도가 막혀 있다는 것이다.


염색을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하지만 내 머리를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은 내 자유이다. 누군가에게는 과해 보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내 머리도 마음대로 못한다는 것은 자유를 침범하는 행위이다.


"아버지가 싫어하시잖아."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내가 염색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아버님이라고. 


아버님은 염색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신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싫으시단다. 물론 어른의 의견을 수용할 필요는 있지만 고작 내 머리 내 마음대로 못하는 건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내가 엄청 튀는 색을 택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자연스러워 보이는 색을 했을 뿐이다. 샛노랗게 하거나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들에 억울함만 더해진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시댁에는 얼마 전에 다녀왔고 나중에 갈 때 다시 염색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고.


그런 융통성도 없는 남편의 말은 잘 생각해보면 본인도 내 염색이 싫다는 얘기로만 해석된다. 그래, 싫을 수 있다. 염색하는 거 싫을 수 있는데 어쩌라고. 내가 아직도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애도 아니고, 새치도 있고 해서 하는 염색을 단순히 자기가 싫다는 이유로 막아도 되는 걸까. 


염색 정도는 다들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또 분노한다. 화를 내봤자 나에게만 안 좋을 일인데 말이다. 결국에는 조금만 있다가 다음에 검은색으로 다시 염색을 하는 것으로 합의를 했다. 아니, 싸우기 싫은 일방적 굽힘이었다. 나는 검정 머리카락이 싫다. 내가 검은 머리칼을 하고 있으면 음침해 보여서 싫은 것인데 그래도 이 사람과 싸우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너무 억울한 건 변하지 않는다.


이게 돈 벌어오는 유세인가? 내가 머리 하는 걸 아까워하는 유세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머리 하는데 돈이 많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아. 여전히 모르겠다. 그냥 속 좀 편하게 내 머리칼 마음대로 하면서 욕도 안 먹고살고 싶다.


근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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