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피아노를 등록하고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엄마, 나 미술학원 다니고 싶어.”
뎅-.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물론 딸아이가 미술을 좋아하기는 한다. 그리고 자신이 재능이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사실은 내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미술 학원이라니 왜, 하고 생각해보니 피아노 학원이 미술학원도 겸하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피아노를 치면서 미술 하는 아이들을 본 모양이다. 욕심도 많은 우리 딸은 미술도 피아노도 어느 것 하나 놓치기 싫은 투였다.
“둘 중 하나만 다닐 수 있으면 뭐 하고 싶어?”
나는 그렇게 물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라기보다 아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미술.”
그런데 쉽게 미술이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3개월이나 졸라서 피아노 학원에 간 것이 무색해졌다. 그렇게 쉽게 마음이 바뀔 거면 왜 피아노 보내달라고 한 건지 모르겠다. 간절하다고 생각했는데 간절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막상 다녀보니 생각과는 달랐다든지. 그렇다고 금세 그럼 미술학원에 다니자고 할 수는 없었다. 아이가 피아노를 다닌 지 1개월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단순하게 미술이 다니고 싶다는 이유로 바꿔준다는 것은 아이에게 뭐든 쉽게 바꿀 수 있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걸 알려주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시작은 좀 더 신중하게 하고 과정은 견디기도 해야 한다는 걸 가르치고 싶었다.
물론 내 성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한 가지를 꾸준하게 하는 것에 점수를 더 주는 내 마음이 아이에게도 강요가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집사부일체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동현이 “빨리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다 싶으면 돌아설 줄 알아야 시간을 절약한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꾸준히 병이 있는 엄마에게 그런 것이 쉽게 납득될 리 없다. 나는 아이의 미술학원이라는 기로에 섰다. 물론 원해서 선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는지가 옳고 그른 것도 아니다.
쉽게 포기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법을 가르칠 것인지 아니면 조금은 인내하는 법을 가르칠 것인지. 둘 다 하는 방법이 있다면 적당히 포기하고 적당히 인내하면서 살도록 할 텐데 말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하다가 아이와 협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피아노 3권까지 치면 미술학원 보내줄게.”
이건 나만의 결정은 아니었고 아이 아빠와도 상의한 결과이다. 너무 쉽게 바꿔주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는 것이 좋은 교육은 아니라는 판단에서 어느 수준을 제시한 것이다. 다행인지 아이는 떼쓰지 않고 쉽게 수긍했다. 그리고 피아노를 열심히 다니는 중이다. 가끔 3권까지는 너무 오래 걸린다며 투덜거리기는 하지만. 그래도 감사한 것은 아이가 협상에 응해줬다는 사실이다. 만약에 그대로 보내주지 않으면 다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며 막무가내로 나왔다면 나는 또 어떤 반응을 했어야 할지 생각만으로도 고민스럽다.
어쨌든 아이의 이번 선택에서 나는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런 적이 없을까? 내가 무언가를 쉽게 내 길이 아니라고 돌아선 적은 없었나? 그리고 그때 나에게 조금 더 해보자며 스스로 달랜 적은 없었나? 아마 숱하게 많이 있었을 것이다. 인생이란 그렇게 쉽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끝이 없이 쌓여 있는데 나라고 왜 그만두고 싶은 것들이 없었겠는가. 그런 일련의 과정들을 떠올리니 아이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미술을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역시 없다. 그러고 싶지 않다. 아이에게 이것도 저것도 그냥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뭐든 얻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번에는 가르쳐 주고 싶었다. 이 판단이 오른 지 그른지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가서 후회를 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재능 발휘를 유예시킴으로써 길을 막아선 것이니까. 고작 1, 2년이겠지만. 내 딸아이 또래의 1, 2년은 결정적인 시기라서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이 주는 것 또한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결정을 내렸다.
어쨌든 딸 덕분에 여러 가지 가치와 사상이 충돌하는 경험도 하고 생각할 거리가 늘어나는 경험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자라는 느낌이다. 이렇게 조금 더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일은 일단락되었지만 이 와중에 신기한 사실은 나와 남편 중 누구도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소질이랄 것도 없었다. 보통 그런 것은 유전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나와 다르게 딸은 미술을 좋아한다. 혼자 있으면 그림을 많이 그리는 편이고 자신의 소질을 가감 없이 당당하게 말한다. 재능이나 소질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은 부모 자식 사이에도 다른 모양이다. 그래도 나는 그런 딸이 신기하고 좋다. 꼭 나를 닮아도 좋았겠지만 미술을 잘하는 일은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자신이 없어서 더 멋있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딸아이가 당당하게 자신의 미술 재능에 대해 말하는 점도 기특하게 느껴진다. 나는 오히려 내가 글을 쓰는 게 부족해 보여서 글쓰기 재주가 있다고 말하지 못하는 편인데 그런 모습을 보면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에게 한 수 배웠다.
어쨌든 우리의 계약은 성립했고 나는 아이의 미술의 문도 곧 열어줄 생각이다. 조금 기다리고 연마하면 다음 차례가 오듯이 차례로 차근차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