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부적인 학습 능력을 타고났다. 마음만 먹으면 어떤 지식도, 어떤 기술도, 남보다 더 빠르고 월등히 배웠다. 그리고 어려서 주산ㆍ암산을 배워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암기력과 기억력을 가졌다. 잘하고 싶지 않을 때만 평균과 비슷해질 뿐, 잘하는 티를 보이고 싶다고 결심만 하면 곧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선천적인 역마살을 지녔다. 좀체 만족을 모른다. 최고의 성적을 거두면 이내 그 테두리가 시시해진다. 그래서 항상 최고 학벌만을 좇았다. 그리고 그 학교와 학과에서는 반드시 최고만 되었다. 그마저도 심심해져서, 아무도 창업을 꿈꾸지 않게 부정하던 시절에 용감히 창업했다. 어떤 경력도 없이 박사 학위 하나 달랑 들고서.
원 없이 아이템을 찾았고 원 없이 개발했고, 원 없이 제조하고 팔아봤다. 그것도 안주 못해 해외에 회사를 세우고 수백 명을 고용해 현지화도 성공했다. 항상 기획하는 아이템은 세계 최초였고 국내 독점이었다. 별거 아니라고 깎아내고 싶은 못난이들이 많았지만, 난 회사를 상장시켰고 30대의 유능한 경영자로 훈장도 받았다. 못난이들은 나와 식사 한번 약속 잡는 게 목표였고, 난 그 못난이를 실제 못난이로 자각하게 해 줬다. 고약한 성격에 괴팍한 정의감이 발현해서다.
어느 날, 왼쪽 뺨이 마구 떨렸다. 그 떨림의 진동파는 뺨에서 입술까지 커져갔다. 왼쪽 얼굴을 부여잡고 119에 실려갔다. 그날 이후 내 몸에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났다.
배는 통제 불능으로 불러왔고, 속은 늘 메스꺼웠고, 술을 마시면 늘 블랙아웃이 일어났고, 다음 날이면 쉴 새 없이 설사로 고생했다. 무기력한 몸은 3층 계단도 포기했고 주말이면 뒤통수는 무언가가 큰 힘으로 당기는 듯 텐션의 고통이 머물렀다. 잠시라도 쉬어볼 요량이면 금세 몸살이 돌아서 다시 일거리를 찾기를 반복했다.
일하는 게 내 팔자구나.
지금 생각으론 어이없는 결론이다. 세상에 어느 누구도 일하는 게 팔자인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사람은 살기 위해 일하는 거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잊고 살았다.
왜 내가 이렇게 사는지? 그렇게 사는 게 나의 모습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다가 온 번아웃에 내 심신이 망가졌고, 인간에게 선물한 배신이 소방력 강한 소화기가 되어 나의 불씨를 완전히 꺼놓았다.
나의 에너지는 완전히 소진됐다.
나는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돈 걱정 없이 소위 잘 살고 있다. 스트레스 가득한 업무는 그대로지만, 내 삶은 형체를 달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바뀌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나는 다른 인격이 되었다. 뜻 모를 고성, 예상 못한 화풀이, 조급함이 사라져 안정된 일관성이 좋다고 한다. 운동을 습관화하고 식생활이 탄수화물 기피 식단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간 게 신기하다고 한다. 그리고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 못 해 온갖 집안일과 친인척을 챙기는 모습이 좋다고 한다. 나도 지금의 내가 이전의 나보다 훨씬 편하다.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내가 변했을까? 딱 3가지를 했을 뿐이다.
하나는, 격투기를 배우고 운동했다. 나는 복싱과 주짓수를 배웠다.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다치기 쉽고 견디기 어려운 운동일 거라 선입견을 갖는다. 아니다. 나같은 사람도 했다. 그리고 즐긴다.
사람을 겸손하게 만들면서 근육이 운동에 중독되는 맛을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몸무게의 큰 변화 없이 몸매를 완벽히 바꿔준다. 나는 1년간 체중이 5킬로그램만 줄었지만, 허리와 뱃살은 20대로 돌아갔고 몸에 옷발이 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근력 에너지가 증가해 계단을 오를 때 나도 모르게 사뿐히 뛰어간다. 더욱이 격투기는 스스로를 자아도취에 빠뜨리는데, 결코 이 영향이 나쁘지 않다. 더구나 스트레스 해소에 무척 좋다.
두 번째는, 독서다. 난 천부적 재능이 있어서 그에 맞게 3년간 천권을 읽었다. 책 한 권 읽는데 나는 1시간에서 2시간이면 족하다. 그 시간 동안 일과 기획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벗어난 그 시간에 나는 지식이 늘어나고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웃음을 되찾는다. 독서만큼 머리를 멈추고 소양을 쌓는데 좋은 방법이 없다. 그래서 나는 복잡한 문제가 생길수록 재미있는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을 찾는다.
마지막은, 복기다. 나는 글쓰기와 잠자기 전 상상으로 복기를 한다. 운동도 무식하게 몸만 움직여선 재미가 떨어지고 실력도 늘지 않는다. 나는 지역 아마추어 복싱대회를 두세 달 간격으로 출전한다. 그래서 늘 머릿속으로 새도우 스파링을 상상하고 복기한다. 독서에 있어서도 읽고 난 내용을 복기하면서 글을 쓴다. 앞서 읽은 책들의 내용을 떠올려 지금 읽은 책의 내용과 연계해 연구한 뒤 글을 쓴다. 그래서 지식은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와 사상은 계보도가 그려질 정도다. 그래서 독서가 더 재밌어지고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번아웃 없는 삶은 오히려 생기 없는 삶이다. 사람마다 번아웃의 단계와 깊이가 다를 뿐, 번아웃 없는 삶이란 살아 있는 사람에게 있을 수 없다. 겪지 않았다면 언젠가 곧 마주칠 여행객이다. 위의 3가지 방법을 잘 활용해 번아웃에 대처한다면, 불손한 여행객을 빨리 지나 여러분도 삶의 새로운 풍경에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