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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Jan 28. 2020

총선 바람잡이용 인재영입과 허탈한 비웃음에 대하여

그냥 막 들이대면 안 된다, 얘들아

인재영입이란 이벤트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최고 당권자의 결단으로 치러진 경험이 다수이다. 대부분 영입 인재라는 사람들은 아주 젊고, 다소 어렸고, 다소 비정치적이었다. 그중에 정치인으로 살아 남아 발버둥 치는 사람은 손꼽을 정도이다.


이후 영입 인재라는 이벤트는 총선을 앞두고 쇄신이라는 미명 에 젊고, 아니 어리고, 비정치인의 모습을 가장한 사람들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도덕적 기준을 선거의 중요한 잣대로 여기는 신교 국가들 위주로 파다한 정치 놀음이 되었다. 그런데 가만 들여다보면, 실소가 끊이지 않는다.


영입 인재라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시간이 갈수록 나이가 어려진다. 게다가 지적으로나 경험적으로나 정치적 의견을 논리적으로,  또한 현실적으로, 또한 체계적으로 정리해 제시하고 관철할 수 있는 자질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진중권 전 교수의 말대로 총선용 방패막이에 불과한 얼굴마담으로 전락 중이다. 뉴스를 볼 때마다, 왜 쟤들이 뭘 했다고? 뭘 안다고 설치지? 다른 사람들은 바본가? 비웃음이 그치질 않는다.


오늘 여당에서 한 명의 영입 인재가 들어오고 한 명의 영입 인재가 나갔다. 한 명은 착한 놈으로 지낼 수 있었는데 나쁜 놈이 된 어린애이고, 다른 하나는 실패 중인 사업가이다.


세상엔 정말 착한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따로 없다.


들키면 나쁜 놈이 되고, 거기서 더 우기면 이상한 놈이 된다. 그저 설치지 않고 입으로만 떠들면 착한 놈이 되는 세상이다. 설치는 순간 나쁜 놈이다. 그래서 총선을 앞둔 인재영입의 케이스들이 점점 어려질 수밖에 없다. 어린애들은 잘못할 기회도 횟수도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젊은이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개혁의지란 없다. 내가 학생들을 가르쳐보고, 내가 학생이었을 때도, 오로지 오기와 자존심으로 두 눈을 부릅떴을 뿐 쥐뿔도 없었다.


너무나 투명해진 정보 평등사회에서 고육지책으로 어려서, 잘못할 기회가 없을 어린애들을 뽑아들였는데도, 이제는 아랫도리가 문제인 게 들통난다. 그런데 어쩌나 싶다. 아랫도리 문제까지 없으려면, 사춘기 이하로 연령대가 낮아질 수밖에 없을 텐데.


오늘은 아주 기분 나쁜 뉴스를 장식한 영입 인재란 사람을 보았다. 에듀테크 사업을 한다는 4전 5기의 사업가라고 한다. 4번을 실패해도 5번째 일어설 수 있는 환경을 가진 나라로 만들겠다고 한다. 어설프다.


우리나라의 고질적 병폐 중에 하나가 에듀테크가 사업화되어 사회를 부조리의 장으로 고착화시키는데 앞장선다는 것이다. 연극영화과 출신이 국사의 대부로 텔레비전 예능과 인문프로그램을 장악하질 않나, 이제는 에듀테크 사업가를 버젓이 성공한 사업가로 모시다니, 정신이 문제가 아니라 무식이 문제다.


게다가 4전 5기에도 굴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기업환경을 정책과 제도로 개선해야지, 뭔 그런 케이스의 인물이 총선에 나가 국회의원이 되어 제도화한다는 말인가? 내가 아는 4전 5기란 5번째에는 비로소 성공했다, 라는 뜻이 아니라 5번째 망하고 있는 중이라는 뜻이다. 어디 갖다 붙일 문에다 엿이라도 들이대야지, 기가 찬다.


4전 5기로 성공한 사업가가 있다면 현행 제도를 왜 개선해야 하는가? 할 이유가 없다. 영입 인재처럼 할 수 있는대도 다들 무능력하고 자질이 없어서 못하는 것 아닌가? 정말 비논리의 극치다.


에잇! 퉷!


나의 삼십 대 초반 당시 신생 여당의 비례대표로 제안을 받아 깊이 고민한 적 있다. 스토리텔링에 좋은 케이스였고, 머릿수가 당시 매우 모자라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제안받은 순번으로는 당선권이었지만, 끝내 고사했다.


극심하게 뜯어말리는 아내의 강권도 있었지만, 나는 사람이 아무리 영리하고 똑똑해도 수업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학위 받던 시간과 초창기 사업체를 설립했던 시기를 통해 절감했었다. 그리고 폼을 잡고 야망으로만 시작하기엔, 내가 뱉은 비판이 많았다. 그때는 때가 아니라 생각해, 고이 접었다.


그리고 정작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을 땐 상황이 바뀌었다. 나도 뱃지 달겠다고 아쉬운 소리하고 싶은 생각도 겨를도 없었다. 그 대신 정치하겠다고 알짱거리던 브로커들이 국회에 들어섰다.


쟤들이 왜 저기서 나와?
내 발 밑이나 핥던 것들이?



이러니 참 안 되는 거다. 참 안 되는 거다. 우습기 이를 데 없다. 저 수준 이하의 것들이 뱃지달고 기자들 앞에서 무언가 떠드는 모습을 보면, 이러니 이 모양이지, 라는 실소가 나온다. 쟤가 뭘 안다고? 무슨 사명감이 있어서? 기가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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