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도쿄 긴자의 유명 유녀였다는 소문이 따라다녔지만 여느 얼굴 반반한 여인네라면 시샘어린 꼬리표처럼 뒤따르는 과거의 추문 정도로 흘려 넘겼다. 4월 말인가, 5월 초입인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던 그때, 영교는 용산옥의 식당과 객실을 청소하는 하녀로 들어왔다. 다른 하녀들과 달리 가끔 내지인을 상대하며 사용하는 일본어가 유창하고 세련됐다. 여자를 품는 데 도덕이나 공자를 거들먹거리지 않는 자들이라면 대부분 그녀에게 관심을 보였지만, 땀과 악취에 찌든 하녀로 일하는 그녀를 잠자리 상대로 쉽게 취하진 못했다.
유녀나 게이샤는 물론이고 기녀들도 그녀를 멀리 하며 비교 상대가 되는 것을 수치스러워 했고, 같은 일을 하던 하녀들은 그녀를 따돌리고 망신주기를 일상화했다. 항상 싸움하는 무리 속에는 영교가 있었고 싸움이 끝난 후 헝클어진 머리와 옷가지는 항상 영교의 몫이었다. 매번 더럽고 힘든 일터에는 영교의 손과 발이 담겨 있었다.
이름이 테스라고 불리는 용산옥 여주인은 일본인 가라유키상과 일본 제일은행 주무 사이에서 태어난 내지의 핏줄이었다. 하지만 일본이 가라유키상에 대한 철수령을 내리자 후쿠오카로 귀향한 그녀의 어머니는 테스를 조선에 버렸고, 아버지의 철저한 외면 속에 유곽 유녀와 게이샤를 흉내 내며 어릴 적부터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주인이 조선인이던 유곽에서 몸 파는 게이샤로 난봉꾼들 사이에서 주가를 올리던 그녀에게 유곽 관리인으로 악랄했던 부사달이 다가와 애정 공세를 펼쳤다. 1900년 생으로 세 살 어린 부사달의 진심어린 구애에 테스는 몸과 마음을 열었다. 테스와 부사달은 각자가 번 돈과 조선 유곽의 큰 손님들에게 융통한 돈으로 용산옥을 인수한 뒤 정식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제주 출신이지만 일본인이 되고 싶어 타츠야로 자신의 이름을 개명한 부사달에게 일본 아내와 일본식 유곽은 머지않아 자신이 동경하던 일본으로 이주해 완전한 일본인으로 여생을 살게 될 시금석과 다름없었다.
일본인과 조선주둔군은 물론이고 조선 부자들도 쉽게 드나들도록 용산옥의 문턱을 낮추었고 서로가 자존심에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하며 유곽을 이끌었다. 손님들의 민족과 직업에 따라 유녀와 기녀들이 접대하는 방식을 달리했고 서로가 물리적으로 접촉하지 못하도록 시간과 공간을 분리했다. 이내 용산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 유곽으로 명성을 떨쳤다.
그렇게 명성이 자자해질수록 더 예쁘고 민족 성분이 더 나은 여자들과 하녀들이 일자리를 구하러 찾아와 구걸했다. 첫 경성 길에 올라 세상 물정 모르는 외지 여자가 쉽게 일자리를 소개받을 수 있는 곳 중의 하나가 용산옥이었다. 에이코는 용산옥에서 영교라는 어릴 적 기억 속 이름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은 하녀로 다시 태어났다.
아내는 일본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조선의 그저 그런 서류 상의 외국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타츠야가 받아들이는데 길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서른 중반에 들어서야, 일본으로 이주해서는 지금처럼 먹고 살기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현실을 받아들이자 테스에게서 다른 일본 남자의 생선 비린내가 역겹게 풍겨 나왔다. 테스의 뻐드렁니 속 썩은 찌꺼기가 발하는 구취는 타츠야의 고개를 돌리게 했다. 조선인의 몸에서는 맡아본 적 없던 사분 냄새에 코끝이 따가워졌다. 테스는 타츠야의 사정거리로부터 멀리 벗어난 국외인이 되어 갔다. 부사달이었던 타츠야를 반겨 줄 일본 여성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 자책하며 어릴 적 꿈을 깨끗이 포기했다.
화장기 없는 영교의 거무스름한 피부로 인해 더욱 또렷이 빛나는 색스런 눈동자가 교쿠지쓰키(욱일기)의 이글거리는 태양과 닮았다. 볼록한 반달 모양의 눈웃음과 찢어 올린 입매무새는 조선에서 일찍이 본 적 없는 일본 잡지 속 게이샤의 그것들과 같았다. 타츠야는 본능적으로, 저처럼 일본어에 능숙한 영교는 분명 일본 여자일 거야, 라는 심증을 굳히며 사실이라고 믿을 때까지 계속하여 되뇌었다. 타츠야라는 허울을 부사달에게 입혀 준 테스에 이어, 자본주의의 절정에 다다른 일본의 세련된 말과 행동을 몸으로 습득시켜 줄 구원자가 영교임에 틀림없다고 스스로 확신했다.
지난 7월 지나토벌작전(중일전쟁)이 갑작스레 개시되자 조선군은 도쿄 군영의 지휘를 무시하고 만주로 무작정 진격해 관동군과 남방 공격의 첨병이 되었다. 본영의 지휘도 없이 만주로 진격한 조선군 수뇌부의 목이 남김없이 참수될 거라 여겨졌지만, 수뇌부는 물론이고 어느 조선군도 도쿄 본영으로부터 징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남방 전선의 핵심 전력으로 인정받는 영광까지 누렸다.
일생동안 서슬 퍼런 일본 헌병과 경찰의 통치에 익숙해진 조선인들은 고전의 당나라 군대와 다를 바 없는 일본군의 허술함을 믿을 수 없었다. 졸지에 용산역은 남방과 내지를 잇는 중간 환승지로 역할이 전락했고 죽은 자들이 무덤으로 들어간 밤의 도시가 되었다. 밤장사는 커녕 술 취한 사람도 구경할 수 없었다. 유녀와 게이샤들 몇몇은 살 길을 찾아 경성 북부로 부산으로 상해로 흘러갔고 하녀들은 하나 둘씩 고향으로 쫓겨 가기 시작했다.
구월. 물소 뿔 아래로 스며든 선선한 아침 바람이 담배를 입에 물고 마루 위에 드러누운 타츠야의 아랫도리를 서늘하게 했다. 허름하게 걸친 유카타 아래쪽을 한 손으로 모아 당겨 아랫도리에 온기를 가두었다. 마루 왼편 끝에는 머리에 이고 온 대야 물에 마른 걸레를 흥건히 적시는 하녀가 보였다.
하녀는 가냘픈 양 손으로 힘껏 물에 젖은 걸레를 쥐어짰다. 좀 전까지 단정하게 앞머리를 들어 모아 잔털 같은 짧은 머리카락만이 삐쳐 나왔을 이마에는, 이미 땀에 젖은 긴 머리카락이 이마와 관자놀이에 흘러 붙어 있었다. 손으로 훔쳐내는 방향으로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퍼져갔고 그럴수록 더욱 괴이한 모양으로 헝클어졌다.
마루 좁은 폭으로 드러누운 타츠야 옆까지 쥐어 짠 걸레를 쪼그린 채 밀고오던 하녀는 영교였다. 주인어른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이내 엉덩이를 반대로 돌려 걸레 대야 쪽으로 몸을 쪼그리고 기모노 속 총총 걸음으로 한 번에 밀고 갔다.
두 번째 다시 다가온 영교에게 타츠야는 곁눈질도 하지 않았다. 엉덩이를 다시 돌려 웅크린 채 걸레에 두 손을 모아 힘껏 밀려고 엉덩이를 들어 올릴 때였다. 타츠야는 갑자기 영교의 기모노 치맛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재빠르게 두 손으로 기모노를 양쪽으로 갈랐다. 이내 영교의 몸 깊이 타츠야가 들어와 있었다. 영교는 영문을 살피려 타츠야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너무나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