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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선이라는 천국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지]

by 아메바 라이팅


아베 히로시 소좌는 나보다 세 살이 많았지만 늦은 나이에 학교를 다닌 탓에 사관학교 동기로 함께 졸업했다. 천황을 위한 친위 쿠데타가 어설프게 진압된 후 언제 강요당할지 모를 전역을 준비해야 했다.


한 푼이라도 더 돈벌이를 하려는 생각에 내지가 아닌 조선으로 전출을 신청했다. 벌써 팔개월 보름이 지났다는 아베 소좌가 너스레를 떨었다.


용산은 교토보다 박진감 넘치고 아카사카의 밤보다 더 질척거리며 놀 수 있는 천국이야



아베 말에 허풍이 없는지 확인하려는 호기심과 에이코를 대신할 유녀를 바다건너 세상에서 찾아보려는 마음이 합해져 매일 두 번 이상 용산 사는 유녀와 게이샤를 하나씩 탐닉했다.


혹시나 에이코와 목소리가 비슷한가 싶으면 살 냄새가 달랐고, 에이코의 살 냄새와 닮아 깊숙이 다가가면 어딘가 모자란 탄력이 나를 더욱 절망시켰다.


아베가 소개해 준 조선군 20사단 고이소 구니아키 중장의 배려 속에 여름부터 20사단 내의 건축 공사를 도맡아했다. 삼십년이 지난 군부대 시설들과 건물들은 대대적인 증축과 개보수가 필요했고 이 기회를 운 좋게 잡은 나는, 아베의 도움으로 조선 군역 건설사들과 장기계약을 체결하며 건설 원가를 낮췄다.


조선 건설사들이 외상으로 자재를 충분히 구매할 수 있도록 보증을 서 주었고 20사단도 연대보증을 해 주겠다며 큰소리쳤다. 이렇게 돈을 벌어도 문제가 없나, 라고 겁먹을 정도로 수주가 급증했다. 두 달 사이에 오만엔 넘는 자재를 20사단 이름을 거들먹거리며 발주했고 내 신용까지 보태 육만 엔 넘는 금액을 조선 건설사들에게 자재발주용으로 보증해 주었다.


육군본부는 호시탐탐 대동아 건설의 첨병이 자신의 역할이라는 망상에 깊이 빠져갔다. 그래서 어느 방면에서 어떤 이유로 전쟁을 일으킬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어느 전장에서도 그렇듯 정작 그 공포에 대한 근심은 사람들에 의해 무뎌지고 비틀어져 활개 치지 못했다.


그해 무더운 한 여름, 그 무딤과 비틀림이 적나라한 아가리를 벌리며 용산에서 일탈을 즐기던 나를 잘근잘근 삼켜버렸다. 육만 엔이 넘는 연대보증도, 나의 마지막 남은 삶에 대한 그럭저럭한 변변찮은 이유도, 에이코를 언젠가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마저도.


7월 뜨거운 여름, 만주 출신 유녀와 세 번인가 네 번인가 뒹굴다가 매미 울음소리가 뒤덮은 새벽까지 선잠에 뒤척였다. 그리고 20사단 군무원들이 애용하는 부대 내 목욕탕에서 두 시간 동안 피로를 씻었다.


목욕탕 옆 식당에서 밥을 먹을까, 아베네 관사로 놀러가서 조식을 함께 할까, 유곽에서 만주 유녀와 한 번 더 하고 배를 채울까, 쓸모없는 고민을 했다. 우선 인력거를 불러 타고 가면서 내키는 대로 결정하기로 했다. 아베의 관사와 유곽을 가는 길이 공평하게 가까울 수 있는 도로로 인력거를 몰게 했다.


그런데 군인이었던 내게 너무나 익숙한 소리가, 누런 군복으로 수통 부딪히는 소리가, 둔탁하게 들려왔다. 무섭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본능적으로 알아들었다.


땅이 갈라질 듯하고 가까이 가면 내가 땅거죽 속으로 빠질 듯할 공포가 느껴질 웅장함이 압도했다. 고무 군화발이 땅바닥의 돌을 짓누르다 무뎌지는 중후한 저음이었지만 수천명의 무리들이 일사분란하게 두드려 만든 웅장함이었다. 주저하는 인력거에 5전을 더 주기로 하고 가까이 가 보았다.


출정이구나, 지나인가, 남방인가?


놀라 삼킨 들숨에 나의 두려움과 좌절이 허파 속에서 버무려져 날숨으로 뱉어졌다. 두려움과 좌절이 공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지게 하려는 주문처럼 혼잣말의 중얼거림으로 입 밖의 공기를 흔들었다. 하지만 내 허파에서 기어 나온 두려움과 좌절은 미래에 지급하도록 결정된 채무 영수증처럼 내게 각인하라고 강요했다. 이제 내 인생은 새됐구나.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내 몸을 인력거 의자받이 속으로 구겨 넣었다. 유곽으로 가자, 라고 인력거에게 말하며 내 마지막 호사를 장렬히 누리다 끝내자 결심했다.


내가 약속한 5전을 더 얹어 주라며 유곽 주인이 대신 지급하도록 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의 시작이었기에 유곽 주인은 아무런 의심 없이 인력거에게 동전을 쥐어 주며 오히려 고맙다고 몇 번이나 허리 굽혀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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