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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라진 에이코

[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by 아메바 라이팅
타케노우치 유타카, 3월 26일부터 예편을 허한다


육군본부는 천황의 교지와 퇴역명령서를 헌병대 사병 둘을 통해 내게 전달했다. 한자 이름 유타가가 인두로 새겨진 권총지갑과 그 속에 담긴 남부 14년식 권총도 그들이 가져갔다.


내 손으로 뜯어낸 계급장을 두 손 모아 내 눈 높이로 올린 뒤 천황께 고개 숙여 속죄했다. 마지막 미련을 떨쳐내지 못해 억울한 나의 심장이 육군을 향한 섬뜩한 불씨가 되어 되돌아오지 않을까 염려한 인사들에 의해, 불명예 예편임에도 불구하고 천황께서 하사한 가도 만은 남겨 두는 배려를 받았다.


천황께 다시 반납해 올렸다는 내용으로 작성된 서류에, 사실과 일치한다고 확인하는 서명을 꾹꾹 눌러 남겼다. 내 칼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벨 수 없고 아무것도 베어서는 안 될 가도였다. 게다가 서류 상으로 천황께 바쳐진 것으로 처리된 가도는 그 존재마저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한다.


에이코는 며칠 전 내가 돈을 지불한 다다미 객실에서 노기 중위(노기 마레스케 제독의 손자인지 친척뻘인지 끝내 알지 못했다)의 가슴 왼쪽에 총검을 내려찍었다. 그 직전에는 그의 목을 왼편에서 그어 올려 선분홍 목젖을 갈랐다.


아랫도리를 가리는 천조각 하나 눈에 띄지 않았고 성기는 몸속으로 말려들어간 상태였다. 이미 죽은 지 한참되어 동료 해군 장교들에게 발견되었다. 죽은 방의 주인인 나를 잡으러 장교들과 헌병대는 월화의 3층 객실을 모두 뒤졌다. 전통적으로 일본 유곽의 3층은 유녀들의 살맛을 보려고 나뒹구는 공간이다.


어이없게도 친위 혁명 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정말 바보처럼, 건너방에서 발견되었다. 몇 번인가 나와 자고 싶어 눈꼬리를 날리던 게이샤의 방에서 그녀의 무릎 속에 고개를 파묻은 채 술 취해 잠들었다. 다다미 방문을 향해 눈감은 채 바라보며 곤히 취해 잠들어 있었다.


부엌 하녀의 안내로 내가 잠든 방 문을 열어제친 헌병 둘이 개머리판을 치켜올리고 구분되지 않는 이름을 불렀다. 겨우 잠을 물렸지만 술기운과 피비린내에 정신을 잡지 못했다. 낯선 사람들의 말을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새벽 댓바람에 헌병대에 끌려가 죽은 노기의 동료들과 감정 나쁜 입씨름을 하였고, 별다른 혐의가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쫓겨나듯 훈방됐다.


유곽으로 돌아와 새벽에 무릎을 빌려준 게이샤를 불러 사라진 에이코의 몸을 대신하도록 했다. 에이코는 내게 그녀를 뺏겼다며 분해하던 어린 장교 노기를 항상 걱정했다고 한다.


노기는 유곽 여주인이나 에이코와 말다툼을 자주 했고, 그로 인해 남의 눈에 띄는 일이 잦았다 한다. 그럴 때마다 에이코는 노기를 가여이 여겼고 언제든지 유곽에서 자신을 찾아라고 설득했다 한다.


그녀는 그에게 허락할 수 있는 이상으로 베풀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노기는 그녀의 호의를 퇴역명령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에이코의 몸을 대신한 게이샤는 마치 에이코의 영혼이 그 몸으로 빙의한 것처럼 새벽 사건의 전말을 또박또박 설명해 주었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을 묘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랬을 것 같은 감정까지 추임새로 곁들이며 한밤의 이야기를 멋들어지게 읊었다.


내 방을 두고 왜 게이샤 방에서 잤지, 라며 혼잣말 같은 질문을 중얼거리자 벗은 몸의 두 가슴을 오른팔로 가린 게이샤가 얼른 대답했다. 3층 복도 끝을 가로 막는 벽에 상체를 기댄 체 주저앉아 가슴에 총을 맞아 허파 속 검은 피를 입 밖으로 쏟아내는 병사처럼 입 밖으로 술과 면발 무더기를 뿜으며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다.


아무리 흔들어도 깰 기미가 없던 나를 질질 끌고 유녀의 방으로 옮겨 재웠다 한다. 에이코와 노기는 서로를 향해 욕하며 울부짖었고 월화의 3층 손님들 모두가 놀랄 정도로 시끄러웠다고 했다.


해군 장교의 불미스러운 죽음에 연루되었다는 불명예를 이유로 육군본부는 나에게 전역을 강요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계급은 한 단계 또 뛰어 넘어 중좌로 승진했고 나이 어린 중좌는 자대배치 대신 민간인의 길거리로 내쫓겼다.


관사를 나오며 손에 쥔 것은 프랑스제 팬티스타킹이 전부였다. 에이코에 주려고 샀던 선물이었다. 휘어진 가도의 츠카라고 불리는 손잡이가 프랑스제 팬티스타킹의 사타구니를 찌르도록 걸쳐 세운 뒤 에이코를 상상하며 밤낮으로 유곽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


에이코가 아닌 다른 유녀는 축축하고 더러운 들짐승의 입속 같아 역겨웠다. 그래서 기억 속 상상으로 만들어 낸 에이코의 품 속에서 무료한 시간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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