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화양연화 시리즈]
용산역. 부산했던 사람들이 옅어지며 군인들로 다시 두터워진 지 오래다. 더 크게 증축한 경성역으로 상점과 유곽들이 옮겨간 지 수년이다. 군인들과 군무원들만으로 가득 찬 용산역도 경성역을 시샘한 듯. 오년 전, 정부 출자금으로 신청사를 크게 지었다. 더 많은 군인들과 부자들과 내지인들이 몰려오겠지, 라며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돈 없는 군인들을 상대로 먹고 살기에도 바쁜 용산의 많은 식당주인들이, 경성역으로 옮긴 뒤 돈 다발을 쌓아올린다는 늙은 가라유키상의 허세에 복통을 호소하던 용산의 유곽 여주인들이, 조선으로 도망 와 유곽 하녀 자리에서 끼니를 지키고픈 영교도. 모두가 기대에 부풀었다.
용산역을 계속 걸어 삼각지를 향해 한강 가장자리 언덕 꼭대기까지 가다보면, 걸어 올라간다면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 올 즈음에, 용산역과 20사단의 군인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오르막 높이에서, 엽서 사진으로 보았던 남방 물소의 뿔을 머리 위에 이고 있는 출입문이 보인다. 남쪽을 바라보며 땅속에 발이 묻힌 헤라클레스처럼 단단히 섰다.
곡선미가 조선의 그것과 달라 음탕하게 휘어진 물소 뿔 같은 처마에서 성적 판타지가 극대화된다. 뿔의 양 옆으로 간격 넓은 나무 창살을 달아 형식으로만 감옥처럼, 어쩌면 미쓰코시 백화점 쇼윈도처럼, 보이는 건물이 길게 드리워졌다.
앞으로 감싸는 오비 안으로 긴 폭의 기모노를 곱게 차려 입은 유녀들이 각자의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빼곡히 자리를 채웠다. 긴 소매와 치마는 숨겨진 그녀들의 농염함을 상상하게 도와주었고, 앞으로 도톰히 맨 오비는 설국의 성적 유토피아로 달려가는 기차표와 같았다.
내지인처럼 보여 비싸게 치러야 하는 유녀들을 앞세우고 조선의 느낌으로 거무튀튀해 싼 값에 치를 수 있는 유녀들이 뒤를 메우도록 포트폴리오를 갖췄다. 에도시대 요시와라 같은 유곽은 아니지만, 조선 기방과 비슷해 음주와 식후 매춘이 밤새 반복되고 있었다.
조선의 기방에 맛들린 내지의 부자들이 오히려 오사카와 나가사키로 조선식 유곽을 역수입했다는 믿지 못할 소문을 영교는 들었다. 도쿄 유곽의 소실 적 친구로부터 허풍넘은 찌라시처럼 들었다.
영교는 안 씨 성이지만 그렇다고 아버지가 안 씨인 조선인이라고 확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 찬 가라유키상이 내다버린 딸 정도로 알고 지낼 뿐, 영교 스스로도 왜 안 씨 성인지 알 지 못했다.
도쿄 유곽의 신조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그 친구는, 아베 씨가 네 씨가 아닐까, 라며 추측을 더해 주었다. 에이코라고 부르는 일본 이름의 차음으로 영교가 지어졌는지 아니면 영교라는 이름으로 에이코라 불리는지 이마저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녀의 머릿속에 내지의 못 생긴 노파가 이름을 물었을 때, 안영교입니다, 라는 조선말로 대답한 것이 기억나는 처음이었다.
이마카라 에이코토 요부요
그날부터 영교는 일본에서, 도쿄에서, 유곽 월화에서, 에이코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