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인 잡념이 지구 생활 사진에세이 20
하지만 기억해. 지금 선명한 건 현재의 너라는 거.
공간은 늘 새로운 시간으로 덧칠해가.
오래전 화려했던 너의 흔적은 점점 희미한 망령이 되어가지.
이 시간과 공간에서 가장 선명한 건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키며 변함없이 빛을 내는 것.
그게 이 공간에서 흔적이 아니라 자국을 남기는 방법이야.
그러면 시간을 초월해 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
#위대한 일이란 한순간 밝은 섬광이 아니야.
#작은 빛이라도 꾸준히 밝히는 것.
#그것이 다른 이를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고, 또 누군가 그 등불을 이어가겠지.
벌써 두 번째 인터뷰 시간이 되었네요.
잡념이) 누구 마음대로 두 번째야!
나) 잡념이님이랑 인터뷰라고 한 적 없는데요?
잡념이) 무슨 소리야! 에세이 10회가 끝날 때마다 나랑 인터뷰하는 거 아니었어? 10회 끝나고 인터뷰했으니 20회 뒤에는 두 번째 인터뷰지!
나) 그럼 그렇게 할까요?
잡념이) 당한 건가!
나) 잡념은 집중을 방해하기도 해서 보통 없애야 하는 것으로 여기잖아요? 그래서 스님들은 좌선을 통해 잡념을 비우려고 명상을 하기도 하죠. 이런 본인의 이미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잡념이) 집중할 때 집중하고 잡념 할 때 잡념 하는 거야. 그게 어떻게 나의 잘못인가. 집중해야 할 때 나를 찾는 인간들의 잘못이지. 게다가 1시간 동안 잡념을 하는 거랑 명상을 하는 거랑 무슨 차이인지 모르겠네. 스님이 열반에 들기 위해 좌선을 한다고 쳐. 그 열반에 들기 위한 집착은 또 다른 욕망이 아닐까? 뭐든 종이 한 장 차이고 결국 물은 바다로 흘러가. 명상하듯 잡념을 진지하게 해 봐.
나) 역시 잡념이님 같은 괴변이네요. 진지한 잡념은 도대체 뭔가요?
잡념이) 내 잡념의 소재는 언제나 네가 주는 것에서 시작해. 그게 잡념으로 발전해서 이어질 때 어느 순간 네가 이야기 흐름의 방향을 개입하지. 그러면 내가 다시 잡념으로 이끌어가. 연속극 같은 거라 보면 돼. 잡념의 1화가 끝나면 2화를 시작할 때 네가 스토리의 방향을 선택하지. 예를 들어 네가 돈이 급한데 도저히 구할 방법이 없어 고민하고 있다고 쳐.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으니까 어느 순간 그게 공상으로 변하지. 네가 주식이라는 소재를 던져주면 나는 거기에 맞춰 행복한 잡념을 이어가. 이번에는 로또가 어떨까 생각하면 또 거기에 스토리를 입혀주고, 재미가 붙은 너는 이번에 경마장으로 나를 보내지. 아주 비현실적인 스토리를 혼자 재미있게 즐기던 너는 이 잡념이 끝나는 게 무서운 거야. 현실을 마주해야 하니까. 그게 왜 나의 잘못이지? 진지한 잡념은 현실적인 스토리 라인을 잡아주는 거야. 대출을 배우자 몰래 낸 다음, 용돈을 쪼개서 매달 얼마씩 갚는다면 내가 얼마나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지, 들켰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가 왜 이런 짓을 했고 다음에 똑같은 상황이 오면 어떻게 했을 거다라는 서글픈 잡념을 해야지.
나) 예시가 아주 마음에 안 드네요. 그런데 집중해야 할 때 왜 자꾸 끼어드는 거죠?
잡념이) 나는 네가 멍청하게 있을 때 외에는 스스로 자리한 적 없다고. 그런 때는 나를 불렀다고 봐야지. 집중해서 공부를 해야 하는데, 일을 해야 하는데, 책을 봐야 하는데 자꾸 잡념이 생기지? 왜 그럴까? 재미없으니까 그래. 나랑 노는 게 더 재미있거든. 정말 재미있게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할 때는 잡념이 안 생기잖아? 그리고 또 정말 급할 때도 나랑 놀 시간이 없지.
나) 그러고 보니 나도 지금 잡념이님이랑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네요. 이만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잡념이) 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