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이를 키우는 지인과의 대화
작년 4월, 몇 년 만에 서로 카카오톡으로 안부를 묻게 된 지인으로부터 자폐아이를 키운다는 새로운 얘길 듣게 되었다. 호르몬 문제로 젊은 나이임에도 폐경을 앞두고 정상적인 난자 채취도 쉽지 않아 마지막 남은 수정란으로 어렵게 시험관으로 아이를 가진 분이었는데 이런 고충까지 있었는지 생각도 못했다.
지인은 본인이 아이에게 부족하게 한건 없는지 늘 자책을 하고, 본인 아이가 본인을 만나 복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이 양육에 있어서 나 혼자만 전전긍긍하고 고군분투하면서 다른 가족들은 이해 못 하는 부분이 너무 외롭고 지친다고 했다. 또한 아이 앞에서도 화가 나는 감정조절이 안 돼서 아이한테도 너무 미안하다고 했다.
카톡임에도 매우 지쳐있는 지인이 피부로 느껴졌고, 내가 겪어보지도 못한 상황을 묵묵히 헤쳐가는 지인에게 섣불리 아무런 답변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용기를 내 진심을 전했다.
아래는 내가 지인에게 쓴 카카오톡을 일부 발췌한다.
짧은 만 3년 반 육아하면서 느낀 건 '좋은 엄마'는 무조건적인 희생을 하는 엄마도, 아이한테 절대 화내지 않는 엄마도 아닌, 사랑을 듬뿍 주면서 아이한테 필요한 방향성을 잘 잡는 '현명한' 엄마인 거 같아요.
아기한테 필요한 게 있다면 내가 그걸 직접 할 수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고 내가 직접 할 수 없는 건 대신할 누군가 또는 상황(환경)을 찾으면 돼요.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물도 아니고 태어날 때부터 내가 마더테레사도 보살도 아니므로 육아 자체로 늘 힘들지만 최소한의 나만의 시간 (가정주부든 워킹맘이든, 또는 운동 같은 어떤 특정한 활동이든)을 가지면서 그 사랑 그릇을 채우고 이걸 아이한테 부어주는 건데 그건 사람마다 다르고요.
결론은 내가 어떤 상황이어야 아이한테 조금이라도 여유 있는 맘으로 대할지 매 순간 고민하면서 그때 상황에 맞게 살면 되는데 정답은 없고 나에 맞는 해답이 있는 거죠.
xx님은 특수한 환경이라 더 어려움이 있고, 그로 인해 심신이 더 지쳐있을 텐데 아무리 아이한테 그 당시 최선이었다 해도 늘 그게 정말 최선이었을까 생각하고 항상 후회하는 게 부모잖아요.
자녀가 생기는 순간 좋든 나쁘든 풀리지 않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단 못 푸는 게 더 많은 평생 숙제가 생기는 건데 이건 아이가 건강하든 똑똑하든 동일하나 그 숙제의 난이도는 아이에 따라 매우 달라지는 거고요.
다만 과거는 돌이킬 수 없으니 현재 할 수 있는 걸해서 내일은 오늘보다 '덜' 후회하면 돼요. 되도록 아이한테 못한 거보다 내가 오늘 아이한테 더 해준 게 무엇인지 집중하면 좋을 듯해요.
xx님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는 엄마예요.
다만 잘 못 할 때도 있고 잘 안 될 때도 있는 거예요.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xx님은 충분한 엄마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xx님 맘 가는 대로 해요. 울고 싶음 울고, 속상하면 속상한 거죠. 아이 앞에서는 감정을 폭발하는 건 좋진 않으나 그게 조절이 안된다면 그 또한 오죽하면 그러겠어요. 다만 회사 출근 외에도 추가적인 도움이 더 필요하면 정신과에 가보는 등 본인을 위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요. 도움은 받으라고 있는 거예요.
xx님 아이가 이미 복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부터가 xx님이 아이를 위해 늘 고민하는 좋은 엄마라는 증거이고, xx님 아이는 실제로 복이 많다는 게 프로필 사진으로도 봐도 느껴져요.
인생은 어차피 혼자예요. xx님도 결혼했다고 안 외로운 거 아니잖아요. 그리고 꼭 친구와 어울려야 되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모르고, 남 신경 쓰면서 사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xx님 아이는 좋아하는 분야가 있고, 충분한 열정이 있고, 남한테 휘둘리지 않고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묵묵히 집중하는 큰 장점을 가진 거예요. 그래서 저는 xx님 아이가 이미 충분히 행복한 거 같아요.
그러니 나 '때문에' 안 되는 부분보다는 나로 '인해' 아이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 집중하고, xx님 기준이 아닌 xx님 아이 기준으로 xx님 아이를 바라보면서 방향을 잡아주는 엄마가 되는 건 어때요?
나와 지인의 많이 대화를 중략했으나 나와의 대화에서 지인은 아이가 본인 세계에서는 즐거울 거라고, 남을 신경 안 쓰는 특성이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며 너무 지쳐있는데 긴 얘기 들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고 얘길 들을 것도 아니었고,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라 말하기 조심스러웠음에도 워낙 좋은 분이라 힘이 되고 싶었는데 지인이 지금보다는 어깨의 짐을 덜고 아이를 양육하는데 눈곱만큼이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
이 세상 모든 엄마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