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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룰루랄라맘 Feb 04. 2021

단내가 나서 단면 색종이인 거야~

작은 것에도 기쁨은 최고인 아이

“엄마, 나 생일 선물 받았어~”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엄마를 찾는 아들의 흥분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장 거실로 뛰어오는 아들에게 뛰지 말라고 해도 엄마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했다. 아들은 하교 후 뛰어오느라 숨이 찼는지 헥헥거리며 가방에서 색종이 하나를 꺼내 보여준다. 오늘 학교에서 생  일 선물로 받은 ‘단면 색종이’란다. 아들은 '단면'이라는 단어를 굳이 강조하며 생일 선물을 자랑한다.

 

아이에게 물어보니 선생님께서 양면 색종이와 단면 색종이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단다. 아들은 집에 양면 색종이가 있으니 처음 보는 ‘단면 색종이’를 골랐다고 했다. 생일 선물을 받은 다른 친구들도 있다고 하니 아마도 같은 달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담임 선생님께서 생일 선물을 챙겨주신 듯했다. 친구들은 어떤 선물을 골랐냐고 물어보니 풀, 가위, 연필, 지우개라고 했다.  


단면 색종이 하나에 세상 다 가진 얼굴로 엄마에게 자랑하며 설명해주는 아들 모습을 보니 설레는 표정으로 생일 선물을 골랐을 아들 모습이 상상됐다. 또한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계셨을 1학년 담임 선생님의 모습도 그려졌다.


뒤이어 집에 돌아온 아들과 동갑인 쌍둥이 딸에게도 아들은 또 생일 선물 자랑을 했다.   


“채원아~ 와서 봐봐. 나 단면 색종이 생일 선물로 받았다.”


딸도 아들이 받은 생일 선물이 궁금했는지 가방을 벗어놓지도 않은 채 아들이 받은 ‘단면 색종이’를 신기한 듯 구경한다.


“채원아 너 근데 왜 단면 색종이인 줄 알아?”

“아니~ 왜?”

“단면 색종이는 단내가 나기 때문에 단면 색종이야. 너도 맡아봐”


아들의 단면 색종이 설명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딸은 색종이를 코에 바짝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본다.  


“단내 나지~?”

“어? 정말 그러네.”

“그래서 단면 색종이야.”


향기가 나는 '단면' 색종이에 대한 아이들의 어이없는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단면 색종이가 왜 단면 색종이인지 제대로 알려줄까 잠깐 고민하다 아들의 체면을 지켜주는 쪽으로 맘을 먹고 입을 닫았다.




얼마 전 초등학교 선생님 한분이 학부모 대상으로 한 유튜브 강의를 들었다.   

기억나는 부분은 '아이들을 부족하게 키워달라'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학교 활동 중 아이들에게 칭찬이나 격려를 하기 위해 소소한 선물들을 준비할 때가 있다고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준비하는 선물들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학용품, 간식거리 정도라고 했다. 근데 선생님이 준비한 선물을 받는 아이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라고 한다. 작은 것 하나에도 좋아하며 감사해하는 아이가 있는 반면 “이런 거 우리 집에도 많아요.”하며 받기를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아이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 준비한 선생님 입장에서는 힘이 빠진다며 너무 집에서 부족함 없이 키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의를 들으며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아들이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들 생일 선물로 준비하신 '단면 색종이'를 받고 집에 왔을 때가 생각났다. 아들은 선물을 준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 표현은 제대로 못했을지 몰라도 선생님께서 충분히 뿌듯해하실 정도로 선물을 좋아하며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이 집은 너무 쉽게 가는 거 아냐?”

아이에게 '의식적'으로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안 해주려 하다 보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공깃돌’을 받고 싶다는 아이들 말에 수만 원짜리 선물을 요구하는 자신의 아이와 비교된다며 아이들 친구 엄마들에게 부러움 섞인 말을 들을 때도 있다.  


아이들을 처음부터 ‘부족하게 키워야지’하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어느 부모든 마찬가지겠지만 맞벌이를 하고 있었던 나는 뭐든 부족함 없이 키우고 싶었다.

근데 부모가 생각하는 아이에 대한 ‘부족함’이라는 것이 무엇일까? 혹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아이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인지, 부모인 내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만약 아이에게 읽어줄 책 보다 많은 장난감이 벽 한편을 가득 채우고 있다면 아이가 원해서 채워진 것인지 부모인 내가 생각하는 ‘부족함’으로 채워진 것인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또한 아이가 무언가를 사달라고 할 때 ‘돈이 없다’는 간편한 말로 그 상황을 빨리 넘기려 하지 않았다. ‘돈이 없다’는 부모의 말에 아이가 위축되지 않길 바래서였다. 그리고 말이 씨가 된다고 ‘돈 없다’고 말해 버리면 정말 돈이 없어지게 될 것 같기도 해서였다.


작은 것에도 행복함을 느낄 줄 알며, 가지지 못하는 것 때문에 위축되지 않는 아이로 자라주길 바라는 마음에 여전히 못 사주는 것’이 아니라 ‘안 사주는 이유’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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