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타인의 평가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아이에게 엄마의 사랑과 믿음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는지 집중하려 했다.
친척 어르신들은 어른들의 관점으로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엄마인 나보다 걱정하는 것들이 있었다.
첫 번째로 기저귀 떼기다.
우리 아이들은 만 2살에 기저귀를 뗐다. 이미 기저귀를 뗀 상태에서 생각하면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은 시기에 자연스럽게 기저귀를 뗀 것이다. 하지만 막상 내 아이가 돌이 지나고 18개월이 지나서도 기저귀를 하고 다니면 평생 기저귀를 하고 다닐 것 같아 엄마의 마음은 불안해진다. 기저귀가 뭐라고 일찍 뗀 아이들을 신동 취급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특히나 아들 사랑이 충만하신 시어머니께서는 막내아들의 아들한테도 사랑이 충만하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말씀을 하신다. 그럴 때마다 당돌한 며느리인 나는 시어머니께 '며느리가 돈 잘 버니 기저귀 값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라고 했다. 또한 이 한마디로 나는 쐐기를 박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기저귀하고 다니는 아이는 없다.'라고 말이다. 시어머니의 걱정스러운 말씀을 듣고 나면 초등학교 갈 때까지 기저귀를 하고 다니지 않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도 조급해 지는 것은 사실이다.
나와 같은 마음이 드는 엄마들이 많은지 네이버에 ‘기저귀’까지만 검색어를 입력해도 ‘기저귀 떼는 시기’가 추천 검색어 상위에 노출된다.
아이가 언제 기저귀를 떼어줄까 조급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엄마인 나까지 아이에게 기저귀를 빨리 떼라고 보태지 않았다.
그깟 기저귀가 뭐라고 내 아이를 ‘기저귀 루저’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는 스스로 밥 먹기다.
육아서에 보면 이유식을 시작하면서부터 혼자 떠먹겠다며 온 바닥을 어지르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낳은 아이들은 내가 하녀인 줄 아는지 엄마인 나한테는 5살이 되어서도 손수 밥 수발을 들게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아이들이 스스로 먹지 않고 있나 싶어 어린이집 선생님께 "아이들이 스스로 점심을 먹나요?"하고 물어본 적도 있다. 다행히 아이들은 손수 밥을 드시고, 물까지 떠다 드시고 제 자리에 놓는다고 하셨다.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보내준 사진
한편으론 내가 집에서 해주는 음식이 맛없어서 그런가 싶었다. 하지만 내 음식 솜씨 문제도 아니었다. 시금치나물을 듬뿍 얹어 입에 가까이 대면 입을 쩍 벌리고 잘 받아먹었다. 혼자 먹어보라 해도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은 밥을 스스로먹기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것들을 해소하는데 더 집중했다. 결국 식사 시간이 오래 걸려 결국 엄마인 내가 밥 수발을 들게 하는 아이들이었다.
손가락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먹고자 하는 의욕이 없는 아이들도 아니니 '언젠가는 스스로 먹겠지'생각하며 아이들이 6살이 되어서도 먹여달라고 하면 먹여 주웠다.
결국 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스스로 먹기 시작했고,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은 빨리 나가서 친구들과 놀겠다며 제대로 씹고 넘기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밥 한술 크게 떠 빠르게 입에 넣는다.
아이마다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 다르다는 당연한 지론을 내 아이를 통해 다시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하기 위해 뭐든 스스로 빨리 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이가 원할 때 수발을 좀 더 들어주면 잔소리하는데 쓰는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세 번째는 두발자전거 타기다.
쌍둥이들은 기본적으로 둘 다 겁이 장착된 아이들이다. 엄마인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위험한 곳에 가지 않고, 시도하지 않으니 호기심이 왕성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부딪히고 넘어지는 다른 아이들보다 쌍둥이지만 수월하게 키웠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부모 욕심은 끝이 없는지 우리 아이들도 좀 더 활동적으로 자신감 있게 새로운 것에 망설임 없이 시도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1학년 때부터 능숙하게 두발자전거를 타는 친구들이 몇몇 보였다. 그 친구들은 7살 때부터 두발자전거를 탔다고 했다. 당연히 그 친구들의 다리는 여러 군데 멍이 들어 있었고 딱지가 앉아 있었다. 반면 겁을 장착한 쌍둥이들은 지금까지 크게 다친 적 없이 네발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어느 날 두발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친구를 네발자전거로는 절대 따라잡을 수 없음을 알게 된 딸아이가 보조바퀴를 떼어 달라고 했다. 남편과 내가 며칠을 허리 아프게 붙잡아 준 덕에 딸아이는 두발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딸보다 좀 더 겁 많은 아들은 두발자전거가 무섭다며 배우기를 거부했다. 친구들과 놀 때 네발자전거를 타고 있는 아들만 뒤쳐져 딸이 아들을 두발자전거 뒤에 태우고 두발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친구들을 쫒아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아들을 두발자전거 뒤에 태우고 다니는 딸아이를 본 아파트 주민은 딸아이가 아들보다 몸집이 작은데도 누나냐며 물어봤다. 아들을 계속 건사하며 데리고 다녀야 하는 딸아이를 생각해 아들에게 두발자전거를 배워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어도 한사코 싫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아들이 두발자전거를 타보겠다고 말해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딸아이가 두발자전거를 탄지 6개월이 지난 2학년이 돼서야 아들은 두발자전거를 배워보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또 허리 좀 아프게 생겼는 걸' 걱정하긴 보단 아들이 먼저 자전거를 배워보겠다는 말에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아들은 남편과 나의 예상을 벗어났다. 남편이 두발자전거를 가르쳐 준지 반나절만에 아들은 코너링까지 완벽하게 다 배운 것이다. 나까지 더 이상 붙잡아 줄 필요도 없었다.
'늦게 시작하니 빨리 배우는구나.'
이젠 자전거를 타고 쌩쌩 달리는 아들을 큰 소리로 부르면 여유롭게 뒤돌아 보며 대답도 해준다. 그리고 얼마 전엔 호기롭게 바퀴가 더 큰 자전거를 사달라고도 했다. 두 발 자전거를 처음 배우려 할 때 두려움 가득했던 아들 표정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지금도 난 아이가 내 기준에 따라와 주지 못한다고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엄마의 조급함이 아이에게 도움되지 않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알아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