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알게 되었다. 내 기분과 몸상태가 아이의 컨디션에 따라 줏대 없이 흔들리는 것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다는 걸 말이다. 어떤 계획을 세워놓았더라도 한순간에 무너져버리는 경우가 꼭 있었다.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다는 표현도 어쩌면 과하다. 기준과 잣대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원점으로 돌아가는 상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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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느꼈던 순간은 아이들에게 이유식을 먹일 때다.
아이들이 아침부터 이유식을 잘 받아먹어 준 날은 출산 후 아직 몸이 다 풀리지 않은 상태인데도 몸이 날아갈 듯 가볍게 느껴졌다. 하루의 반도 지나지 않은 시간인데 기분 또한 왠지 오늘 할 일을 미리 다 해놨다는 뿌듯함이 들 정도로 홀가분하게 느껴졌다.
반면 아이들이 이유식을 잘 받아먹지 않은 날은 몸에 남아있던 에너지가 뿔뿔이 흩어져 증발해버린 것처럼 축 쳐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유식을 잘 먹지 않는 날이 하루만 더 지속되면 이유식은 집에서 좋은 재료로 꼭 만들어 먹이겠다는 신념 따위는 없어지고 뭐라도 좋으니 한 수저라도 받아 드시길 바라는 겸손한 마음으로 반응이 좋다는 시판 이유식을 찾아 돌아다니게 된다.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오늘은 왜 이렇게 피곤해 보여?’라고 묻는 질문에 ‘오늘은 이유식을 한 수저밖에 먹지 않았어.’라고 대답하는 나를 보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먹는 양에 이렇게 집착했었나 싶어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내 새끼가 뭐길래 아이들이 '밥 몇 술 뜨셨냐'에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는가 싶다. 부모님께서 아침밥은 잘 드셨나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싶다. 아마 내 새끼 몇 수저 드셨나 걱정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을 생각했다면 효녀 소리 꽤나 들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아이가 아플 때다.
아이가 아파 식음을 전패하고 잠이 든 건지 까라진 건지 알 수 없게 내 품에서만 안겨있을 때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다. 젖을 빠는 힘도 약해지고, 이유식은 입에 대지도 않을 때는 내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 남자 친구와 헤어질 때도 이렇게 속이 타들어가진 않았던 것 같다.
'어떤 장난을 쳐도 엄마가 다 받아줄 수 있고, 집안 다 어질러도 좋으니 제발 기운 좀 차려줘~~' 아이를 안은채 눈물 뚝뚝 흘리며 애걸복걸도 해본다. 아기일 때는 절대 사탕은 먹이지 않겠다는 나의 신념, 기준 뭐 이런 것은 온데간데없고 당이라도 충전되면 아이가 기운이나 차릴까 싶어 퇴근하는 남편에게 사탕 좀 사다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세 번째는 어린이집에서 아이와 헤어질 때다.
복직을 앞두고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시기가 다가왔다. 어린이집 적응기간 동안 엄마가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는 선배맘들의 조언을 듣고 힘든 적응 기간을 잘 견뎌 냈다. 혹독한 어린이집 적응기간이 지나고 아이가 내 품에서 별다른 저항 없이 어린이집 선생님 품에 웃는 얼굴로 안기면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 나도 이제 회사로 다시 돌아가 멋진 워킹맘이 되는 거야.’라고 다짐하곤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가벼워졌나 싶을 정도로 사뿐하게 느껴졌다.
복직이 점점 가까워져 오는 어느 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을 유모차에 태우고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에 도착해 아이들을 어린이집 선생님 품에 넘겨드리는데 아이의 눈을 보니 눈물이 글썽글썽 맺혀있었다. 엄마와 헤어지기는 싫지만 헤어져야 하는 이 상황을 아이는 받아들이고 있는 눈빛이었다. 어린이집 적응기간 때처럼 아이가 발버둥 치고 소리 꽥꽥 지르며 우는 것이 차라리 덜 아플 것 같았다.
눈물 맺힌 아이의 눈빛을 보며 아이 또한 나처럼 '서로 떨어져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어린이집 선생님께 맡기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이렇게 어린 나이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에 복직하는 것이 맞는 걸까?', '내 선택이 옳은 것일까?' 하는 생각에 한걸음 한걸음이 쓸쓸하고 복잡했다.
아이를 키우며 수시로 결정과 판단을 해야 할 때 내가 얼마나 신념이 얕고 연약한 사람인지 알게 됐다.
어디 가서 ‘저는 아이를 이렇게 키웠어요’라고 입도 뻥끗하지 말아야겠다. 그래도 누가 물어본다면 ‘저의 육아방식은 아이의 상태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요.’라고 말하는 것이 내 마음을 제일 가볍게 하는 답변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