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때부터 남편한테 수시로 물어봤던 말이다. 물어보는 타이밍도 뜬금없다. 대화의 앞뒤 문맥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물어봤다. 다행히 남편은 그만 좀 물어보라고 짜증 내지 않고 물어볼 때마다 “예쁘다.”라고 말해줬다. 진심으로 답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바로 수긍해주는 남편에게 뭐라 할 수도 없었다. 그때는 대화 도중 ‘나 예뻐?’라는 뜬금없는 질문을 뜬금없는 시점에 내가 왜 묻고 있는지 나조차도 인식 못했다. 그 뒤로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읽었던 육아서들을 통해 내가 왜 그동안 그렇게 남편한테 뜬금없이 '예쁘냐'고 물어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아이가 태어난 지 3,4개월이 지나니 꿈에 그리던 100일의 기적이 찾아왔다. 겪어보니 100일의 기적이라고 해서 딱 100일에 맞춰 오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기들이 태어난 지 4개월쯤 되면 수면 패턴이 일정하게 잡혀 안정을 찾기 때문에 100일의 기적이란 말이 나온 것 같다.일어설 때마다 ‘아이고~’ 소리가 입 밖으로 저절로 나왔는데 어느 순간 ‘아이고~’ 소리가 없어지고 몸이 가뿐하게 느껴질 만큼 몸이 풀리고 있었다.
아이의 안정적인 수면 패턴으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된 나는 아이들 옷과 모자, 양말 등을 스마트폰으로 검색하게 되었다. 출산 전 쇼핑회사에 몸담고 있었던 나는 업무용으로 국내외 쇼핑몰 앱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때 당시 밴치마킹 대상 1호인 해외직구가 가능한 아마존 쇼핑앱까지도 설치되어 있었다. 국내보다 브랜드 옷을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는 이유로 아마존 앱을 이용하여 일찍이 해외직구족이 되었다. 아이 옷과 모자 양말 등 눈에 들어오는 대로 능숙하게 실력을 발휘해 장바구니에 담았다. 아이 옷, 양말, 모자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가족 모두가 기다렸던 아기들이었고, 쌍둥이라 그런지 양가 친척분들로부터 다 입히지도 못할 만큼의 내복과 옷, 양말, 모자, 신발까지 모두 선물로 받아놓은 상태였다. 심지어 포장도 뜯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이들 옷을 꼭 사야겠다는 신념 하에 사야 하는 이유를 머릿속에 계속 만들어 내며 장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았다.
‘이런 스타일의 옷은 없어.’
‘이제 겨울인데 이렇게 두꺼운 양말은 없잖아.’
‘비니는 있지만 안감이 털로 된 모자는 없잖아.’
몇 가지 시답지 않은 사야 할 이유를 계속 만들어 내며 이런 합리적인 소비는 없다며 스스로 뿌듯해하기도 했다.
며칠 후 집에 주문한 아이들 옷가지들이 도착했다. 해외직구로 사는 옷들은 사이즈가 외국인 체형에 맞게 제작되기 때문에 동일한 사이즈라도 한국인 체형에 정확히 맞지 않는다. 도착한 옷들은 바로 입히기에 너무 컸고, 양말과 모자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딱 맞았다. 솔직히 모자는 아이가 답답해할 정도로 머리에 꽉 낄 정도였다. 쌍둥이들이 9월에 태어났으니 겨울용 양말과 모자는 그해 겨울이 지나면 다시는 입히지 못할 것들이었다. 겨울이라 날씨도 추워져 예방접종 맞으러 가는 것 외엔 집 밖에 나갈 일도 별로 없었다. 아이들을 위한답시고 구매했던 것들은 이미 집에 대체품이 충분히 있었던 것들이었다. 결국 몇 번 입히지도 못할, 꼭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귀신에 홀린 듯 그냥 산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읽었던 육아서들을 통해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되었다. 내가 왜 그동안 남편에게 “나 예뻐?”라고 뜬금없이 물었는지, 필요치도 않은 아이 옷가지들을 사들였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위로 두 살 터울인 언니가 있고 아래로는 한 살 터울인 남동생이 있는 항상 관심받고 싶어 하는 중간에 낀 둘째 딸이었다. 그 시절 여느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부모님도 자식이 원하는 만큼 애정 표현을 충분히 해주는데 익숙한 분들이 아니셨다. 그때의 나는 부모한테 ‘예쁘다’고 말해달라고 당당히 요구할 만큼 용감하지 않았을뿐더러 그런 나의 투정을 부모님이 잘 받아주실 거란 안전함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수줍음 많고 부모에게 관심받기를 바라는 어린아이였다. ‘내가 최고라고, 엄마, 아빠한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라고 대놓고 듣고 싶었을 뿐이었다.
‘왜 우리 부모는 나한테 이런 말을 안 해준 거지?’하는 원망 섞인 마음도 올라와 부모를 미워하기도 했다. 어린 나와 마주하느라 육아서 읽기가 힘든 날도 여러 번 있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옷도 충분한데도 어릴 적 충분히 들어보지 못했던 ‘예쁘다’는 말을 어른이 된 지금도내 아이들에게 예쁜 옷을 사입히며 누군가에게 듣고 싶었던 것이다. 또한 어릴 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어른 아이인 나는 그 당시 제일 믿을 만하고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받아줄 만한 안전한 남편에게 ‘나 예쁘냐’고 시도 때도 없이 계속 물었던 것이다. 남편은 매번 ‘예쁘다.’고 답해주면서 나를 얼마나 측은하게 봤을까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붉어진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듣고 싶었던 말을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해주자.
아끼지 말자. 아이는 부모가 생각하는 것보다 몇 배를 원하는 존재니깐 넘치도록 해주자. 아이가 “엄마 나 이런 말 엄마한테 듣고 싶어.”라고 당당히 말해주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이의 요구를 마냥 기다리고 있기엔 아이는 금세 자라고 만다. 아이가 요구할 때를 기다리지 말고 엄마인 내가 먼저 “네가 최고야, 넌 참 예뻐. 엄마, 아빠한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