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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랑 Nov 28. 2020

그의 밤은 그녀의 낮 #10

코로나로 길어진 장거리 연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비로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 무엇도 상대방에게 강요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를 좋아하지만 아직 애인은 될 수 없다는 그. 나는 그런 그가 밉긴 했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적어도 그 사람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기에.


그러는 와중에도 우리는 매일같이 통화를 했다. 9시간의 시차를 극복하며 그가 잠자리에 들기 전이면 나는 눈을 뜨는 아침이었고, 그가 하루를 시작하는 때에 나는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침대 위로 향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우리는 대화 주제가 고갈될 만도 한데 영상통화만 시작했다 하면 기본이 2시간이었다. 내가 일을 시작하면서 점점 통화하는 시간이 줄긴 했지만 난 기꺼이 잠을 줄여가면서도 그의 얼굴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이 좋았다. 


어느 평범한 날이었다. 나와 통화를 하고 있던 그의 방에 그의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그리고 뭘 하냐며 물으시는 말에 여자 친구와 통화 중이라는 말이 전화기 넘어 들려왔다. 순간 뭔지? 내가 이렇게 이 남자의 여자 친구가 되는 건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말인데 너무 시시한 나머지 조금 불편한 마음마저 들었다. 최종적으로 남자 친구 여자 친구가 되는 것에 대해 나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여전히 그가 좋았고 그의 여자 친구가 되는 것에 이견은 없었지만 30년 동안 한국에서 평범하게 나고 자라 연애해온 나로서는 이렇게 애인이 되는 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그는 원래 3월에 한국에 오기로 했었다. 그런데 2월 말 대구를 시작으로 코로나가 전국에 기승을 부리게 된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라는 것이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만 유행을 하다 사라질 바이러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2개월 정도 미뤄지는 것에 연연치 않았다.


그런데 웬걸. 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휩쓸어버렸다. 유럽은 한국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 되었고 아일랜드는 3월 말 전국 봉쇄령이 내려졌다. 이렇게 되니 우리는 당분간 만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여름휴가를 계획하기 시작했다. 7월이나 8월경에 코로나가 조금 잠잠해지면 제3 국가에서 만나자고.. (한국은 외국인 입국 시 철저한 자가격리를 요구하기에)


그런데 8월이 지나도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지는 코로나는 잠잠해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많은 미디어에서는 코로나는 내년까지 사라지지 않고 일상으로의 복귀는 힘들 것이라는 뉴스를 내보냈다. 이미 우리는 7개월간 영상통화에만 의지하는 연애를 해온 상태였다. 게다가 정식 연애의 시작도 영상통화를 통해 얼떨결에 이루어졌으니 하루빨리 만나서 연애다운 연애를 하고픈 맘이 간절했다.




우리가 언제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1월에 헤어질 당시에는 기껏해야 2-3개월 후면 다시 볼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도무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보이지 않았다. 둘 다 직장인으로서 장기간 휴가를 쓰는 것은 쉽지 않고 그 와중에 어디를 가든지 2주 자가격리라는 장애물이 있었다. 남자 친구는 커리어 브레이크(Career Break)를 가지고 한국에 3개월간 오는 방법도 이야기했지만 회사에서 허락을 해줄지는 미지수였다. 


나는 당시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면서 한 회사의 콘텐츠 기획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회사가 정말 비상식적인 근무 환경이었는데... 연속 3일 밤 10시까지 야근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어떤 결심이 섰던 것 같다. 남자 친구와 의논 끝에 사무실에 출근하는 일을 10월 중으로 마무리하기로 했고 프리랜서 일을 해외에서도 원격으로 할 수 있는지 회사와 상의했다. 회사는 코로나의 여파로 힘들어진 부분이 있어 나에게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해외에서 지내는 것에 동의해줬다. 그리하여 나는 10월 10일 아일래드 더블린으로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샀다. 


약 9개월 만의 만남. 9개월 전에 우리는 연인도 아닌 친구도 아닌 애매한 사이였지만 이제는 어느새 정식 커플이 돼버린 우리. 항상 영상으로만 봐오던 그라 실제로 만나면 어떨지... 어색한 마음이 클지 반가운 마음이 클지... 여러 가지를 떠올리며 비행기에 올랐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멈춘 것과 다를 바 없는 요즘. 마스크와 장갑, 손세정제로 무장하고 떠나는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니 이걸 사랑의 힘이라고 해야 하는 걸까? 싶었다. 







*3일간의 만남, 9개월의 영상통화 그리고 마침내 연인이 된 이야기를 연재할까 합니다.

이 이야기는 시작만 있고 아직 끝은 없어요... 서로 다른 문화 배경을 가진 남녀가 만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지켜봐 주세요:)

1편 보러 가기

https://brunch.co.kr/@lullukumi/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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