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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18. 2023

방 안에 사는 사람들



어떤 날은 해가 뜨고 어떤 날은 비나 눈이 내린다. 마음도 그렇게 종잡을 수 없이 이랬다 저랬다 한다. 이삼십 대엔 나이가 쉰쯤 되면 기분에 휘둘리지 않고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기대와는 한참 다르다. 나이 먹으면 저절로 되어있을 일이란 나이 먹는 것 말곤 없다.

최근 읽은 책에서 우울과 우울증의 차이를 알게 됐다. '누가 봐도 불행한 일이 생겼을 때 우울한 건 병이 아니지만

우울할만한 일이 없는데 우울해지는 게 우울증이다.'

여기에 태클을 걸 수도 있을 거다. '누가 봐도 불행한 일'이라는 게 정해져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누군가가 눈이 내리는 걸 보고 우울하다고 하면 수긍이 안될 수는 있어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니까 우울증은 세상의 모든 풍경이 회색빛으로 보이는 마음의 필터를 장착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거다.

요 며칠 사이 내가 그랬다. 무슨 심각한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괜찮았던 기분이 그냥 이유 없이 우울해지곤 했다. 기분이 평범에서 우울로 체인지되는 지점을 포착해서 살펴본 결과, 모든 색을 회색빛으로 보이게 하는 필터  누군가와 이어져있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스르륵 씌워졌다.

그건 실제로 남들과 동떨어져 혼자 있었는지와 꼭 일치하는 건 아니었다. 식구들과 함께 있어도 딸들이  딸깍 소리와 함께 각자 방문을 닫고 들어가면 혼자가 됐다. 하긴 나도 아침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아 문을 닫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했다. 작년 초에 둘째가 코로나 확진을 받았을 때 일주일간 방문 앞으로 식판을 가져다주고 내왔던 경험 때문인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 방문을 닫고 지내는 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사실 집 밖을 나가도 아파트 단지 안의 모든 문은 닫혀있다. 맞은편 402호도, 엘리베이터도, 비상문도. 따져보면 아파트라는 주거공간의 안전함은 모든 문이 닫혀있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안전을 누리는 대신 외로움을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외로움을 선택한 우리가 지금 안전한 건지는 모르겠다.


 매일 새벽 6시쯤 남편과 함께 일어나 이른 아침을 먹고 함께 차를 타고 금호역까지 간다. 혼자 돈 버느라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일 년 전쯤 시작한 아침 루틴인데,  이십 분 정도 차 안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시간이 하루 중 가장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인스타니 줌이니 온라인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서로 마음을 나누었다 하더라도, 그들의 생생한 얼굴과 목소리는 전원버튼과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다. 순식간에 이어졌다 사라지는 마법이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갈수록 나는 마법이 일어날 수 있는 하나의 점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고립감이 과연 적응해 나가야  숙제지, 또 적응이 되고 나면 살만해질는지 알 수없지만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다시 방문을 열고 서로의 눈과 손과 체온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립을 잠재울 마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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