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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테레사'는 야망을 감추지 않았다

19세기 초상화가 <테레사 슈바르체>

by 루씨
<Young Italian Woman, with 'Puck' the Dog> 1884/ Theresa Schwartze

지난 4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라익스 뮤지엄'을 찾았다. 그곳은 램브란트의 걸작 <야경>과 베르메르의 <우유를 따르는 여인> 등 네덜란드 국보급 작가들의 대표작들을 소장하고 있어서 크고 작은 전시실마다 관람객들로 붐볐다. 유리벽 뒤에서 복원 중임에도 불구하고 발 디딜 틈 없는 램브란트 <야경>과 반고흐의 자화상, 그리고 베르메르의 유명작들을 지나 조금 한적한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더니, 낯선 그림 한 점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풍성한 검은 머리를 말아 올리고 눈부시게 하얀 목과 등을 드러낸 여성의 초상화였다.


이 작품은 네덜란드의 여성화가 테레사 슈바르체 (Theresa Schwartze, 1851~1918)가 그린 <Young Italian Woman, with 'Puck' the Dog>이다.

그림 속의 여성은 '포르투나타(Fortunata)'라고 알려진 전문 모델로 이탈리아 풍의 고급 드레스를 입고 있으며, 발치에서 주인을 충성스럽게 올려다보고 있는 애완견 'Puck'은 당시 상류층 여성들이 키우던 품종이었다고 한다. 이런 장치들과 꼿꼿하게 선 모델의 자세는 그림 속의 여성을 독립적인 존재로 부각하고 남성 화가들의 시선에 의해 다듬어진 여성들의 초상화와는 구별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또 자신의 애완견과 깊이 소통하는 그녀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보는 이의 마음도 자신감으로 충만해져 온다.


그녀가 태어난 1851년 네덜란드는 상업으로 큰 부를 이룬 신흥 부르주아 계층들이 예술의 주요 소비자로 자리매김하던 시기였다. 화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테레사 슈바르체는 어린 시절부터 철저한 드로잉 교육을 받았으며,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직업적인 성공을 강조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프랑스 파리의 전문 아카데미에서 실력을 쌓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말년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채 대가족의 생계를 도맡았을 뿐 아니라 40년간 총 2000여 점의 작품을 남길 만큼 성공적인 초상화 화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녀는 유럽 각국의 왕족부터 신흥 부르주아에 이르기까지 쏟아지는 의뢰를 마다하지 않았는데, 그 배경에는 의뢰인의 요구를 빠르고 정확히 표현해 내는 테크닉과 더불어 '다작이 곧 돈'이라는 그녀의 사업가적인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테레사 슈바르체 (Therese Schwartze/1885년경) 라익스 뮤지엄

네덜란드 여성들이 처음으로 총선에 투표한 해는 1922년. 이 작품이 발표된 후 거의 40년이 지나서였다.

결혼한 여성은 법적으로 남편에게 종속되어 있던 19세기 유럽의 상황을 생각해 보면, 테레사 슈바로체의 일생은 놀랍기 그지없다. 그녀는 예술적 재능을 갈고닦았으며 성공에 대한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쥐었다.


우리는 예술가의 뮤즈로 살다 간 여성들의 이름보다 성공한 여성 예술가의 이름을 더 많이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작품들은 더 널리, 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삶 구석구석에서 사랑받아야 한다.

암스테르담 고아원의 세 소녀 (Three Girls from the Amsterdam Orphanage, 18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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