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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08. 2022

'엄마'는 졸업이 없다

엄마 노릇,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자식들이 성인이 되고 나면 엄마의 역할에서 가뿐해질 줄만 알았는데, 그게 착각이었다는 걸 자주 깨닫는다.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일거수일투족 돌보던 시절에는 내가 그들의 보호자라는 생각을 잠시도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잠깐이라도 한 눈을 팔면 얼마 안가 아이들은 배고파했고, 더러워졌으며, 위험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써서 기나긴 육아의 터널을 빠져나오고 나니 이제는 반대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관심을 거두지 않는다고 비난을 당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가 자식들의 연애에 관한 것이다.


올 초에 작은딸 J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는 남자 친구와 함께 있는 걸 보았다. 아는 체하면 불편할까 싶어 모르는 척하고 바로 집으로 올라왔었다. 그런데 얼마 전 같은 동에 사는 지인이 남편과 통화를 하다가 J가 남자 친구와 함께 단지에 있는 걸 봤다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은 남편은 그러냐고 하고 말았는데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고 했다. 남편에게 그 얘기를 전해 들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하러 그런 얘길 전하나 싶으면서도 역시 내가 좀 더 일찍 주의를 주었어야 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참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다시는 이런 얘기를 듣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늦게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를 하러 방에서 나온 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


“아빠 회사 직원분이 얼마 전에 네가 남자 친구와 단지 안에 다니는 걸 봤대.”


“그래서? “


J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내가 뭐 잘못했어?”


나는 말문이 막혔다. 잘못한 것은 없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해주기를 바랐던 걸까. 아니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그냥 엄마의 의견을 따라주었으면 했던 건 지도 모른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아파트에는 우리 식구만 사는 게 아니고 친척들이나 다른 사람들이 볼 수도 있어. 그런 말 들으면 좀 불편하잖아. 그러니까 단지 내에서는 손잡고 다니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내 말이 끝나자 딸은 눈꺼풀을 내리깔고 곧 울 듯한 표정이 되었다.


“알았어. 이제 남자 친구 안 사귈게. 그럼 되는 거지?”

“아니, 그런 말이 아니잖아.”

“됐어, 됐다고. 아무도 안 사귄다고!!”

옆에 서서 듣고 있던 큰 딸도 거들었다.

“엄마, 이건 좀 아니지 않아? 왜 얘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 눈을 의식해서 남자 친구하고 다닐 때 피해 다녀야 돼? 얘를 봤다고 아빠한테 전하는 그 사람이 이상한 거야. 봤으면 본 거지 뭘 어떡하라는 거야? “


듣고 보니 큰 딸의 말이 맞았다. 한 마디 틀린 게 없었다. 불륜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니고 새파란 20대들이 손잡고 다니는 걸 보고 ‘당신 딸이 남자 친구랑 있는 걸 봤다’고 전하는 사람을 편들 일은 아니었다. 딸들이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남의 입에 오르내리지 않게 알아서 행동거지를 조심하기를 바라는 나의 이중성이 들통나자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즐길 것도 준비해야 할 것도 많은 20대인데 남들이 무얼 가지고 입방아를 찧을지 까지 신경 쓰라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성추행 사건이 일어나면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닌 게 문제였다는 논리로 피해 여성을 공격하던 미디어들에 분노해왔던 나 역시 일상생활에서는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동시에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부글거렸던 건 왜였을까?

나도 꼰대 부모가 되는 것만큼은 피해보려고 부지런히 자기 검열을 하면서 살고 있는데, 할까 말까 수없이 고민하던 말을 넌지시 던지자마자 이런 식으로 면박당하고 나니, 잘잘못을 떠나 ‘아, 진짜 부모 노릇 못해먹겠다’ 싶었던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을 변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더 화가 났었는지도. 요즘 쿨한 부모들은 용돈만 주고 자식들의 연애에 이러쿵저러쿵 간섭하지 않는다는 지인의 충고도 떠올랐다.

아이들을 키울 때 하루 종일 눈을 떼지 않고 자식을 돌보는 모성을 강요하는 말에 진저리를 쳤던 것처럼, 성인이 된 자식에게는 경제적 지원 외에 어떤 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식의 충고도 아니꼽기만 했다.


 그 후 딸들과 대화 없이 며칠이 흘러갔고, 쓰레기봉투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타다가 가족 단톡방을 보았다. 분홍빛 필터 처리가 된 채 환하게 웃고 있던 작은 딸의 카톡 프로필 사진이 내려져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애써 무시하며 단톡방을 나오는데 친구 M에게서 카톡이 왔다.

“너 오늘 오후 시간 되니? 우리 명동성당 갔다 오자. 나 너무 열 받아.”


평일 명동성당은 한적했다.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서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을 지나 M과 나는 옛날 계성여고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체온을 체크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 고해소 앞 대기석에 앉았다. 먼저 들어간 M이 고해소에서 나오고 이어서 내가 들어갔다.


문을 닫자 방 안은 먼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만큼 조용했다. 나는 하얀 광목천 뒤에서 사람들의 수많은 죄를 들으셨을 신부님을 상상하며 미처 정리되지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어쩐지 잘못했던 일보다 억울했던 이야기가 훨씬 자세하고 길게 이어졌다.


“… 신부님. 전 이제 애들한테 먼저 사과하는 거 너무 싫거든요. 제가 잘못한 건 알겠는데 잘못했다는 말이 안 나와요.” 신부님은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별다른 추임새도 없이 가만히 듣고만 계셨다.


어찌어찌 떼쓰는 듯한 고해를 겨우 마무리 짓고 신부님의 말을 기다렸다.

“자매님, 잘 들었습니다. 고민을 많이 하신 듯합니다.

이런 마음을 죄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부모도 사람이니까요. 죄가 아니니 보속도 드리지 않겠습니다. 편안히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M과 나는 오래된 벽돌 건물을 빠져나와 성당 바로 옆의 카페로 들어갔다.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야외 테이블에는 하나 둘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시원한 맥주를 주문했다. 기어이 죄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서야 마음이 풀어지는 나의 옹졸함을 맥주를 마시며 삼켜버렸다.

M에게 말했다. “야. 나 그냥 애들한테 미안하다고 하려고. 쪽팔려도 인정할 건 해야지.”

M은 날 보고 깔깔대더니 맥주를 들이켰다.


누구든 자신의 옹졸함을 받아주는 데가 있어야 쿨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게 부모든, 친구든, 혹은 하느님이든 말이다.

10월에 접어들었지만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인 것 같다. 나의 옹졸함도 이쯤에서 꼬리를 감추길 바라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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