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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 Jan 17. 2022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은 내 인생

뭔가 되고 싶었지만 아무것도 아닌 채로 살아가는 삶에 대하여

지천명은 아니지만 쉰이 되어서야 내가 왜 요 모양으로 살고 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나는 매번 시작하는 사람이었다. 늘 새로운 것을 익히고 싶어 하고 제대로 익히기 전에 싫증을 냈다. 싫증이 나면 머뭇대지 않고 단칼에 잘라 버렸다. 그렇게 뒤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릴 때에는 반드시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 이유내세웠다. 내가 이 정도 했으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와야지, 이렇게까지 하는데 안 되는 건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하다 말았다.

'세상은 넓고 배우고 싶은 것은 많다'는 것이 내 무의식 깔 모토였다.


충분히 넘치도록 시간을 채워 해도 될까 말까 한 것이 세상일인데 조금 해놓고 멋진 것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걸 지금은 안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오십 년이 걸렸다.) 이걸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이 너무나 불공평하다고 생각했고 내 인생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채로 끝난다고 실망했던 것이다.


S예고 입학까지 걸린 시간이 10년이었고, 그 시간 동안은 정말 싫고 좋고를 따지지 않고 열심히 살았었다. 그 과정 중에 나의 재능 없음을 처절하게 깨달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땐 출구가 없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노력을 쏟아부었다. 앞뒤 돌아보지 않았던 노력 덕에 악적 재능이 없음에도 예고에 합격할 수 있었길이 아닌 길을 10년 이상 걸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3년이라는 시간을 탈출만을 꿈꾸며 살아가다 드디어 피아노를 버리고 인문 대학로 진학했다.

 내가 마음먹으면 앞뒤도 돌아보지 않고 해내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심어준 게 예고 입학이었고, 아니다 싶으면 박차고 튀어나올 수 있는 강단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을 심어준 것도 예고 탈출이었다.


그 이후로 내 인생은 조금 해봤는데 안 된다 싶으면 쉽게 그만둬버리기의 반복이었다. 자존심을 내세운다는 건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이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의식하고 그들이 나를 낮춰볼 거라 생각하면 실패하기 전에 그만둬 버린다.


누군가 살아온 시간을 평가할 때는 성공과 실패로만 나눠서보면 안 된다. 아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삶과 늘 하다 멈추어버린 삶도 있으니까 말이다.  실패인지 성공인지 말할 수 있으려면 한 과정의 시작과 끝을 제대로 마쳐봐야만 한다.

그렇게 놓고 보니 난 운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재능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 평범했을 뿐인데 남의 눈을 너무 의식하며 살았다는 것이 ''가 될 수 없었던 가장 큰 원인이었다.


스스로를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고 폄하하는 마음 속에는 어쩌면 진정한 내'가 아닌 채로 살아왔다는 항변이 들어있는 지도 모른다.

 주부로 살아왔다고 해서 아무 것도 아닌 게 아니고, 어떤 직함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무엇이 된 것도 아니다. 자기를 이룬 사람만이 스스로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가 되고 싶었고, 요리사가 되고 싶었고, 엄마가 되고 싶었고, 공부를 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작은 기업을 경영하고 싶었다. 그런데 엄마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못했다. 앞에 열거한 것으로 돈을 벌고 있는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생은 실패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난 하다가 멈춘 사람일 뿐 아직은 실패에 도달하지 못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인생을 바라보는 기준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아니라 자기에 이르렀느냐 아니냐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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