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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20. 2020

08.

하와이안 무스비


 ‘이 달의 승무원, 김예슬. 동양미를 뽐내는 김예슬 승무원은 대한민국 출신으로 2013년에 입사했다. 현재 압둘 지하드 2세 전세기 전용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본래 마케팅을 전공했다. 대학생 때 여행 중에 우연히 면접을 보게 되었고...’     

  회사 신문에 한 번 기사가 실린 뒤로 각종 회사 행사가 있을 때마다 초청되어 유니폼을 입고 참석하는 기회가 여럿 있었다. 여느 회사든 그러하겠지만 이미지 메이킹이 상당히 중요한 것이 항공업계. 국제성, 다양성, 프로페셔널함이 잘 드러날 수 있는 후원업체를 선정하고 여기에 예슬같은 '얼굴'을 자연스럽게 배치한다. 


 짙은 브론저로 얼굴 윤곽이 한층 돋보이고 붉게 바른 립스틱은 입술에 착 붙어 매트하다. 완벽한 올림머리, 입술색에 맞는 레드 계열의 강렬하지만 정갈한 손톱까지. 또각또각 하이힐에 일명 ‘돌돌이’로 통용되는 승무원용 작은 캐리어를 끌고 걸으면, 누구나 한 번쯤 예슬을 힐끔 돌아봤다.

 약간의 부러움과 동경의 시선을 무심한 척 시크하게 걷는 게 직무 중 하나다 싶을만큼 일상이었다. 동시에, 어쩔 수 없는 승무원에 대한 선입견도 함께 감내해야 한다. 명품을 쉽게 사고 치장하는 게 취미인 사치녀라든지, 똑똑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라든지, 혹은 파일럿들과 한 번쯤 만나본다든지 등등. 

 직업 특성상 기본적인 화장품과 향수, 손가방 정도는 필요하지만 예슬은 딱히 명품에 대해 잘 모른다. 항공업에 몸 담은 지 여러 해, 파일럿 몇 명을 만나본 건 사실이다.  분명 괜찮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 차이를 차치하고서라도, 업에 대해 잘 아니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한 번은 하도 연락이 와서 몇 번 만난 부기장, 그가 또 따로 만나던 상대 승무원과 비행을 한 적도 있다.     

 “오, 마이, 갓. 이 죽일 놈! 내 그럴 줄 알았어, 그 놈은.”     

 예슬은 욕하고 말았는데, 예슬보다 다섯 살이나 어렸던 태국에서 온 그녀는 비행 내내 훌쩍거렸다.     

 “그만 울어, 그런 놈 때문에. 똥 밟았다 생각하자고, 이제라도 안 게 어디야?”      

 누가 누구를 위로하고 있는 건지 코미디보다 우스운 상황의 비행으로 기억한다.    



 쌀을 씻다가 문득 예슬은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투명 매니큐어만 칠한 깔끔한 손톱이 제일 예쁘다고, 인위적인 붉은 매니큐어에서 벗어나고 싶었건만, 오늘따라 핏기 없어 보이는 손이 그리 초라해 보일 수가 없다. 손발 관리를 받은 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게, 지저분한 큐티클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손톱 관리를 받으며 지루하게 앉아 있는 것을 내키지 않아 했는데, 오늘, 그게 뭐라고 자존감이 쓸데없이 떨어진다.     

 “얘, 쌀 씻다가 물 값도 안 나오겠다. 무슨 생각해?”     

 얼마나 그러고 있었는지 엄마가 부엌에 들어와 계신지도 몰랐던 예슬은 서둘러 물을 잠그고 쌀을 안친다.     

 “아, 아니. 도시락 어떻게 예쁘게 쌀까 생각하느라.”

 “너도 참. 무리하지 말아, 쉴 때는 좀 푹 쉬란 말이야.”

 “엄마,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우리 같이 네일숍 갈까? 오랜만에 나랑 데이트 해, 모처럼 오늘 쉰다면서.”     

 기다렸다는 듯 반기는 엄마를 보니 덩달아 들뜬다.     


 치익치익, 압력 밥솥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기분 좋은 밥 짓는 냄새를 퍼뜨린다. 다섯 겹을 말은 두툼한 달걀말이를 만들어 따뜻할 때 모양을 잡아둔다. 깻잎을 한 장 한 장 씻어 물기를 닦고, 노란 체다치즈는 햄과 같은 크기고 맞춰 썬다. 찰기가 적당히 있게 지은 밥에 마요네즈 한 스푼, 천일염을 약간 섞어 간을 한 뒤 재료를 차곡차곡 햄 틀 안에 쌓아준다.

 김밥보다 간단한데 자르면 단면이 예쁘게 나오는 게 이 하와이안 무스비. 오늘따라 화려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이 드는 게 겨우, 볼품없는 손 때문일까? 웃기는 소리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어디선가 사놓은 곰돌이 모양 틀을 가지고 햄에도 모양을 내 본다. 생각한 그림대로 안 되는 장식에 마음만 조급해졌다.     

 “지훈아, 몇 시야? 한 십 분 더 걸릴 것 같은데 괜찮아?”

 “응 아직 시간 있어, 급하게 하지 마. 칼 조심하고.”          




 “어머,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어요, 예슬씨! 한국 들어와서 자주 올 줄 알았더니. 어머니는 더 예뻐지셨어요!”     

  휴가 올 때마다 들렀던 단골 네일숍 주인이 커피를 내오며 말했다. 큼지막한 장식들이 올라간 화려한 네일아트가 눈에 띄는 주인은 십 년이나 가게를 한 베테랑. 네일숍에 정리되지 않은 손으로 오면 주인장 앞에서 마치 죄인이라도 되는 듯하다.     

 “그러게요. 오히려 아예 들어오니까 언제든 시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나 봐요. 그만두면 못했던 화려한 네일 꼭 해야지 싶었는데.”

 “어머, 그럼 그래야지! 이번 신상 디자인 얼마나 예쁜지, 보세요.”     

 주인이 잘 정리된 디자인 북을 얼른 가지고 온다.


 라디오에서 바흐의 무반주 첼로 선율이 잔잔히 흘러나왔다. 첼로의 묵직한 느낌을 사랑했던 예슬은 연주회도 자주 다녔건만 잊고 지냈던 요즘이었다. 

 정돈된 손톱 위 알알이 예쁘게도 빛나는 네일아트, 아이 같은 미소의 엄마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심장에 따뜻한 주사를 놓은 것처럼 뭉클하다. 동해번쩍 서해번쩍 줄곧 일만 하다가 자의가 아닌 아픈 몸으로‘백수’가 된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불쌍하다고만 여겼다. 무용한 것 같은 자기자신을 돌보는 것이 사치 같아서 좋았던 날들을 세어보고 추억하기만 했다. 옆에 있는 가족과 친구를 깊이 바라볼 여유도 당연히 없었다. 


  “엄마, 오늘 저녁에 엄마표 김치찌개 해주세요. 갑자기 너무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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