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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21. 2020

09.

칠리 새우

 튀김 요리는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했다.

 살이 잘 찌는 편은 아니었어도 유니폼을 입어야 했던 예슬은 체중 관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해서 웬만하면 튀긴 음식이나 설탕 덩어리 디저트는 피해왔던 게 사실. 집에서 하는 요리라면 더욱, 튀김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기름을 일 리터씩 써야 하면서 몸에도 좋지 않은 것을, 게다가 파는 것처럼 잘 튀기지도 못한다면 힘들게 만들 이유가 무엇인가?

 차르르르.     

 그런데 요즈음 튀김 요리가 재미있다. 

정확한 온도로 기름이 끓었을 때 재료를 슬쩍 밀어 넣으면 생기는 수많은 작은 기포들. 재료와 기름의 순간적인 만남이 만들어내는 고소한 냄새와 귀를 자극하는 튀김 소리는 정말 매력적이다. 튀기는 동안 오감이 살아나 완전히 집중한다.


 작년 여름, 베트남 호치민 비행을 갔던 날이었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참여했던 쿠킹클래스를 진행한 셰프의 말이 떠오른다. 유기농 채소와 버섯을 농장에서 기르며 요리하던 셰프는 호주 여러 호텔에서 일하다가 ‘귀농’한 분이셨다. 수업에도 요리에도 많은 경험이 녹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기억에 남는 레이오버다.   

 “기름 적게 쓰려고 어중간하게 지지고 볶지 마세요. 요리 다 망칩니다. 몇 분, 몇 초의 짧은 시간 고온으로 조리하면 영양소 파괴도 상대적으로 덜하면서 식감은 최고로 끌어올리는 게 튀김법입니다. 재료의 잠재력을 이끌어내세요! 이번에 마스터하셔서 더 건강하고 맛있게 드시길 바랍니다.”     

  신념 있는 셰프와 만들었던 음식들은 정말 하나같이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해가 바뀌었어도 그 식감과 향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고 보니 파는 튀김들은 하루 종일 쓰는 더러운 기름으로 만들어진 것, 집에서 잘만 튀기면 더 나은 셈이네? 생각의 전환이 있었던 수업.





 지훈이가 제일 좋아하는 해산물 새우가 주인공이다. 

전날 밤에 녹말물을 만들어 되직하게 가라앉은 앙금을 이용해 새우에 튀김옷을 하나하나 입혔다. 적정한 온도 확인 차 앙금 약간을 넣어본다. 새우가 하나씩 기름에 들어가고 금세 보글보글에서 자글자글, 음량을 천천히 높이듯이 소리가 커졌다. 고소한 냄새가 집안을 메우게 될 때쯤, 지훈과 아버지도 방문을 열고 나오신다.     

 “이야, 아침부터 냄새가 맛있네. 예슬아, 오늘은 아빠 것도 싸 줄 수 있어?”     

 “그럼, 되고 말고. 안그래도 새우도 많아. 그런데 오늘 직원들이랑 점심 안 해도 돼?”     

 “어, 오늘은 아빠도 우리 딸 도시락 자랑 좀 해보게.”          


  홍고추와 두반장, 케첩, 통마늘에 설탕을 약간 넣고 블렌더에 위잉 갈아 칠리소스를 준비한다. 당근, 양파, 피망 등 몇 가지 채소를 볶은 팬에 소스를 넣고 두 번 튀겨 더 바삭해진 새우를 버무려 완성.  보기만해도 침 고이는 윤기 자르르한 완성 모습에 신이 난다.    

  칠리새우는 사실 예슬, 지훈의 아버지가 중국요리 중 가장 좋아하시는 음식이기도 하다. 일명 ‘깐쇼새우’는 중식당에서 어떤 기념일이나 행사가 있을 때나 먹던 것이 아니던가. 아버지 세대의 많은 이들이 그랬듯이, 어렵게 유년시절을 보낸 아버지에게는 중식당은 무척이나 고급 요리점이었다. 원할 때 먹을 수 있는 지금이라도 아버지는 깐쇼새우에 특별한 애착이 있으시다. 오늘 도시락을 싸 달라고 한 이유가 괜한 게 아니었다. 얼마 전 해산물 전문 뷔페에 갔는데 깐쇼새우가 가득 쌓여있는 것을 보시고는 먹기도 전에 행복하셨다는 귀여운 아버지.     

 “짜장면 먹는 날도 특별한 날이었지 그때는. 깐쇼새우는 어릴 때는 본 적도 없었고, 취직하고 나서 먹어봤는데 캬, 처음 먹었던 그 순간 잊을 수가 없다니까. 아무튼, 잘 먹을게, 딸!”          

    


 

 고정 수입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주머니가 넉넉할 때와 아닐 때 먹을 수 있는 것은 확실히 다르다.  80, 90년대처럼 특별한 날만 고기를 먹는 시대가 아니건만, 먹거리에는 여전히 엄연한 계급이 존재한다. 무엇을 먹을 수 있느냐는 혀에 만족감을 선사하는 것뿐 아니라 더불어 모종의 자신감을 준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원할 때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다’는 안정감과 여유로움.  '먹는 걸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은 사실 먹거리가 사람을 아주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반증이다.     


 전세기를 타면 일반 노선보다 받는 비행 수당이 높다. 돈을 잘 번다는 생각은 없었어도 조금 비싸다 싶은 레스토랑에 가는 게 큰 부담이 아니었다. 고등어회, 랍스터, 양다리 스테이크, 연어구이, 트러플 치즈에 샤르도네 와인, 딱히 사치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고된 비행 뒤에 누리는 나를 위한 휴식 정도였다. 고정 수입이 끊긴 이후 요즈음은 고등어찌개, 새우젓 찌개, 된장찌개 등 찌개류와 삼겹살에 묵은지, 국수, 샌드위치 가끔 파스타 정도로 대치되었다고 보면 된다.      

 물론 예슬은 한식을 무척 사랑하는 토종 한국인이 맞다. 없을 때는 굳이 구해다 먹고 싶던 취나물, 곤드레, 진미채, 깻잎순 등 제철 채소를 근처 시장에서 쉽고도 값싸게 구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때때로 입 안에서 사르르 녹는 스테이크가,  진짜 피스타치오를 넣어 만든 유기농 아이스크림이, 한국에서는 다소 값이 나가는 망고나 코코넛, 체리 등 고급 과일을 걱정 없이 먹던 때가 솔직히 생각난다. 언제부터 입이 그리 고급이었다고,참나.

         

 ‘아, 오늘 스트레스 폭발 직전. 매운 거 먹으러 갈래?‘     

제일 친한 친구 진희의 메시지.     

 ‘왜,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거기 역 앞에 즉석떡볶이, 어때?’     

 한국 휴가가 있을 때마다 다 제치고 꼭 먹던 것이 고추장 넉넉히 푼 매콤한 빨간 떡볶이였다. 방과 후는 물론 가끔은 쉬는 시간에도 담을 넘어 학교 앞 분식점에서 고등학생 때부터 진희와 항상 먹던 국민 분식메뉴. 그렇게 서민적인 음식이 또 없다. 그러니까, 걱정 없을 때는 집 앞 분식점 떡볶이도 추억이라며 박수 짝짝, 사진을 이리 찍고 저리 찍고 해시태그를 달기 바빴다. 처지가 변하니 분식점 떡볶이가 제일 만만해진 것이다.  

 "떡볶이가 언제 이렇게 비싸졌어?"     

  그런데 오늘 치즈, 고구마 떡에 통오징어를 넣고 각종 튀김을 추가하니, 더 이상 분식집 가격이 아니어서 한 번 더 놀란 예슬이다.

 아버지의 칠리새우와 예슬의 떡볶이. 음식이란 자고로 몸과 영혼을 채우는 따뜻함이고 정성이라고만 믿어왔는데, 예슬은 그것의 차가운 뒷모습을 경험하는 요즘이 조금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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