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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25. 2020

10.

할로윈 테마 도시락



똥 손은 아니지만 금손도 아니다. 섬세함은 타고나질 못해서 정성만 들어간 도시락으로 승부 중인 예슬의 손 끝.

할로윈이라고 소셜미디어에서 테마 도시락이 많이 보이길래 분위기만 조금 내보려고 한다.

동생 지훈은 신경도 쓰지 않는, 사실 한국에 있는 많은 이들이 챙기지 않는 외국 축제날이지만 말이다.


 사실 몇 해전 할로윈 데이는 섬뜩한 날로 남아있다.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오후 비행, 동료 승무원들 몇몇이 할로윈 테마 장신구를 챙겨 왔다. 가면부터 망토, 가짜 피를 만들 빨간 잉크와 우스꽝스러운 선글라스까지. 분위기에 휩쓸려 예슬도 진하게 화장을 하고 다 같이 호텔 로비에 모여 시내로 나섰다. 밤 열 시, 거리 양 옆으로 요란한 할로윈 장식이 늘어져있고 이미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예슬 일행도 적당한 바에 들어가 건배하며 즐거운 할로윈 파티를 시작했다.

 2차가 3차가 되고, 일행이 아니었던 누군가가 일행이 되어 같이 마시고 있다. 새벽 네 시가 넘어가자 예슬은 급격한 피로함을 느껴 호텔로 돌아가고자 동료들을 찾았다. 여섯 명이 함께 나왔는데 남자 둘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바를 돌아다니며 둘러봤지만 아마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나 보다.

 

“크리스티나, 나 아무래도 더 못 있겠어. 속도 좋지 않고 돌아갈래.”

“나도 피곤해, 예슬, 같이 가자. 너희는 안 갈 거야?”

나머지 두 사람에게 크리스티나가 물었다.

“우리 딱 한 잔만 더하고 갈게, 먼저 가!”

잡히지 않는 택시를 이십 여분만에 잡아타고 호텔방에 도착했다. 


해가 중천에 떴지만 암막 커튼으로 완전하게 햇빛이 차단된 호텔방. 머리가 지끈하고 몸은 무거운데 입 안이 메말라 견디지 못하고 물병을 찾았다. 샤워도 하지 않고 잠들었던 지난 새벽, 이제야 찝찝함이 느껴져 뜨거운 물을 받았다. 목욕하니 상태가 한결 나아졌으나 식당까지 갈 힘은 또 부족하다. 이 호텔 룸서비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서빙 트레이 모양이 그려진 버튼을 꾹 누른다. 따끈한 죽이나 조갯국 같은 게 절실한 속이건만, 그나마 채소 수프가 있다. 

 "This is your room service, mamm."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팁을 주기 싫어 일부러 지갑을 찾는 것처럼 보일까 봐 상당히 민망한 순간이다. 그런데 정말 아무 데도 없다. 직원은 괜찮다며 문을 닫고 나가는데 예슬은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대신했다. 어제 든 가방을 거꾸로 쏟아내 보고 외투 주머니를 뒤집어 봤다. 가방을 다시 보니 칼자국이 있다. 도둑맞았다.

 크리스티나에게 방 전화로 연결해 거의 울듯이 하소연했다. 그런데 웬걸, 그녀는 휴대폰이 없단다. 대체 언제 두 사람 가방에 누가 손을 댄 것인지 감도 안 잡혔다. 수프가 차갑게 식을 때까지 예슬은 지갑에 무엇이 있었는지 생각하고 카드 도난신고를 위해 이리저리 검색을 했다. 어느새 준비하고 체크아웃해야 할 시간이다. 

 어지러운 마음으로 로비에 내려온 예슬. 동료들 대부분이 이미 대기 중이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뭐야, 무슨 일 있어?"

"톰이랑 무하마드, 사고가 났대... 지금 둘 다 응급실이라고."

 "뭐...? 얼마나 크게 다쳤길래?"

 "둘 다 너무 취했었나 봐. 어떡해, 너무 무서워."


어제 보이지 않던 그 두 남승무원들, 돌아오는 길에 뺑소니를 당했단다. 운전자를 아직 찾지도 못한 상황, 톰의 상태는 매우 심각하다고 했다. 사무장이 낮은 목소리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이 사건은 참으로 애석하지만 우리는 승객들과의 약속이니 운항은 그대로 하며 곧바로 공항으로 이동합니다. 회사 측에서 사람을 보내 톰과 무하마드를 챙길 것이니 다른 걱정은 더 말고, 그들의 상태에 대해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즉시 알려주겠습니다. 여기에서 여러분이 숙지할 것은 다들 느꼈겠지만, 본인의 안전과 더불어 레이오버 시간도 직무 중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겁니다. "


 예슬의 지갑과 크리스티나의 휴대폰 분실 건은 괜히 분위기를 더 무겁게 만들 것 같아, 누구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





수제 미트볼 도시락으로 할로윈 테마를 정했다.

전날 밤에 미리 동글동글 빚어둔 미트볼.

밑간 해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직접 다져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와 표고버섯을 함께 뭉쳐 만든 손 많이 가는 메뉴다. 양파 볶은 냄비에 생토마토를 다져 더 볶고 시판 토마토소스 반 컵과 케첩 한 스푼, 레몬즙, 칠리소스도 조금 해서 곁들일 소스를 준비했다.

잘 지은 현미 섞은 쌀밥에 소스를 반만 깔아주고 길고 얇게 자른 모차렐라 치즈를 두른 미라 미트볼, 케첩 바른 소시지 손가락, 삶은 달걀에 그림 그린 달걀귀신, 호박귀신을 대신해 귤에 그림도 그려 넣었다.

밥 위에 박쥐 모양으로 만든 노란 체다치즈를 올렸는데 아직 뜨듯하던  밥 위에 올려버려서 녹아버린 사태라니, 어설픔이 여기서 또 나온다. 소스로는 피범벅을 표현하고자 했으나 그저 지저분해 보일 뿐이고.

달걀귀신도 귀신같지 않은 귀염성이라, 손을 놀릴수록 더 망치는 것 같다.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온 지훈의 가방이 무겁다.

외근하느라 다른 회사에서 거래처 사람들과 점심을 먹게 된 터라 도시락을 꺼내지 못했단다.

열어보니 미라는 치즈가 하나가 되어 떡이 되었고, 눈알은 굴러다닌다.

 직접 말은 안 했지만 살짝 미안한 내색이 분명한 지훈.


"야, 다행이다~ 회사 사람들이 봤으면 유치원생 도시락이냐고 웃었을지도 몰라, 큭큭"


예슬은 그렇게 농담하듯 넘기며 지훈이 남겨온 도시락을 덜어내 한 번 데워서 저녁 식사로 대신한다.

 예슬이 직접 칼로 고기를 다졌더니 질긴 부분이 좀 있었다.

"이런, 이것도 실수네. 내가 제대로 먹어보지도 않았어, 아침에"

멋쩍게 웃는 예슬을 보고 커다란 미트볼을 한 번에 입에 쏙 넣으며 지훈이 대답했다.

"맛있는데? 근데 이 달걀귀신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귀신도 귀여워야 인기가 있는 법 아니겠어? 이렇게 평화로운 할로윈 데이라 좋네, 오히려."

"아, 그때 사고 난 할로윈? 그 친구들은 다시 비행하고 있으려나?"

"글쎄, 한 명은 결국 퇴사했다고 들은 것 같아. 목숨 건진 걸로도 다행이었으니까. 일하다가 다치는 거랑 놀다가 다치는 거랑, 어느 쪽이 더 억울할까?"

"다치지 맙시다, 언제 어디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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