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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28. 2020

11.

탄두리 새우 샌드위치


 '이국적이네, 오늘 메뉴. 인도 같으면서 서양 느낌이면서. 음식 이름이 뭐야?'

오후 한 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지훈이의 메시지가 뜬다. 

 '이름? 예슬이의 예술 샌드위치, 어때.'

 그러자 어이없다는 표정의 이모티콘만 딱 하나 날아온다.


 되직한 그리스식 요거트에 인도 향신료 탄두리 가루와 레몬즙, 가을을 맞이해 탱글한 사과를 잘게 썰어 넣은 소스를 깔았다. 거기에 중새우를 소금, 후추로 간단히 버터에 구운 다음 파슬리 가루를 솔솔. 부드러운 롤빵 속에 소스를 듬뿍 넣고 채 썬 양상추, 그 위에 구운 새우를 꼼꼼히 밀어 넣었다. 매운 것을 좋아하는 지훈을 위해 할리피뇨도 군데군데 넣어주니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운 샌드위치다.

 이 생소하면서도 특별한 조합의 샌드위치에는 나름대로 눈물겨운 사연이 있다.




 예슬이 일한 회사는 큰 사건사고가 없이 비교적 안전 운항을 자부하던 항공사였다. 예슬 본인이 사건 뉴스의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일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었던 신입 때였다. 

 인도 남부의 큰 도시 뱅갈로로 향하는 밤 비행. 새벽 세 시에 이륙하는 비행이라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반만 깬 상태로 출근한 참이었다. 브리핑 때 멍하게 앉아 있는 건 비단 예슬뿐만이 아니다. 비행기로 이동해 짐을 내려놓자마자 커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인도행은 언제나 만석이고 승객들의 짐은 어찌나 많은지 비행기가 뜰 수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항상 채식 기내식이 부족한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 또 인도 비행이라 서비스도 타 비행에 비해 오래 걸리는 편. 겨우 한 숨을 돌린 예슬은 텅 빈 위 속에 아침식사인지 뭔지 모를 끼니로 남은 기내식 중 하나인 양고기 커리를 한 수저 푸욱 떠 넣어들였다. 윽, 맛없어. 결국 바나나를 힘없이 까먹고 커피를 한 컵 또 마시는 예슬.

 해가 선명한 노란색을 띠며 떠오르고 있었다. 

 "Ladies and Gentlemen, We are approaching to our destination, a beautiful city in amazing India. If you look at the leftside..."

 부기장이 착륙 35분 전을 알리는 기내 방송을 시작했다. 

 "아, 이걸 한 번 더 어떻게 해? 살려줘~"

 부사무장마저 이런 투정을 하고 있다.

 인도 비행은 턴 어라운드(Turn around) 비행, 즉 목적지까지 갔다가 바로 돌아온다. 비행시간이 4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은 편이기 때문.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캐빈 확인을 마친 뒤 예슬은 본인 자리에 털썩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승객이 고생이 많다는 눈빛으로 웃어 보인다.

 끄덕끄덕.

 자세 잡고 앉아있던 예슬은 어느새 졸아버렸다. 시계를 보니 이상하다, 싶어 창밖을 힐끔 보는데 아직 땅으로부터 꽤 높다. 

'홀딩(Holding) 인가? 휴, 피곤  때 꼭 뱅뱅 돈다니까.'

 

 "저기, 이 비행기 첸나이로 가는 겁니까?"

 앞에 앉은 그 승객이 예슬에게 물었다.

 "네? 아뇨, 이거 뱅갈로행인데요. 왜 그러세요?"

 "아니 저 스크린 좀 봐요. 우리 비행기가 첸나이로 계속 가는걸요?"

 "그럴 리가요. 지도가 이상한가? 아 저, 확인 좀 해볼게요."

 당연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승객에게 확신을 주고자 인터폰을 들려고 하는데 전체 콜이 걸려왔다. 

 "Listen, everyone. 모두 잘 들어요, 방갈로 공항에 문제가 생겨 착륙할 수 없다고 해서 급하게 가장 가까운 공항인 첸나이로 갑니다. 곧 기내 방송을 하겠습니다. 침착하게 대응하세요."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기치 않은 착륙 소식에 첸나이 공항에서도 곧바로 착륙 허가를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 비행기는 공중에서 하염없이 빙글빙글 오갈 데 없는 물체 신세가 되었다. 1시간 반이 넘어가자 승객들의 불안과 불만도 커져갔다. 걱정이 되는 건 예슬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다시 걸려온 전체 콜은 기장이었다.

 "45분 후, 비상 착륙 예정입니다."

 뭐...?

식은땀이 주욱 흘렀다.

 "연료 부족으로 어려운 착륙을 시도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만일을 대비하는 것이니 너무 겁먹지 말고, 사무장의 지시에 따라주세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비상 착륙을 위한 지침을 안내하는 스크린 방송이 나오고 예슬을 포함한 승무원들은 실전에서 해 본 적 없는 지시사항을 전달하느라 허둥지둥했다. 그야말로 패닉에 빠진 기내 분위기는 마치 당장이라도 비행기가 추락할 것이라는 방송을 들은 후 같았다. 여기저기서 신을 찾는 기도를 하고 소지품을 몸 구석구석 구겨 넣는 사람도 있었으며, 눈물을 줄줄 흘리는 사람을 보니 예슬도 같이 울고만 싶었다.

 

착륙 10분 전.

일반 착륙 때와는 다른 몸에 충격을 최소한으로 하는 방어자세를 취하고 있다. 예슬은 다리가 덜덜 떨려온다. 

오른쪽에 둔 비행기 문을 열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 문 손잡이를 째려보며 작동법을 숙지하려고 시뮬레이션을 한다. 최악의 시나리오가 자꾸만 머릿속에 펼쳐졌다.

2분 전.

"Brace, brace! (준비, 준비!)"

훈련 때만 해보았던 구령을 외쳤고, 쿵!

전에 겪어보지 못한 큰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여파의 진동이 기내에 전해지며 몸이 한 뼘쯤은 떠올랐다가 떨어졌다. 기내 불이 반 이상 꺼졌다. 다시 아수라장.

 몸에 충격은 있었지만 생각보다 견딜만했다. 기장의 지시사항을 기다리며 창문 밖 상황을 초조하게 살폈다. 승객들이 아우성치는 통에 머리가 지끈지끈,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앉히느라 더 큰 소리를 질렀다.


 비행기 문을 열어 슬라이딩해서 빠져나가는 상황은 실로 다행히도 없었다. 착륙은 매우 거칠었으나 큰 결함 난 곳이 없었고, 대기하고 있던 공항 측 지원군들이 곧바로 와서 계단을 연결해 하차를 도왔다.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서로 먼저 내리려고 하는 통에 오히려 하차가 지연되고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가까스로 400명의 승객이 무사히 공항으로 이동한 다음 승무원들도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본사 지침에 따라 한 호텔로 보내졌다.

 "와, 나 진짜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일까, 생각했어."

 "그 정도 상황은 아니라고 이성적으로 판단은 하면서도 정말 패닉 상태가 되긴 하더라."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무서워 너무..."

 각자 본인이 겪은 순간들을 풀어놓느라 다들 호텔 로비에서 발걸음을 못 뗐다. 본사로 돌아와서 각각의 무용담은 살에 살이 붙어 거의 영웅담이 되기도 했다.




 통통한 새우를 넣은 탄두리 소스 샌드위치는 그 호텔에서 먹은 한 끼였다. 가슴을 진정시키고 샤워를 마친 뒤 호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꼬르르륵 허기가 진다. 그제야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것 없이 큰 일 치렀음을 깨달았다. 한 입 베어 문 샌드위치는 몸도 마음도 위로하는 듯했다. 얼마나 맛있었으면 예슬은 직원을 불러 셰프에게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려달라고 했을까. 

 다시 생각해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만드는 비상 착륙. 인생길 위에서 비상 착륙할 것 같다면, 준비되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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