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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18. 2020

07.

두 가지 샌드위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트렌드의 나라다.

해외살이를 하다보면 한국 뉴스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봐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게 사실이었다. 인기 좋은 드라마, 가수, 예능은 고사하고, 책도 스테디셀러보다 베스트셀러를 읽어야 대화에 좀 낄 수 있는 것 같다. 패션, 메이크업은 계절의 변화에 맞춰줘야 하고, 먹을거리에도 유행이 있는 한국.  

귀국한 직후 예슬은 그런 것들에 대해 신경 쓰지도 않았고, 사실 허리 때문에 신경 쓸 여력도 없었다. 하지만 몇 주, 몇 개월 한국에 있다 보니 금세 녹아든다. 자신도 모르게 사람들이 많이 입고 다니는 스타일의 옷을 사고 있고, 어느 드라마 배우가 사용하고 인기를 끈 와플 기계를 구매했으며 이제는 전에 하던 화장법이 지금 이 곳에 맞지 않아 보였다.          


 지난 주말, 예슬과 지훈 남매는 운동 겸 공원에 들러 슬슬 몇 바퀴를 돌고 커피 한 잔 마시러 카페에 들어섰다.  

 “뭐 마실 거야, 누나?”     

 “난 따뜻한 라테!”     

 누나가 요새 백수라고, 취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훈이 커피값 계산을 한다.      

 “목마르지 않아? 누나 나이 든 거 티 낸다. ‘얼죽아’ 몰라?”     

 “얼죽... 뭐?”     

 “아, 뜨거운 거 고집한다고 핀잔 준건데, 줄임말이 문제였네. 맞춰봐, 한국에서 살려면 공부 좀 하셔야지.”     

 “흠, 얼굴... 죽이는...? 뭐야, 뭐야.”     

 “푸하하,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 못 들어봤어?”     

 배꼽을 잡고 웃는 지훈을 흘겨보는 예슬.     

 “요새는 줄임말도 줄인다더니, 별걸 다 줄여 말한다니까. 모르는 건 그렇다 쳐도, 왜 다들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마시는지 나는 그게 신기하더라, 외국에서도 아이스커피만 찾는 게 우리나라 사람들뿐이라니까.”     

 “그러니까 단일민족이지.”     

 “뭐래, 갖다 붙이긴. 그리고 단일민족이란 것도 위험한 발언이다, 너. 다문화 가정이나 외국인 노동자들이 얼마나 많다고.”     

 “어이쿠, 여기 꼰대 납셨습니다.”      

 “아니 내가 외국인 노동자로 살았으니까 그렇지, 꼰대라니!”     

 “그래, 뭐. 누나 정도면 애교지, 한국에 없었으니까. 며칠 전에 들렀던 거래처에 부장이 제대로 옛날 사람이었어. 어쩌다 보니까 본인 자식들 얘기까지 나왔는데, 아들이 육아휴직 신청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펄펄 날뛰더라고.  남자가 집에서 살림하고 애를 보겠다고 자원을 하는 꼴이 보기 좋기도 하겠다, 마누라가 없는 것도 아니고 애가 어디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닌데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와, 내가 뭐라고 해야 될지 난감하더라.”     

 “정말? 본인 주관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일터에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건 좀 충격이다. 아, 내 시아버지가 나중에 그런 사람이면 어쩌지?”     

 “우리 아빠가 혹시 그러시면 어쩌지, 난 내 와이프 고생하는 거 싫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시댁’이 기준이 되는 이 대화부터 싫다, 난.”     

 “아무리 많이 바뀌었어도 몇 세대는 더 지나야 할 것 같지.”     

 “음, 아무래도. 그치만 세대 갈등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있을 수밖에 없겠지.”      

 농담처럼 주고받은 대화지만 예슬은 사실 오늘의 대화가 마음에 남는다. 시대에 뒤쳐진다는 기분을 귀국한 뒤로 매일 겪는데, 정말 자신이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아서다. 꼰대가 아님을 부정하는 게 진짜 꼰대라나.  

    


 식빵 사이에 바삭한 돈가스를 끼워 넣는 가츠 샌드위치, 그리고 하얀 식빵 위 더 하얀 생크림을 듬뿍 올리고 생과일을 넣어 만드는 후르츠 산도. 딸기나 청포도, 귤, 키위 등 색감이 뚜렷한 과일을 넣는 샌드위치가 예쁘기는 하다. 그렇지만 식사용으로는 부족한 느낌에 든든한 돈가스 샌드위치를 하나 더 만들기로 했다.     

  요즘 집들이 선물로 제격이라는 에어프라이어가 없는 집이 없다더니, 어머니도 홈쇼핑을 통해 하나 사두셨다. (사두고 고구마만 해 먹는단다.) 달걀물에 빵가루 옷을 입힌 얇게 두드린 돼지고기를 버튼만 꾹, 눌러 튀겨봤다. 기름 맛은 없지만 바삭함은 살아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다. 또 확실히 아침 요리 시간을 단축시키기도 하니, 과연 요리는 도구 발이라더니.     

 꿀을 넣은 머스터드소스를 통밀 식빵 한 면에 잘 펴 바른 뒤, 마요네즈로 버무린 양배추 샐러드를 듬뿍 올린다. 한 김 식힌 돈가스를 살포시 눌러주고, 전날 30분 넘게 볶아서 단맛으로 똘똘 뭉친 볶은 양파로 마무리. 과일 샌드위치는 깔끔하게 통 귤 두 개만 넣고 생크림을 푹푹 떠서 아낌없이 올려줘야 한다. 별 것 아닌데 반으로 갈라보니 전시 모형처럼 예쁘다.  도시락 통이 꽈악 차게 들어가니 보기만 해도 뿌듯해졌다.  


 “요새 이런 샌드위치 유행이라며, 좀 지난 건가 이미? 아무튼 내가 좀 찾아보고 만들었다, ‘신세대인’ 너를 위해.”     

 늦잠을 잔 터라 아침식사도 거르고 서두르는 지훈에게 도시락을 들려 보내며 한 마디 던진다. 듣는 둥 마는 둥 요란하게 현관을 나선 지훈이 점심때가 되어서야 메시지를 보내왔다.     

 ‘JMT! 우리 누님표 샌드위치가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구먼!’     

물론 예슬은 이 영어인지 줄임말인지 모를 단어를 검색해봐야 했고, 피식 혼자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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