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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Oct 15. 2020

05.

전설의 김치볶음밥

 띠링.     

  “중동의 장금이가 될 뻔했잖아, 김예슬. 크크”     

 오랜만에 메시지가 온 아직 중동에 남아있는 동기, 은주였다.      

  “김예슬 표 김치볶음밥, 너무 먹고 싶다. 지금, 당장, 으아!”      

 우는 이모티콘이 몇 개나 같이 날아온다.      

  “거기 왜, 호텔 앞에 있는 스페인 식당 빠에야 진짜 맛있잖아! 난 거기 가고 싶다, 야”     

 무료했던 예슬은 집 앞 슈퍼마켓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카사블랑카에 도착했는데, 할 것도 없고 갈 데도 없다며 푸념하는 은주. 맥주 냉장고 칸 앞에 멈춰 서서 그 메시지에 답장을 하는 예슬은, 마치 내장 하드에 저장되어 있던 기억들이 자동 불러오기 한 듯 카사블랑카 호텔과 그 주변이 빤하게 그려진다. 몇 년째 중동 생활을 하면서도 중동 음식은 입에도 못 대는 은주는 그래서, 아시아 비행을 선호한다.       


 카사블랑카. 정신없는 길거리와 시장, 시끄러운 호객 소리를 뚫고 들어오는 것은 화덕에서 구워내는 중동식 납작납작한 빵 냄새다. 온 시장 구석구석에 진동하는 고소한 빵 냄새 사이를 메우는 향긋한 민트를 잔뜩 넣은 찻 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김, 코가 뾰족하고 알록달록 화려한 알라딘 신발. 알라딘 만화영화를 처음 보던 때처럼,  슈퍼마켓에서 떠올리는 그 곳은 너무도 아득하게 느껴지는 지구 반대편의 풍경이다.     

 “난 하맘 하는 목욕탕도 되게 시원했는데, 거기 예약 한 번 물어봐. 피로가 싹 풀린다니까.”     

 독특하게도 모로코에는 한국식 때밀이 문화가 있다. 전신 때밀이뿐 아니라 샴푸, 진흙팩, 마사지까지 포함하는 풀서비스 ‘하맘’을 받으러 갔던 목욕탕이 떠올라 얘기를 꺼내봤다. 그 날 동행했던 벨기에인 동료가 때밀이를 받고 문화충격이라며 아파했던 것도 떠올라 웃음이 났다.

 “어휴 목욕탕은 무슨. 난 한국에서도 잘 안 가. 예슬이 넌 정말 할 수 있는 건 다 했던 거 같아, 어디 가기만 하면. 그런 애가 요새 답답해서 어찌 지낸다니.”     

 맞는 말이다.

현지에서 해 볼 수 있는 건 웬만하면 다 해보는 활동성이라면 일등이었던 예슬.     

 “그러니까 지금도 슈퍼라도 와 있지 않겠냐고.”     

 못내 씁쓸한 기분에 맥주 두 캔을 바구니에 넣어버렸다.




 예슬이 중동에 있을 때 하던 요리 중 으뜸은 김치볶음밥이다. 한국인이라면 당연히 할 줄 알아야 하는 특별할 것 없는 메뉴 같지만, 예슬의 김치볶음밥은 웬만한 한식당보다 맛이 좋았다. 한국인 승무원들 뿐 아니라 외국인 사이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였으니 은주의 말이 빈말은 아니다. 식당을 내라는 소리도 꽤 많이 들었던 그야말로 ‘중동의 장금이.’     

 ‘예슬, 오늘 오프야? 김치볶음밥 먹으러 가도 돼?’     

 가끔씩 이렇게 그녀의 김치볶음밥을 찾는 친구들이 있을 정도.

 원래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비행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미식 세계에 눈을 떴다. 아는 만큼 보인다 했던가 아니 반대로, 보고 맛보는 만큼 알고 싶어 졌다. 아무리 인터넷으로 다 볼 수 있는 시대라지만, 코를 자극하고 질감을 느끼고 혀로 체험하는 것이 손바닥 안의 영상과 비교가 될쏘냐. 예슬은 각 나라에서 요리책을 수집하고, 기회가 되면 쿠킹클래스에 참여해 취미를 일에 십분 활용해왔다.      

 “브라보, 예슬! 나 김치 처음 먹어보는 건데 정말 맛있다. 한 번도 먹어볼 생각 안 했는데, 이런 맛일 줄은 꿈에도 몰랐어. 레시피 좀 알려주면 안 돼?”     

 레바논 출신의 부사무장이 브라보를 몇 번 외쳤는지, 도시락으로 싸온 예슬의 김치볶음밥을 맛보고 감탄을 터뜨렸던 일화도 있었다. 조금 과장한다 했지만, 정말로 그 부사무장은 얼마 뒤 작은 통의 김치를 샀다며 메시지를 보내오기까지 했다.   




 김치볶음밥은 적은 재료와 시간으로 한국의 맛을 내기 좋은 요리임 틀림없다.

매콤한 게 당길 때 한 번, 외국인 동료가 놀러 오면 또 한 번, 그렇게 여러 번 해보면서 그녀만의 방법을 터득했다. 김치 국물, 간장, 청주, 설탕, 버섯 가루 등 열 가지도 넘는 감미료와 향신료를 알맞게 배합해 쓰는 게 비법이라면 비법이랄까. 프랑스 스타일의 마무리로 버터 한 조각과 노른자를 살린 계란 프라이, 고소한 깨 한 스푼 마무리하면 예슬표 김치볶음밥 탄생!

  추석이 지난 직후라 냉장고에는 산적꼬치와 동그랑땡이 플라스틱 두 통 가득 들어있다. 1단에는 윤기가 흐르는 김치볶음밥, 2단에는 모둠전을 넣어 들려 보낸 이번 주 월요일의 도시락.

 넉넉히 만든 김치볶음밥으로 예슬도 자신의 아침 겸 점심을 이것으로 때우기로 했다. 매운 고추를 더 넣고 김가루를 한 움큼 올려 크게 한 숟갈 입에 넣으니, 대학생 때 자주 가던 식당이 문득 떠올랐다. 3천5백 원짜리 김치볶음밥을 주문하면 식후 아이스크림까지 주던 그때 그 시절의 추억.     

 ‘그 집 비밀 소스는 대체 뭐였을까. 입에 착착 감기던 게, 조미료였던 걸까 아니면 그저 내가 멋모르는 새내기라 다 맛있었던 걸까.’     


 “누나, 내가 오늘 증명했다, 회사 사람들한테. 전에 몇 번 말했거든, 누나 김치볶음밥은 다르다고. 다들 그냥 ‘아, 네~’ 이러고 넘겼었는데, 오늘 먹어보더니 팔아야 되겠다고 감탄을 어찌나 하던지.”     

 퇴근해 돌아온 지훈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자기가 만든 듯 자랑했다. 예슬도 기분이 좋아진다. 같은 양념을 넣고 만든 소스 이건만 중동에서 만들던 것과는 사실 조금 다른 맛이 났다. 우스운 소리지만, 김치볶음밥인데 당연히 한국에서 만든 게 맛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물론 대부분은 음식의 본고장이 맛있겠지만, 가끔 해외에서 먹는 한식에 깜짝 놀랄 때가 있잖은가? 그만큼 음식이란 것은 환경적 요소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김치도 다르고 쌀도 다르고, 브랜드마다 향신료도 미세하게 다르다. 혹은, 더 잘해주려고 하는 마음 부담도 영향을 끼쳤는지도 모르겠다.     

 일 퍼센트 부족한 감이 있어 아쉬웠는데 잘 먹었다고 말해주니 고마운 마음이다. 대한민국 만인의 음식인 김치볶음밥 하나가 만들어내는 여러 가지 다른 기억, 남는 추억들이 소담스럽다.

중동에서 김치볶음밥 홍보대사였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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