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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Jan 31. 2022

간직해야 할 레시피

sauce dugléré 뒤글레 소스와 돔 구이


요리학교에서 배운 생선 요리 중 마음에 들었던 게 딱 두 개가 있다.

이 두 가지는 양 끝으로 극단적인데,

하나는 오로지 버터, 소금, 후추로 맛을 내는 심플의 묘미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까지 할 필요야?

할 만큼 많은 단계를 거쳐 끓이고 졸이고 거르는 요리다.


첫 번째는 버터를 타기 직전까지 끓여서 풍미를 높이는 것이 포인트인 방법으로,

해서 지방이 적은 흰 살 생선에 어울린다.

납작한 가자미과 Sole 생선을 이렇게 많이 하는데,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데 생선이 좋다면 맛은 보장한다. 좋은 통후추를 스윽스윽 갈아 마무리하면 먹는 데는 5분도 안 걸릴 거다.


두 번째는 프랑스 소스 만들기 테크닉이 몽땅 들어가는 듯 시간이 필요한 뒤글레 소스를 끼얹은 도미 구이다.

은빛깔이 참 고운 게 특징인 프랑스 도미는 살이 적당히 단단하면서 부드럽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가장 애정한 녀석이기도 했는데, 겉모습은 이리도 고운데 속까지 알찬 매력이랄까! 기름기가 있는 편이라 산미를 주는 토마토가 들어간 소스와 찰떡이다.  (그래서 시고 짠맛의 간장 소스와 궁합을 맞춰도 참 좋다!)

머리와 꼬리를 떼고 내장 제거하여 포를 뜬 다음 잔 가시를 제거해 준비한다.


뒤글레 소스 sauce dugléré 라 불리는 이 소스는 19세기 보르도 출신의 재능 있는 셰프 Adolphe Dugléré 의 이름을 땄다. 소스 이름을 외우기 참 어려웠던 이유가 프랑스인 이름이라 그랬다고 본다. 몇 세기 전 사람의 이름을 넣은 레시피나 소스, 레스토랑이 여전히 내려오는 것이 다시 한번 인상적이다.

요새 우리나라도 자기 이름을 간판에 거는 업장이 간간히 보이는데, 나쁘지 않다.


 생선을 손질하고 남은 머리와 뼈를 이용해 생선 육수를 끓이는 데서 시작한다. 초록 토마토와 펜넬로 향을 내고 생선 뼈를 닭 육수에 끓여 베이스를 준비한다. 그동안 올리브유를 충분히 끼얹은 빨간 토마토를 통마늘과 오븐에 구워 수분을 쭈욱 빼내 체에 걸러 액기스를 모은다. 베이스에 이 액기스를 섞어 농도가 맞을 때까지 천천히 졸인다. 바질, 파슬리 등 허브를 넣고 인퓨징 하면 싱그러움을 추가할 수 있다.

이렇게 몇 줄로 축약했지만, 한 접시가 나오려면 반나절이 꼬박 걸린다.



가니쉬로는 오븐에 따로 구운 빨갛고 초록한 토마토와 양송이버섯, 마늘을 살짝 넣고 볶은 시금치 그리고 튀긴 바질.

마지막으로 버터를 넣고 졸여 완벽한 농도의 뒤글레 소스를 깔고 팬에 구운 도미, 가니쉬를 올린다.

다시 한번,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살짝 바삭하게 구운 도미 살에 뒤글레 소스를 흥건히 적셔 먹으니,

아하.


켜켜이 쌓은 맛의 향연이란 게 이렇구나.


이건 학교 레시피이고, 일반적으로 뒤글레 소스는 화이트 와인과 크림으로 베이스를 만든 다음

토마토를 추가해서 넣는다.  가정에서도 해 먹을 수 있는 수고로움이랄까. (실제 프랑스 가정에서 그렇게 해 먹는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 크림을 중간에 넣고 소스를 만들면 절반은 치트키를 쓰는 거나 다름없다던 셰프의 말이 떠오른다. 수고롭게 만든 모든 맛을 중화시켜버리는 탓에 요리학교에서는 지양하는 방향이다. 재료나 육수가 조금 부족한 맛일 때 크림을 사용하면 좋은 대안이 될 수는 있다.


이제 보니 가정에서만 어려운 레시피가 아니다. 웬만한 2,3 스타 레스토랑이 아니면 이 과정을 다 담고 요리를 내는 게 효율적이지 않다.

 수익이 나지 않아서,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서, 혹은 맛을 알아주는 이가 없어서 탄생하자마자 사라지는 레시피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픈 손가락들.

어디에선들 아픈 손가락 없겠냐만은, 팔지 못하더라도 ‘레시피 남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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