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볶음밥
남편의 저녁 식사 일정으로 저녁도 나 홀로 먹게 되는 오늘 같은 날에는, 전에 넉넉히 해두고 얼려둔 김치볶음밥이 있어 다행이다. 약불에 다시 볶아서 달걀프라이 하나 얹으면 (과거의) 내가 했지만 (현재의) 내가 한 것 같지 않게 간편한 식사. 혼자서는 굳이 밖에서 먹지 않으니 이렇게 간단히 해결해야 할 때를 대비해 종종 나를 위한 비상식량을 저장해두곤 한다. 빵은 종류별로 소분되어 있고, 볶음밥은 만만하고 파스타만 삶아서 조리할 수 있게 토마토 라구소스도 넉넉히 해둔다. 요즘은 내일의 내가 채소 섭취를 조금 더 할 수 있게끔 양배추나 당근, 샐러드 채소를 미리 손질해 두어 귀찮아서 안 먹지 않게 신경 쓰고 있다. 그래야 배가 고파질 때 아무거나 주워 먹고 후회하는 습관을 줄일 수 있다.
일정을 일찍 마치고 들어온 남편은 샤워를 하자마자 맥주 한 캔을 따더니 잠시 뒤에는 팝콘 한 봉지를 비웠다. 얼마 전 보험증서가 왔길래 같이 들여다보다가, ‘건강체 할인’을 받으려면 체중을 4~5킬로그램 정도 감량을 하면 될 것 같다고 하더니만, 그 정도는 금방 한단다. 그게 삼 개월도 넘은 것 같다. 보기에 심각하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고 군것질도 많이 안 하는 남편이라(술이 문제지) 크게 잔소리만 하지 않고,
“건강체 할인은 언제부터 받아?”
가끔 이 정도 핀잔을 던지고 만다.
먹을 것에 지대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는 나와 끼니를 뭘로 채우든 맛만 있으면 오케이인 남편. 나는 때때로 ‘내일 뭐 먹지’, ‘어떻게 해 먹지’에 대해 너무 고심해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생기기도 한다. 그래서 외식을 한 끼 하는 주말이 편하기는 한데, 그마저도 외식을 해야 하니까 나머지 끼니는 외식 메뉴와 겹치지 않으면서 보다 건강한 쪽으로 챙기려는 압박을 받는다. 물론 임신 후에는 아무래도 내가 먹는 그대로 아가가 먹을 것이니 신경 쓰는 것도 있다. 반면 세끼 내내 외식해도 상관없는 우리 남편, 나는 가끔씩은 그런 무던함이 부럽기도 한데(임신 후에는 음식에 제한 없는 남편이 얄미울 때도 있었지만) 건강을 생각해 먹는 것에 조금만 주의를 요했으면 싶다. 이렇게나 다른 우리 두 사람,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넣어 커피의 쓴 맛을 중화시키듯 우리도 좀 섞이면 좋을 텐데.
부부는 취향도 닮아간다고 하던데, 이것은 성향이라 어쩔 수 없나 보다. 아가의 성향은 과연 한쪽을 닮는 건지 양쪽을 닮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아가만의 독립적인 성향이 생겨 나오는 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후천적인 영향도 지대하겠지만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성향이 사람의 성격의 방향을 좌지우지한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어떤 성향이 ‘더 좋다’를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몸담고 살아야 할 사회에서 조금 더 수월하게 적응하거나 빛을 발할 성향은 있다고 생각한다. 무의식적으로 나 스스로 그렇지 않다고 여겨와서 그런지, 우리 아이는 자신감 넘치게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고 살기를ㅡ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ㅡ소망한다.
여기까지 생각에 이르자, 나는 부모님이 나에게 이러이러하길 바란다고 말씀하실 때, ‘나는 내 인생에서 이루어 갈 거야, 내 다음 세대에 그 기대를 넘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 야심에 비해 평범하게 살고 있는 내가 잠시 씁쓸하다가, 아니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내 아이에게 바라는 소망과 기대는 같았으리란 생각으로 고쳐졌다. 나의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부모님은 오늘도 나의 안녕을 물으셨고, 나는 내 아가에게 안녕을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