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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Apr 26. 2024

사십이일. 애착음식

블루베리 머핀


 단골 카페 사장님은 요리를 좋아하는 내게 싱싱한 채소를 챙겨주시곤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 보면 간식도 주시고, 얼마 전에는 좋은 브랜드 주방기기 공구를 한다며 알려주셔서 갖고 싶던 제품을 저렴하게 사기도 했다. 평소 혼자 내가 집에 있는 걸 아셔서 한 번이라도 더 연락 주려고 하시는 마음을 알고 있다. 나이 차이는 조금 나지만 친구 같은 언니가 되어서 오늘 아침에는 나의 따끈한 마음을 담아 머핀을 구워보기로 한다.


착착 잘하고 있었는데 블루베리를 넣고 섞는데, 생블루베리가 아닌 냉동제품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여 조금만 섞어도 금방 보랏빛 물이 새어 나왔다.

빠르게 머핀틀에 팬닝 했지만 보라색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아서,

아쉽게도 결과물은 푸르뎅뎅 식욕 감퇴를 불러일으키는 머핀이 되고 말았다.

좋은 버터와 유기농 설탕을 듬뿍 넣고, 크럼블까지 만들어 올렸는데!

아쉬움 가득 담긴 내 눈을 보고 남편은 하나 먹어보더니

“많이 파랗지는 않은데? 맛도 좋고, 가져다 드려 그냥.”

위로해 준다.


블루베리 머핀은 이제는 평범하고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베이커리류 중 하나.

나에게는 이 빵에 약간의 애착 같은 게 있다.

성인이 되어 좋은 점으로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했듯, 하루 한 개만 허락되던 어린이 성장캔디나 구슬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것처럼

대학교 입학 후 처음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나는 이른바 ‘카페 메뉴’에 마음을 빼앗겼다.

1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니, 카페가 그때도 많았어도 요즘만큼은 아니었고 에스프레소를 처음 뽑아본 아직 어린 나에게는 와플, 머핀, 치즈케이크, 베이글이 다른 세상 먹거리처럼 신선했다. 그때 사장님은 하루 음료 하나와 빵류 하나를 먹게끔 하셨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게 바로 블루베리 머핀이었다.

어릴 때 먹던 동네 빵집의 시폰 머핀과는 달리 포슬포슬하면서 당시로서는 이국적인 블루베리에 달콤바삭 크럼블까지,

매 번 블루베리 머핀을 고르는 나를 보고 질리지 않느냐고 사장님은 웃곤 하셨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먹지 못하게 하는 어른이 없는 자유로운 스무 살, 먹어도 에너지 소비가 가능한 때였다.


나이를 먹어가며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 중 좋다는 것은 그 효과를 덜 발휘하고 안 좋다는 것은 더 빨리 현상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카페에서 블루베리 머핀을 보면 여타 디저트에 비해 먹고 싶다는 충동이 여전히 강하다. 그래도 성인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이겨내고는 하지만,

언젠가 스무 살 때처럼 와구와구 커다란 머핀을 질릴 만큼 먹고 싶다는 마음 한 구석 욕망도 여전히 있다.


내가 좋아하는 머핀을 구우면서 맛본다는 핑계로 야금야금 1/3개쯤 먹고, 아르바이트생들과 나눠 드시라고 몇 개를 포장해 카페로 가져다 드렸다.

요즘의 그 단골 카페에서 블루베리 머핀을 안 팔아서 다행이지, 자주 가는데 자꾸 보이면 우리 아가 지금쯤 두 배로 커져있었을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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