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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리누나 May 04. 2024

삼십사일. 이유 없는 이유

계란장


머핀을 구워 넣어드렸던 통이 빈 채로 돌아오지 않았다.

매일 아침 카페 오픈을 하시고 아이 둘을 키우시면서 언제 시간을 내셨는지 탐스러운 열 두 개의 계란이 가득 담긴 계란장을 만들어 통을 돌려주신 카페 사장님.

나는 시간도 여유 있고 베이킹도 재미있어서 한 것뿐이었는데, 혹시 빈 통으로 돌려주기 미안해서 밤늦게 계란을 삶고 만드셨나 묵직한 통을 받고 나서야 생각이 든다.

안 그래도 혼자 때울 점심을 뭘로 하지 고민했는데, 어제 하고 남은 밥에 계란장 두 개를 올리고 데쳐두었던 청경채 곁들여 간단하지만 감동스러운 식사를 했다. 엄마가 아닌 남의 엄마가 나를 위해 한 반찬이 조금 낯설면서도 기분 좋았다.


결혼을 일찍 하셔서 나와 띠동갑 정도의 나이차지만 큰 아들은 고등학생, 작은 딸은 중학생을 키우고 계신 분이다. 체구가 정말 작으신 만큼 식사량도 일반 성인 여성 절반밖에 안 드시는 소식좌. 남편분의 직업 특성상 주말 부부를 오래 하시면서 두 아이를 주말 제외하고는 혼자 돌봐오신 슈퍼우먼이기도 하다. 호들갑을 떠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워낙 정이 많은 사람이라 카페에는 항상 단골손님들로 북적북적하다. 손님들이 빠져 잠깐 틈이 나면 내가 앉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다를 떨어주곤 하신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오는 내 배를 보시더니,


“아, 부럽다. 나도 갓난아기 보고 싶어요.”


하시길래 나는 깜짝 놀라, “왜요?” 되물었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랑 살아봐. 우리 다 각자 인생을 살고 있다니까, 하하. “


나는 언제 그 나이까지 키울까, 막막한데 사장님은 체력적으로 좀 힘들어도 사랑스럽기만 한 아기 시절의 아이들이 너무 그립단다. 생각해 보니 초등학교 들어간 조카들에게 우리 언니도 자주 하는 말이다. ‘천천히 좀 커!‘


“그제는 딸이랑 한바탕 말싸움을 좀 했어요. 내가 애들 어릴 때 동영상을 많이 찍어뒀는데, 이렇게 속상할 때 틀어보면 안정이 많이 된다니까, 그때 얼마나 예뻤는지 생각나면서. “


그러시면서 어릴 때 귀여운 모습들 많이 많이 담아두라고, 아이가 커서 서운하고 힘들 때 최고의 치료제라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아니 잉태되는 순간부터 곧 전보다 힘들지 않은 날이 없는 것 같은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이유를

키워보면 알게 되는 걸까. 뱃속 태아는 너무 소중하지만 어린 예쁜 시절을 회상하며 위로받아야 하는 더 어려운 날들의 동기부여는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

아직은 깜깜하다. 혹은, 그런 건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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